<과학의 오솔길-20> 한 뿌리의 두 귀납법

2004.01.08 09:08:00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 베이컨은 후세 과학자들에게 귀중한 선물을 했다. 이른바 귀납법이 그것으로 근대의 과학혁명을 이끈 한 실마리가 되었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방법론에 따라 순수한 사유만으로 학문을 하는 태도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진공이란 '아무 것도 없음'이란 것이므로 당연히 존재할 수 없다"라고 단정했다. 그런데 서양 학문에 드리운 그의 권위는 매우 컸다. 이 때문에 후세 학자들은 그와 반대되는 생각은 감히 꿈꾸지 못했으며, 생각을 한 후에도 실험으로 검증하기까지는 또 다시 오랜 세월이 걸려야 했다.

하지만 한 겨울 얼음장 밑으로 여울물이 흐르듯 실험과학의 미세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도도한 강물이 되었으며 지금도 베이컨의 귀납법은 과학의 주된 방법론으로 사용된다.

우연이라 보기에는 너무 기이하게도 베이컨과 비슷한 시기에 수학적 귀납법이 탄생했다. 파스칼과 페르마가 그 주역인데 이들은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증명 과정을 논리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그 기틀을 닦았다. 이후 수학의 여러 분야에 적용되었으며 오늘날 고교 과정에서부터 배울 정도로 중요한 기법이 되었다. 이와 구별하기 위하여 베이컨의 귀납법은 과학적 귀납법으로 부르기도 한다.

수학적 귀납법은 두 가지 단계로 구성된다. 먼저 증명하려는 명제가 최초의 가장 기본적인 경우에 성립하는지 점검한다. 이것이 "그렇다"로 판정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여기서는 어떤 임의의 경우에 성립한다는 가정 아래 그 다음의 경우에도 성립하는지 점검한다. 만일 이 두 번째 단계도 "그렇다"라고 판정되면 첫 단계와 결합되어 있을 수 있는 모든 경우에 대해서 성립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이로써 증명은 완성된다.

그런데 파스칼과 페르마는 베이컨의 업적을 전혀 알지 못했고 베이컨도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과학적 귀납법은 아주 유의해야 할 약점이 있다. 즉 어떤 법칙을 만드는 데에 아무리 많은 사실을 이용했다 하더라도 단 하나의 반례만 발견되면 하릴없이 무너진다. 하지만 수학적 귀납법은 논리적 증명 과정이므로 일단 증명이 성립되고 나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 이에 따라 수학적 귀납법을 완전귀납법, 과학적 귀납법을 불완전귀납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두 귀납법은 서로 비교 검토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데 우리 교육과정에서는 너무 소홀히 다룬다. 심지어 "서로 아무 관련이 없다"고 설명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말은 두 방법론을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만 그렇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약식 절차이기는 하지만 수학적
귀납법도 개별 사례에 대한 점검을 통해서 일반 법칙을 얻어내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서 '논리적 관점'에서 볼 때는 동등한 방법론이며, 한 뿌리에서 나온 두 줄기와 같다. '수학적 귀납법'이란 용어를 만든 사람은 뛰어난 논리학자인 드 모르간이었다는 사실도 이 점을 뒷받침한다. 차이점은 차이점대로 구별하되 숨은 관계도 잘 파악해야 한다.
고중숙 순천대 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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