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오솔길-12> 블랙홀로 빨려든 노벨상

2003.10.09 11:32:00


현대 과학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 중 하나로 블랙홀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블랙홀의 실존 여부는 아직 불명이다. 물론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이 그 존재를 믿고 있다. 구체적 통계는 없지만 굳이 수치화 한다면 99.9% 이상이 아닐까 여겨진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100%라는 수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런 점에서 블랙홀은 실존 여부가 확증되지 않은 채 역사상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자연과학적 존재로 꼽힌다.

블랙홀 관념을 처음 떠올린 사람은 영국의 물리학자 존 미첼로 1783년의 일이었다. 그는 뉴턴의 만유인력 이론을 기초로 태양보다 250배 이상의 무거운 별에서는 빛도 탈출하지 못해 '검은 별'로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착상이었을 뿐 더 이상 진지한 과학적 연구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다가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뒤 상황이 급변했다. 이듬해 슈바르츠실트는 아인슈타인의 중력 방정식을 처음으로 풀어내어 블랙홀의 경계에 해당하는 '사건의 지평선'이란 개념을 내놓는 한편, 그 안에 물질의 밀도가 무한대로 되는 특이점이 형성됨을 보였다.

1939년 오펜하이머는 중성자별의 질량이 어느 한계를 넘으면 중력 때문에 붕괴해 극미의 점으로 끝없이 수축되어 갈 것이란 사실을 이론적으로 밝혀 블랙홀의 현실적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이렇게 논의되던 신비의 존재는 중성자별이 처음으로 관측된 1967년에 들어서야 비로소 '블랙홀'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흔히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은 존 휠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휠러 자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애석하게도 진짜 작명가는 아무도 모른다. 그해 휠러는 뉴욕의 학회에서
세미나를 했는데 오펜하이머가 제시한 결과를 가리켜 '중력적으로 완전히 붕괴한 존재'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긴 표현이 자꾸만 되풀이되자 마침내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냥 블랙홀이라고 하면 안되나요"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어쨌든 휠러는 그 표현이 마음에 들어 다른 학회에서도 사용했고, 1968년에는 논문에 정식으로 실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후 이 간명한 이름은 일반인들도 자연스레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천문학적으로 가장 기이한 개념이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지게 되는 역설적 현상으로 발전하게됐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 그 실존을 확증할 0.1%가 아직도 부족하다. 1970년 최초의 블랙홀 후보로 백조자리의 X-1이 발표되었고 이후 다른 관측 자료들도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결정적 증거가 없어서 블랙홀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없다. 전통적으로
노벨상은 이미 확인된 업적 및 생존 과학자에 대하여 주어졌다. 그 때문에 아인슈타인도 상대성이론이 아닌 광전효과로 노벨상을 받았다.

과연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블랙홀은 자기 몫의 노벨상도 빨아들여 버린 것일까. 하루빨리 블랙홀의 존재가 확증되어 불치병을 안고 근근히 버텨 가는 스티븐 호킹 또는 어느덧 92세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휠러가 노벨상을 수상함으로써 아인슈타인 이래의 끈질긴 징크스가 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고중숙 순천대 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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