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잘할 수 있어!

2003.07.31 15:34:00


"오늘은 저번 시간에 한 허들 뛰어넘기를 하겠어요. 연습을 해본 다음에 남자 대 여자 시합을 합시다."
"여자가 한명 부족해요."
"그럼, 선생님이 여자편이 될게."

내 말에 남자아이들은 "좋아요, 여자편이 지면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한다.

"그러자. 너희들이 지면 어떻게 할래?"
"업어주겠어요."
"좋다! 몸으로 때운다 이거지."

휘슬을 불어 첫 아이를 출발시키자 여자아이 몇 명이 근심스런 얼굴로 다가오더니 소현이가 "선생님! 제가 선생님 대신 뛰면 안될까요? 제가 두 번 뛸게요" 했다.

"왜?"
"선생님은 나이 드셔서 선생님이 뛰면 우리가 진단 말이에요."
"선생님, 소현이 보고 두 번 뛰라고 해요."

"나, 잘할 수 있어. 나 잘뛴단 말야. 믿어봐" 하면서 팔다리를 힘차게 내둘렀다. 한사람이 두 번 뛰면 반칙이라는 말에 돌아서긴 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울상이었다.

몇 년전에는 6학년 아이들과 축구를 하면 '선생님편이 이기니까 선생님은 빠지세요' 하더니 언젠가부터 그 말이 없어졌다. '축구선수가 많으니까 그렇겠지'하고 자위했지만 요 꼬마아가씨들은 정말 서운하다.

경기는 비슷하게 나가고 있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 미진이가 "선생님 차례가 다음다음이니 배턴 잘 받으세요. 여기서요"하면서 손을 잡아 수진이 뒤에 세운다. 수진이와 창섭이가 거의 같이 들어오는데 옆을 보니 기린처럼 껑충한 예섭이가 내 상대가 되어 곁눈질을 보내고 있다.

"와, 선생님 파이팅!" 여자애들이 힘차게 내 등을 떼민다. 나보다 조금 앞서서 달리는 예섭이를 허들 3개째에서 앞지르니 여자아이들의 함성이 교정을 가득 채운다. 곁눈질로 보니 두 주먹을 불끈 쥔 예섭이가 초원 위의 퓨마처럼 힘차게 달린다. 마지막 허들에서 예섭이와 같이 들어오니 여학생들이 "선생님 때문에 비겼잖아요"하고 눈을 흘기며 투덜거린다.

미진이가 "선생님, 믿을 수 없어요"하자 혜옥이가 내 손을 꼭 잡으며 "선생님 다시 한번 해요"하는데 수업 끝나는 종이 하늘 끝까지 울려퍼졌다.
전병노 충남 반양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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