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숫자를 자세히 쳐다보고 있으면 사람이 거울 앞에 서서 자기를 응찰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시월은 계절의 중반을 넘어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한 번쯤은 자신을 뒤돌아 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무서운 태풍의 위력과 폭탄처럼 쏟아붓는 폭우의 거센 힘에도 떳떳하게 이겨내고 풍성의 계절 가을에 접어들어 맞는 10월은 더욱 감미로움을 더해 준다. 들녘을 자동차로 달려갈 때면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의 황금물결도, 맑은 가을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산새들의 정겨움도 10월이라는 가을이 주는 짜릿한 맛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동녘의 해 맑게 빛나고 함초롬이 이슬맞은 풀잎들, 태양의 눈부심에 살포시 얼굴을 들 때,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일으키고 지나가는 실바람 촉감이 주변 사람들에게 여름철 햇살의 향수를 생각케 한다. 청초한 풀잎 사이에서 느끼던 향긋한 내음도 어느 새 자취를 감추고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한 잎 한 잎의 낙엽이 대지를 덮어갈 때, 건너편 산야에서 밤나무 가지를 흔들며 밤송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꼬마 개구쟁이 시절이 되살아 날 때면, 산야의 깊은 시름은 어느 새 나의 곁에 와 속삭이고 있다. 산촌의 초가집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낙엽 태우던 냄새도 상상속에서 그려지고, 산비탈 감자밭에서 감자캐는 농부들의 손길에서도 가을의 별미는 묻어나고 있다. 뭇 사람들에게 다양한 생각을 불러 일으키게 하고 다양한 과일과 나물들을 생산해 내는 때는 아마도 10월이 주는 계절의 성역이다. 게다가 10월이 유혹하는 다채로운 야외 행사는 나를 집안에서 고이 쉬게 하지 않는다. 아내가 부추기는 야외 단풍구경, 꼬맹이가 졸라대는 가을 축제 구경하기, 참으로 시월 달 가을은 나를 유혹하는데 여념이 없다. 엊그제는 여의도 세계불꽃 축제가 열렸다. 가보고 싶지만 가 보지 못했다.
가을은 이사철이다. 우리집도 모처럼 작은 집이지만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 동안 얼마나 사들이고 모아 두었는지 정리를 해도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값비싼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책방에서 팔고 있는 오래된 고전 소설, 대학 시절에 강의 시간표 등 참으로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이 너무 소중한 것 같아 다시 가져가고 싶었지만 아내의 성화에 살며시 내려 놓을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집이 좁은데 별것을 다 가지고 간다고 아우성이다. 책을 보는 사람이기에 책이 좋아서인지 버려지는 책에 대한 아쉬움은 남달리 컸다. 나의 책을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가져다 놓으니 어느 새 가을 낙엽과 같은 구수한 책 내음이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았는지 순식간에 가져가 버린다. 책을 좋아하는 이를 바라보는 넉넉한 마음. 물욕보다 지식욕을 가지기를 바라는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10월의 현대인으로 연상되곤 했다. 10월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나는 한평생 책을 보면서 살아 왔지만 책이 주는 서기향은 거리에서 자동차가 내품는 배기 가스도, 좁은 산길을 가면서 흘러 나오는 자연의 향기도, 책에서 품겨 나오는 그 향기와는 다르다. 책에서 흘어 나오는 향기는 책이 주는 서기향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계절이 주는 가을의 향기, 뭇 사람들의 삶이 남기고 간 책 사이사이에서 풍겨나는 곤때 향기, 그리고 나의 앞날을 비춰주는 미래의 향기가 스며 나오면서, 이것이 가을이 주는 해맑은 공기와 만나서 만들어 내는 것이 가을 독서의 향기인 것이다.
10월이 주는 무서운 변혁인 10.26 사태도 가을 하늘은 지난 세월을 잊게 만든다. 가을의 하늘은 정화의 기능이 있는 것 같다. 여름의 무서운 먹구름도 풀어 버리게 하는 신비의 기술을 지니고 있다. 끝이 없이 뻗쳐있는 가을 하늘을 오늘도 또 쳐다보며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하련다. 가을 하늘을 다채롭게 만들어가는 새털구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