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졸라는 7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데다 병약했고 지독한 근시여서 자주 같은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 때마다 힘이 세고 덩치가 큰 세잔이 나타나 개구쟁이들을 물리쳐주곤 했다. 세잔이 처음으로 못 되게 구는 아이들을 혼내준 다음날 졸라는 고마움의 표시로 사과를 선물했다. 세잔이 훗날 정물화의 소재로 자주 사과를 선택하여 그린 것은 이 ‘유년시절의 사과’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던 그가 그린 정물화 ‘사과 바구니가 있는 정물’(1890~94, 사진)은 구성원리의 새로운 차원을 개척한 선구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소년시절이래 변함없는 죽마고우로 지내던 이 두 예술가 사이의 우정에 금이 가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그 직접적인 발단은 졸라가 1886년에 발표한 ‘작품’이라는 소설에서 비롯되었다. 졸라가 ‘작품’에서, ‘실패한 화가’ 랑티에의 모델이 세잔임을 독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했기 때문이다. 졸라가 세잔과의 오랜 교우관계를 세부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너무 지나치게 소설창작에 이용함으로써, 세잔이 커다란 불쾌감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세잔은 소설 ‘작품’을 읽고 난 후, 30여 년간의 우정에 종지부를 찍는 정중하고 짤막한 편지를 졸라에게 보낸다. “친애하는 에밀에게, 자네가 보내준 ‘작품’을 지금 막 고맙게 받았네. ‘루공 마카르’총서의 저자에게 이 훌륭한 추억의 증거에 대하여 감사하네. 그리고 흘러간 옛 시절을 추억하면서 그에게 악수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말하고 싶네. 흘러간 시절의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며.”
세잔은 1889년 4월 4일에 보낸 이 편지를 마지막으로 졸라를 만나지 않는다. 그러나 세잔은 졸라가 1902년 9월 29일 벽난로에서 새어나온 가스 중독으로 어이없이 세상을 떠났을 때, 이 오랜 친구의 죽음을 누구보다 애도하며 통곡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