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치유 지상상담소⑲] 도움 청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 어떡할까요?

2026.11.06 14:02:12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담임입니다. 올해 저희 반에 여러모로 마음이 쓰이는 학생이 있어 사연을 보냅니다. 주원(가명)이는 착하고 조용한 편이며 친구들과 큰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학습결손이 심합니다. 기본적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준비물이나 숙제도 해오지 못합니다. 또 수학은 3학년 수준인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조금만 지도하면 따라 오겠지 생각했는데, 막상 가르쳐보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아이의 태도입니다. 모르는 게 있어도 먼저 질문하거나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과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있거나, 제가 다가가서 물어보면 그제야 작은 목소리로 모르겠다고 합니다. 가끔은 많이 위축돼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아버님께서는 일을 하시고 어머님께서는 학교에 오실 수 없어 통화만 한번 했습니다. 알고 보니 주원이가 첫째이고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있었습니다. 둘째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고 막내 둘은 네 살 된 쌍둥이 남동생들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첫째가 착하고 알아서 잘 하는데다 더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상황은 이해하지만 5학년이면 스스로 챙길 줄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주원이는 기본적인 것을 못하면서 도움도 청하지 못합니다. 지금부터 도와주더라도 내년엔 6학년이고 그 후엔 중학교에 가야 하는데, 집에서 더 신경 써달라고 부탁드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사연자: 김서연(가명) 교사)

 

사연을 접하고 무엇보다도 선생님께서 주원이(가명)를 발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착하고 얌전한 아이들은 아무래도 늦게 발견돼 도움받는 경우들이 더러 있으니 말이죠. 이제 6학년 진학까지 몇 개월 남지 않아 곧 아이를 떠나 보내야 하는 입장에서는 현재의 모습들이 너무 걱정스럽고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5학년인데 현재 학년을 잘 따라오는 건 고사하고 여러 과목에서 학습결손이 심각할 뿐 아니라 1학년도 아닌데 기본적인 준비물이나 과제도 스스로 챙기지 못하니, 마음 쓰이는 부분이 한두 가지일까 싶습니다. 겨울방학과 졸업도 이 아이에겐 사실 1년 조금 넘게 남은 멀지 않은 이야기니 마음이 정말 급해질 수밖에 없으실 것 같습니다.

 

‘착한 아이’란 말 뒤의 어려움

 

선생님 사연 속에서 인상 깊은 구절이 있었습니다. ‘착하고 조용한 아이’라는 선생님의 인상과 학생 어머님의 ‘착하고 혼자서 잘하는 아이’라는 부분입니다.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이 학생이 선생님께도 어머님께도 착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어머님께는 ‘혼자서 잘하는 아이’로 여겨지고 선생님께서 실제 교실에서 관찰하신 모습은 모르는 것도 많고 스스로 잘하지 못하는데도 정작 먼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집과 교실에서의 모습이 일치할 때도 있고 불일치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선생님께서 관찰해 주신대로 아이는 현재 5학년 발달 수준에서 보여야 할 수행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본적인 준비물도 못 챙길뿐더러 학습결손도 심하고 결정적으로 타인에게 도움 요청을 잘하지 못하는 등 구체적인 어려움이 교실 장면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집에서 더 신경 써달라고 부탁드리기도 쉽지 않다’는 말씀에 아이의 자라온 삶이 담겨 있지는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동생이 처음 태어났을 당시 주원이는 몇 살이었을까요? 둘째가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 예정이라고 했으니 처음 동생이 태어났을 때 주원이는 대여섯 살 무렵이었을 겁니다. 지금 네 살인 쌍둥이 남동생들이 태어났을 무렵에는 초등 1~2학년일 시기였겠지요. 중요한 것은 단순히 동생이 많다, 적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동생들이 태어났을 당시 주원이는 어떤 발달 단계에 있었고, 그 시기에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돌봄과 도움이 필요했을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혼자 할 수 있다는 착각

 

보통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면서 겪기 쉬운 독특한 경험 중 하나가 있습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첫째 아이가 갑자기 이미 다 큰 아이처럼 느껴지거나 부쩍 커 보인다는 것입니다. 첫째 아이도 여전히 부모님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갓 태어난 아기를 보고 나면 첫째는 많은 걸 혼자서 할 줄 아는 아이처럼 여겨지기 쉽습니다. 때문에 부모들은 자기도 모르게 “너는 이제 다 컸잖아”, “이 정도는 혼자 할 수 있어”와 같은 말을 하기도 합니다.

 

다시 주원이와 동생들의 관계를 잠깐 살펴볼까요? 대여섯살의 주원이는 여전히 많은 면에서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였을 것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주원이 역시 부모님의 도움이 필요했을 테고요. 그렇지만 부모님의 시선에서는 갓 태어난, 심지어 쌍둥이 남동생을 돌보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시급하다고 여겼을 겁니다. 주원이 역시 어린아이이고 초등학교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점은 모르셨을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에게 필요한 부모의 도움이 얼마나 많은지 굳이 구구절절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마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과제를 확인하고 준비물을 챙기고 잘 모르거나 난처한 일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학교생활에 익숙한 어른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들이 처음 학교에 입학한 주원이에게는 모두 낯설었을 것입니다. 심지어 주원이는 그 순간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는 생각을 이미 못하는 상태였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 ‘착한 아이’라는 말은 부모님의 기대에 크게 반항하지 않고 순응했던 아이라는 뜻일 수도 있으니 말이죠.

 

물론 형제가 많다고 해서 모든 아이가 이런 경험을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주원이의 부모님께서 무관심했다고 쉽게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성장 과정 속에서 주원이는 어려움이 있을 때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기대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기보다는 혼자서 그 어려움을 버티는 상황에 더 익숙하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을 해보게 됩니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주어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뭘 할 수 있을지 막막한 기분이 드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선생님께서 지금 주원이가 해냈으면 하는 모든 일들을 동시에 달성하려고 하면 잘 안될 것이 당연합니다. 한두 가지가 아니니 말이죠. 저는 선생님께서 남은 시간 동안 주원이에게 꼭 가르쳐 주고 싶은 부분이 무엇인지, 그리고 6학년 진학 시 선생님께서 혹시 주원이를 데리고 올라가실 수 있는지, 6학년 담임 선생님께 주원이에 대해 알림을 남긴다면 어떤 부분을 설명하고 싶은지 등을 먼저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달 정도가 남아있다고 해서 선생님과 주원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움 청하는 ‘용기’ 가르쳐주기

 

무엇보다도 주원이가 어른들에게 모르는 것을 물어봐도 된다는 것, 기대도 된다는 것을 배우고 6학년이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타인에게 도움을 추구하는 것은 단순히 의존적인 행동과는 다릅니다. 나의 어려움을 혼자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의논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한 삶의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선생님께서 “어떤 부분이 어려워?”라고 물어보거나 “이런 점이 어려울 때는 선생님에게 물어보면 좋겠어”, “선생님에게 어떻게 물어보면 좋을까?”와 같이 기본적인 화법과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후 주원이가 실제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주원이가 모르는 부분을 이렇게 물어보니까(도와달라고 하니까) 선생님이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알겠다. 물어봐줘서 고마워”와 같이 도움 행동에 대한 인정을 해주시는 것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선생님께서 몇 년에 걸쳐 누적된 학습결손을 두어 달만에 해결해주실 수는 없습니다. 분명 시간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현재 결손이 누적된 시점을 찾아 가장 기초가 되는 영역부터 조금씩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경험을 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입니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답답해지실 때 어린 주원이 역시 어딘가에 물어보는 것이 어려웠을 수 있음을 한번 떠올려주세요. 또 주원이에게 도움을 추구하고 도움을 받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주원이를 눈여겨보시고 이렇게 도우려 사연을 보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조아라 이온심리상담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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