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K-문화의 세계적인 유행에 따라 우리의 ‘한글’은 세계인이 각별한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배움의 욕망을 자극하는 문자로 위상을 견지하고 있다. 한글은 역사적으로 창제 당시(1443년)부터 ‘언문’ → ‘훈민정음’ →‘한글’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특히 여성들이 좋아하고 백성들 사이에서 확산의 큰 역할을 하게 됨에 따라 한글을 비하하는 ‘암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반면에 기득권을 가진 사대부들은 ‘한자’만이 진정한 글, 즉 ‘진서’라고 칭하며 상대적으로 한글에 대해서는 배척에 나선 비운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올해는 훈민정음 반포 580주년이다. 1446년, 우리 민족의 성군 세종대왕은 백성이 쉽게 익혀 날마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새 문자를 세상에 내놓았다. 더욱 뜻깊은 것은 2026년이 한글날의 전신인 ‘가갸날’을 처음 기념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이다. 580년 전 백성을 위해 탄생한 문자가 100년 전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손에서 기념일로 되살아났고,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유산으로 우뚝 섰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한글날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가? 단지 태극기를 게양하고 세종대왕을 기리는 것만으로 그 의미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한글날은 단순히 우리 문자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날이 아니다. 누구나 배우고, 누구나 표현하고, 누구나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갈 권리를 교육의 중심에 놓으라는 역사적 명령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의 한글에 얽힌 몇 가지 사실을 통해 우리의 자랑스런 문자 한글에 대한 이해를 다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첫째, 한글의 위대함은 백성을 향한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세종실록』 1443년 12월 기록에는 세종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나온다. 이어 1446년 9월에는 훈민정음이 완성되었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오늘날 우리가 기념하는 반포 580주년은 이 1446년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 기사(御製) 서문에는 백성이 자기 뜻을 글로 표현하고자 해도 한자와 우리말의 차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세종은 백성이 겪는 불편을 개인의 무능으로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백성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문자 환경을 바꾸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교육이 배워야 할 혁신의 본질이다. 학생이 배우지 못하면 학생의 능력만 탓할 것인가, 아니면 학생이 배울 수 있도록 교육의 문턱부터 낮출 것인가? 세종은 백성에게 기존 문자의 높은 장벽을 넘으라고 요구하는 대신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한글은 세계가 인정한 기록유산이자 지식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1997년 유네스코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했다. 여기서 정확히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등재 대상은 문자 체계인 한글 자체가 아니라,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와 사용법 등을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이 기록은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받았다.(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훈민정음(해례본)」)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것처럼 한글의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고, 모음은 하늘·땅·사람을 상징하는 기본 요소를 바탕으로 구성했다. 글자를 단순히 외워야 할 기호로 만든 것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체계로 설계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한글의 과학성과 체계성을 이야기하고 세계인이 경탄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한글의 국제적 위상은 문자 자체에 대한 평가를 넘어 문해 교육의 가치로도 확장되고 있다. 유네스코는 문해 증진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를 기리기 위해 1989년 대한민국 정부의 제안으로 ‘세종대왕 문해상’을 제정했으며, 1990년부터 시상해 왔다. 세계의 문해 증진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세종의 이름을 붙인 상을 수여한다는 사실은 한글 창제 정신이 국경을 넘어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 관련 자료)
셋째, 한글의 역사는 기록을 통해 민족의 기억을 지켜 온 역사다. 한글은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서두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오랫동안 한문이 지식과 공적 기록의 중심에 있었고, 한글은 낮게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글은 일상의 편지와 문학, 종교와 생활 지식의 전달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며 우리 삶 속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렸다.
근대에 들어 일제강점기의 우리말과 글을 지키려는 노력은 한글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1926년 11월 4일, 조선어연구회는 훈민정음 반포 480주년을 기념해 ‘가갸날’을 정했다. 이후 명칭이 한글날로 바뀌었고,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반포 시기를 재검토해 오늘날의 10월 9일이 정해졌다.(국립한글박물관, 「2026년 ‘한글의 해’를 맞아」) 이 기록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문자는 만들어지는 것만으로 살아남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그것을 가르치고, 지키고, 사용하고, 다음 세대에 전해야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가 된다는 사실이다.
넷째, 한글날은 우리 교육의 언어를 돌아보는 날이다. 오늘날 우리 학생들은 한글을 자유롭게 사용하지만, 정작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짧은 영상과 단편적인 정보에 익숙해지면서 긴 글을 읽고 맥락을 이해하며 다른 사람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능력 즉 문해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글을 요약하고 과제를 작성하며 질문에 답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다면 학교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문법과 어휘, 맞춤법을 넘어 자기 생각을 세우고, 근거를 확인하며, 타인의 관점을 존중하는 언어의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학생이 쓴 서툰 글을 빨간 펜으로 가득 채우기 전에 그 안에 담긴 생각부터 읽어 주어야 한다. 말이 느린 학생에게 답을 재촉하기보다 충분히 표현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교사의 설명을 받아 적는 학생에서 자신의 질문을 만들어 내는 학생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다섯째, 한글의 세계적 위상은 자부심을 넘어 책임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K-문화, K-음악, K-영화, K-드라마가 세계인의 관심을 끌면서 한국어와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을 일시적인 유행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에게 문법과 어휘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그 언어에 담긴 역사와 문학, 사람을 존중하는 표현과 문화적 맥락까지 알려야 할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상대를 모욕하는 말, 사실 확인 없이 퍼뜨리는 문장,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표현은 한글을 사용하면서도 한글의 정신을 배반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능력과 아름답게 소통하는 태도가 함께 길러져야 한다. 한글의 세계적 위상은 외국인이 한글을 얼마나 많이 배우느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가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진실하게 표현하며, 타인의 존엄을 지키느냐에 의해서도 결정될 것이다. 한글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약속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한글은 백성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가르친다. 교육은 소수의 뛰어난 사람에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만 제공하는 일이 아니다. 누구도 배움의 문 앞에서 돌아서지 않도록 길을 넓히는 일이다. 위대한 문자는 사람을 차별하는 벽이 아니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다. 위대한 교육 역시 학생을 줄 세우는 데서 끝나지 않고, 모든 학생이 자기 삶을 읽고 써 내려가도록 돕는 데서 완성될 것이다.
한글날을 기념하고 보내며, 다시금 세종이 백성을 향해 열었던 배움의 문을 오늘의 교실에서 다시 활짝 열자. 한글로 생각하고, 한글로 질문하며, 한글로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자. 그때 비로소 한글날은 과거의 위대한 업적을 기념하는 하루의 기억을 넘어, 더 인간다운 미래를 교육으로 써 내려가는 진정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