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판과 뒤판을 정성껏 깎고 붙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바이올린 소리통을 완성했다. 아직 현을 얹지도 않았는데 나무를 쓸어보는 손끝에서 벌써 맑은 선율이 들려오는 듯했다.
내가 강의하는 학교에는 바이올린제작학과가 있다. 강의 일정을 고려해 학부에 입학하면서 나는 가르치는 교수인 동시에 배우는 학생이 되었다. 건물과 건물을 오가며 가르치고 배우는 생활은 낯설지만 설레는 도전이었다. 다시 학생의 자리에 앉으니 미처 보지 못했던 교육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왔다.
바이올린 제작은 날카로운 도구를 익히는 일에서 시작된다. 나무를 자르고 깎고 붙이는 모든 과정이 새로운 세계였다. 처음에는 칼을 쥔 손에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 나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게 깎이기도 했다. 마음이 앞선다고 나무가 따라와 주는 것은 아니었다. 서두르면 흠집이 생기고, 작은 실수 하나가 다음 공정을 어렵게 만들었다. 나무 앞에서는 기다림과 집중이 필요했다. 호기심은 열정으로 바뀌었고, 그 열정은 오랫동안 작업대 앞에 앉아 있을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바이올린 제작의 역사에서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는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특히 1700년부터 1720년대 중반까지는 그의 ‘황금기’로 불린다. 이 시기에 제작된 악기들은 정교한 아치와 균형 잡힌 몸통, 풍부하면서도 멀리 뻗어 나가는 음색으로 높이 평가받는다. 우리는 그가 남긴 명기의 형태와 비례를 참고하여 저마다의 바이올린을 만들어 간다.
바이올린의 앞판에는 결이 곧고 울림이 좋은 가문비나무를, 뒤판과 옆판에는 단단한 단풍나무를 주로 사용한다. 몸통의 길이와 폭, 앞판과 뒤판의 두께, 아치의 높이, 에프홀의 위치까지 밀리미터 단위로 측정하며 다듬는다. 작은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음향을 뚫고 맑고 힘찬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현의 진동을 받아들이고 증폭하는 공명 구조가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판이 지나치게 두꺼우면 나무가 충분히 진동하지 못하고, 너무 얇으면 힘 있는 소리를 안정적으로 지탱하기 어렵다. 불과 몇 밀리미터의 차이가 악기의 음색을 바꾼다. 우리가 도면에 따라 숫자를 재고 나무를 깎지만, 그 숫자 안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장인들의 경험과 과학적 원리가 담겨 있다. 바이올린은 감각만으로도, 계산만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정확한 수치와 장인의 손끝이 만날 때 비로소 하나의 울림이 탄생한다.
지도교수님은 한 땀 한 땀 친절히 가르치면서도 안전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다. 날카로운 칼과 도구를 다루는 서툰 손이 익숙해질 때까지 곁에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때로는 단호하게 손을 멈춰 세우지만, 그 엄격함 속에는 학생을 보호하려는 사랑이 담겨 있다.
작업이 늦어지는 학생을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고, 학생마다 서로 다른 작품을 끝까지 살펴보는 모습에서도 장인의 책임감을 느낀다. 억지로 서두르게 하지 않되 바른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기다리고 이끌어 주는 것, 그것이 교육이라는 사실을 다시 배운다.
나의 목표가 만드는 것 외에도 또 생겼다. 직접 만든 바이올린으로 몬티의 「차르다시」를 연주하는 것이다. 지난 학기 종강 연주회에서 신입 동기생이 연주하는 이 곡을 듣고 단숨에 매료되었다. 느리고 애잔한 선율이 어느 순간 빠르고 격정적인 리듬으로 변하는 순간, 언젠가 나도 저 곡을 연주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분명한 연주 목표가 생기자 나무를 깎는 일도, 서툰 활 잡기를 반복하는 일도 더욱 즐거워졌다.
앞판과 뒤판을 붙여 소리통을 완성했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목을 붙이고 줄을 걸고 조율하며 악기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을 마친 뒤 내가 만든 바이올린으로 「차르다시」의 첫 음을 켜는 날, 이 악기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될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장인의 기다림과 손길을 만나 아름다운 악기로 성장하듯, 한 학생도 교사의 믿음과 사랑 속에서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간다. 좋은 교육이란 사람마다 지닌 고유한 울림을 발견하고, 그 소리가 세상에 힘차게 퍼져 나가도록 끝까지 기다려 주는 일이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