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수능에 서·논술형 평가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고력과 표현력을 평가하고 정답 고르기 중심의 시험에서 벗어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평가 방식이라고 해서 수십만 명의 진학을 결정하는 국가 선발시험에도 적합한 것은 아니다.
서·논술형 수능 추진 혼란 불러
수업에서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는 활동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학생의 성장을 돕는 교육적 평가와 한정된 대학 입학자를 가려내는 선발평가는 목적과 책임이 다르다. 1점 차이가 대학과 학과를 가르는 수능에서는 창의성뿐 아니라 모든 수험생을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학교내 평가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답안을 어디까지 인정할지, 같은 내용을 다르게 표현한 답안에 같은 점수를 줄지 판단하기 어렵다. 한 학급의 답안에도 채점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기 어려운데 수십만 명이 응시하는 수능에서는 어떻겠는가. 채점자 간 편차, 복수 채점, 이의신청과 재심사 절차에 대한 해답 없이 도입부터 논의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국교위는 채점 부담과 공정성 문제를 AI 활용으로 보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AI는 보조 수단일 수는 있어도 입시 공정성의 책임자가 될 수 없다. 다양한 답을 평가하겠다면서 정해진 기준을 학습한 AI에 의존한다면 정책의 목적과 방법도 충돌한다.
선택형 문항이 곧 암기식 교육이고 서·논술형이 곧 창의성 교육이라는 이분법도 경계해야 한다. 잘 설계된 선택형 문항도 자료 해석과 추론 능력을 평가할 수 있고, 서·논술형도 모범답안과 채점 요소를 암기하는 시험 기술로 변질될 수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폭넓은 독서만으로 충분하다는 설명은 현실을 가볍게 본 것이다. 다른 학생이 학원에서 답안 구성과 채점 기준에 맞는 표현법을 익힌다면 어느 학부모가 아무런 준비 없이 기다릴 수 있겠는가. 선호 대학과 학과 정원이 제한된 경쟁 구조가 유지되는 한 시험 형식이 바뀐다고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는다. AI가 선호하는 답안 구조가 알려진다면 사교육 시장은 ‘AI에게 높은 점수를 받는 글쓰기’까지 가르칠 것이다. 새로운 시험은 사교육의 종류와 비용을 늘리고 가정 배경에 따른 교육격차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
예측 가능한 제도 요구돼
국교위의 존재 이유는 정권이나 정책 책임자의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는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교육정책을 만드는 데 있다. 대입 제도는 충분한 연구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며, 일단 마련한 제도는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정책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구나 결과를 신뢰하고 오랫동안 예측할 수 있는 공정한 대입 제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