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활용 서·논술형 평가, 교원 확보가 관건

2026.09.08 10:00:00

 

서·논술형 평가로 가야 한다는 방향에는 공감대가 넓다. 문제는 교육 여건이다. AI 채점이 교사의 채점 부담을 덜어 줄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만, 지금 학교가 가진 시간과 인력, 재정으로 그 기대를 감당할 수 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업무보고가 남긴 과제
지난 8월 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국가교육위원회는 수능 서·논술형 문항 도입과 고교 내신·수능 절대평가 전환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보고했다. 차정인 위원장은 “오지선다는 남이 쓴 정답을 고르는 것에 불과하다”라고 진단했다. 이재명 대통령도 객관식 중심 평가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논술 사교육이 커질 가능성과 제도 변경이 부를 혼란을 우려했다. 교육부는 평가전문교사 국가인증제를 2027~2028년 시범 운영을 한 뒤 2029년 도입하고, 2030년까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교육평가출제지원센터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함께 내놓았다. 국교위는 10월 말 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을 공개하고 내년 3월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방향에는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에는 의문이 남는다. 교육 여건 때문이다. 여기서 여건은 시간과 인력, 예산, 그리고 교사를 지켜 줄 제도적 울타리를 뜻한다. 네 가지를 갖추지 못한 채 평가 방식만 바꾼다면, 공정성 논란은 채점자 편차에서 알고리즘 편차로 바뀔 수 있다.


AI 채점을 통제하려면 교사에게 시간이 있어야 한다
영어권에서는 자동채점 엔진이 오래 검증돼 왔다. 그러나 언어와 필기 조건이 달라지면 같은 성능을 장담하기 어렵다. 한국 학생이 손으로 쓴 답안은 인식 단계부터 변수가 많다.


서울시교육청 채움AI는 66개 실천학교에서 약 3만 건의 데이터를 쌓아 인간 채점자와의 일치도(QWK)가 0.8을 넘었다고 밝혔다. 활용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되는 수치지만, 이 결과는 교사가 공통 문항과 루브릭을 정교하게 설계한 조건에서 나왔다. 경기도 시범 운영에서는 AI가 백지 답안에 점수를 주거나 간결한 답안보다 길이가 긴 답안을 더 높게 평가한 사례가 보고됐고, 채점 부담이 줄었다고 답한 교사는 29.4%에 그쳤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도 한국어 서·논술형 자동채점 연구에서 최종 판단은 사람이 맡아야 한다는 원칙을 유지한다.


관건은 검증에 드는 시간이다. 대표 답안을 골라 기준점을 잡고, 교차 채점으로 불일치 문항을 찾아내고, 기준을 다시 보정하는 절차를 시험마다 되풀이해야 한다. 고등학교 교사는 주당 16~20시간을 수업하면서 담임과 행정업무를 함께 맡는다. 이 조건에 검증 절차까지 더해지면, AI 채점을 도입해도 부담이 줄었다고 체감하기 어렵다. 채점과 피드백에 드는 시간을 수업 시수와 업무분장에 반영하지 않으면, AI 도입은 업무의 성격만 바꿔 놓을 뿐이다.

 

복수 채점 원칙과 학년말 학사 일정
서·논술형의 약점인 주관성을 줄이려면 독일 아비투어처럼 복수 채점과 이의 신청 시 가동하는 조정 절차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규모를 생각하면 문제의 크기가 보인다. 2026학년도 수능 응시자는 55만 4,174명, 성적 통지까지는 3주였다. 한 과목에 문항을 몇 개만 넣어도 답안은 수십만 장이 되고, 두 사람 이상이 읽으려면 채점자가 수천 명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시기는 더 큰 문제다. 수능을 11월에 치르는 현행 일정에서는 채점 기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수능 직후인 12월과 1월은 고교에서 행정 부하가 가장 큰 때다.

 

학교생활기록부 마감과 정시 원서 접수, 진학 상담이 겹치는 기간에 중등교사를 대규모 채점단으로 장기간 차출하기는 쉽지 않다. 방학 중 소집이나 전형 일정 조정도 검토 대상이지만, 어느 쪽이든 학사 일정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일본도 대입 기술식 문항 도입을 준비하다가 채점 인력과 편차 문제를 풀지 못해 계획을 미뤘다.

 

민원과 분쟁에서 교사를 먼저 지켜야 한다
학교는 평가 이의를 처리할 심의 체계를 이미 갖추고 있다. 교사와 교과협의회가 먼저 대응하고, 여기서 정리되지 않으면 최종 심의는 학업성적관리위원회가 맡는다. 그러나 이 절차로 끝나지 않는 민원이 있다. 결정에 승복하지 않는 보호자가 채점 결과 대신 교사 개인의 언행을 문제 삼아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사례도 보고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객관적 평가를 전제로 하는 수능에 서·논술형이 들어오면 행정소송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교육부가 도입하려는 평가전문교사 국가인증제 역시 이 지점에서 우려된다. 평가전문교사는 서·논술형 평가를 비롯한 평가 관련 사항을 학교와 교사에게 컨설팅한다. 학교 안에서 평가 관련 질문이 그 교사에게 모이고, 내신 성적 민원도 함께 몰릴 수 있다. 교육청 단위 민원 대응 창구를 단일화하고 교사의 법률 지원을 제도로 보장하지 않으면, 교사는 분쟁 소지가 적은 문항을 내고 점수를 후하게 주는 쪽으로 물러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평가 혁신은 이름만 남는다.

 

정원과 재정을 줄이면서 첨삭을 요구할 수는 없다
서·논술형 평가는 교사 한 사람이 맡는 학생 수가 적을수록 잘 작동한다. 그런데 이 조건은 이미 법으로 갈라져 있다.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 제32조 제4항은 영재학교의 학급당 학생 수를 20인 이하로 정한다. 반면 일반 학교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51조에 따라 학급당 학생 수를 교육감이 정한다. 경기도교육청의 2026학년도 고등학교 학급편성 기준은 일반고를 24~35명으로 두었다. 한쪽은 상한이 법에 박혀 있고, 다른 쪽은 지역 사정에 따라 열려 있다.


공시 자료는 그 격차를 수치로 보여준다. 2026년 공시 기준으로 서울과학고등학교는 학급당 15.8명에 교원 1인당 4.8명,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는 학급당 14.6명에 교원 1인당 4.4명이다. 교사 한 사람의 주당 평균 수업시수는 각각 11.5시간과 12.8시간이다. 답안을 문장 단위로 읽고 되짚어 주는 피드백이 가능한 구조다. 일반 고등학교 교실은 사정이 다르다. 그런데 교원 정원과 재정정책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교육부는 2027학년도 공립 중등교사를 4,387명 신규 채용하겠다고 사전예고했다. 2026학년도 7,147명과 견주면 38.6% 줄어든 규모이고, 6월에 내놓은 교원 수급 계획의 4,700~5,100명에도 못 미친다. 정원을 채우지 못한 자리는 기간제교사가 메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고등학교 교원 가운데 기간제교사 비율이 24.3%에 이른다고 밝혔다. 평가 전문성은 여러 해에 걸쳐 쌓인다. 기간제 인력이 해마다 순환하는 구조에서는 그 축적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논의까지 겹친다. 정원과 재정을 조이면서 서·논술형 평가를 요구하면, 부담은 교실 안에서 교사와 학생이 나눠진다.


속도도 함께 봐야 한다. 서술형 문항에 한 문장도 쓰지 못한 채 백지를 내는 학생이 교실마다 있다. 이들에게는 오지선다 객관식 문항이 최소한의 성취 경험을 남기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기초학력과 학습 동기가 낮은 학생을 지원할 시간과 인력을 함께 마련하지 않은 채 서·논술형 비중만 빠르게 올리면, 평가 개혁이 학습 포기를 앞당길 수 있다.

 

단계를 나누어 연착륙시키자
그래서 순서가 중요하다. 첫 단계는 내신평가에서 데이터를 쌓는 일이다. 수행평가와 지필평가에는 이미 주관식·서술형 문항이 있다. 교사가 주도하고 AI가 초벌 채점을 돕는 방식을 몇 해 동안 운영하면 손글씨 인식 오류와 오답 유형 자료가 쌓인다. 두 번째 단계는 규모가 작은 고부담 시험이다. 응시자가 수만 명인 자격시험이나 임용시험에서 ‘AI 초벌 채점+전문가 최종 채점’ 체제를 검증하면 사회적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세 번째 단계에서 수능으로 넓히되, 영역별 1~2문항으로 시작해 부작용을 보며 비중을 조정하는 편이 안전하다.


사교육 대응도 이 순서 안에 있다. 채점 기준이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굳으면 사교육은 곧 감점을 피하는 답안 틀을 만들어낼 것이다. 학교에서 쓰고 고쳐 쓰는 경험을 충분히 제공할 때 그 틀은 힘을 잃는다. 결국 평가 대전환의 성패는 기술의 완성도보다 교사가 평가의 주체로서 답안을 읽고 피드백할 시간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학령인구 감소를 교원과 예산을 줄이는 근거로만 삼는 기조에서 벗어나, 교실 여건을 먼저 개선하는 투자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 위에서라야 서·논술형 평가의 공정성과 신뢰성도 자리를 잡을 것이다.

김현규 세종 아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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