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농촌학교의 마을축제

2005.03.17 13:46:00


어느 늦은 가을 밤, 내가 재직하던 음성 청룡초등학교에서는 흥겨운 마을잔치를 벌였다. 이 학교는 68명의 학생들이 오순도순 모여 공부하는 전형적인 농촌의 작은 학교다. 이렇게 작은 시골학교가 시끌벅적해진 건 온 마을 어른들과 한데 모여 펼친 ‘청룡달빛축제’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리듬합주, 캉캉춤, 부채춤, 가족노래자랑, 동화구연 등 다채로운 공연을 마련해 솜씨를 뽐냈다. 적은 수의 학생들이 이렇게 많은 공연을 준비했으니 한 사람이 두세가지 역할을 맡는 것은 기본이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자신에게 숨은 소질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스스로 놀라는 학생들. 덕분에 이제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학교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에요.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와!’하고 막 놀라는 거 있죠? 그래서 더 열심히 꽹과리를 쳤어요.”

사물놀이에서 상쇠를 맡은 학생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신명나게 공연한 이번 축제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면서 한 말이다.

주민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늦은 시간에 축제를 열었기 때문에 평소 농사짓느라, 회사 다니느라 바쁜 부모님은 물론이고 이웃 마을 어른들까지 한데 모였다.

무엇보다 뜻 깊은 것은 마을 어른들이 학생들을 위해 준비한 합창과 공연이었다. 어머니들이 똑같은 옷을 차려입고 입을 맞춰 사랑의 노래를 불러줬을 때 학생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들이 모두 나와 ‘하나 둘’ 구령에 맞춰 씩씩한 율동체조를 선보였을 때는 마을 주민과 학생들이 하나가 돼 박수를 치며 힘을 북돋아주기도 했다. 힘든 것도 잊고 마냥 즐거워하시던 할머니들의 얼굴에선 내내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가기에 농촌 학교는 자칫 쓸쓸해지기 쉽다.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축제야말로 아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을, 주민들에게는 이웃과 화합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유종렬 충북 대소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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