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AI 교육, 기기 보급보다 학생 역량 먼저

2026.07.14 07:19:50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OECD·EU 초·중등 AI 역량체계 분석
교사 판단권·학습데이터 보호 강화 주문

국내 학교 AI 교육이 기기와 플랫폼 보급에 치우쳐 있어 학생의 비판적 사고와 책임 있는 활용 역량을 기르는 방향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교사를 AI 정책의 단순 집행자가 아닌 교육적 판단의 주체로 세우고, 학생 학습데이터의 소유·통제·보호 기준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3일 발간한 ‘이슈와 논점’ 제2508호 ‘재점검 필요한 학교 AI 교육의 방향과 방식’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럽연합(EU)이 공동 개발한 초·중등 AI 리터러시 프레임워크 ‘AILit’와 국내 AI 교육정책을 비교해 이 같은 과제를 제시했다.

 

AILit는 초·중등 모든 학생이 AI의 영향을 받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능, 태도를 갖추도록 하는 역량 체계다. 학생이 AI를 단순히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동 원리를 이해하며, 활용 여부와 방식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설계와 사회적 영향에도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프레임워크는 AI에 참여하기, AI로 창작하기, AI 관리하기, AI 형성하기 등 4개 영역과 19개 세부 역량으로 구성됐다. 각 역량마다 학습자의 기대 수준과 수업 사례를 기초·중급·심화 단계로 제시해 특정 교과가 아닌 여러 교과와 교육환경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보고서는 AILit의 가장 큰 특징으로 기술 이해와 사회·윤리적 판단을 분리하지 않는 점을 꼽았다. 데이터와 확률, 편향 같은 기술적 내용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그것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책임을 함께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비판적 사고와 협업, 창의성, 의사소통도 핵심 역량으로 제시됐다.

 

학생의 주체성도 강조됐다. AI를 무조건 사용하도록 하기보다 학생 스스로 사용할지,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청소년 정신건강과 안녕, AI 활용이 환경에 미치는 비용도 교육 내용에 포함됐다.

 

보고서는 국내 AI 교육정책이 이 같은 역량보다 기술과 도구 활용을 앞세운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1인 1기기 보급, 무선망 확대, 디지털튜터 배치, 국가 AI 교수학습 플랫폼 구축 등이 주요 정책 수단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AI 교육의 목표는 장비 사용 능력이 아니라 모든 학생이 AI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판단하는 역량을 갖추는 데 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AI 윤리를 별도 콘텐츠나 일부 단원으로 제공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AI의 작동 원리를 배우는 과정에서 가치와 맥락, 책임을 함께 다뤄야 하지만 국내 정책은 정보과목 시수 확대나 학교급별 윤리 콘텐츠 보급처럼 기술교육과 윤리교육을 분리하는 접근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이는 2029년부터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 도입되는 미디어·AI 리터러시 평가와도 연결된다. 해당 평가는 학생이 AI의 영향을 받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을 얼마나 비판적으로 탐색하고 평가하는지를 측정한다. 보고서는 AI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개편할 때 AILit의 역량 체계를 참고해 기술 이해와 비판적 판단을 통합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학습데이터 관리체계의 공백도 문제로 지적됐다. 학생 맞춤형 학습과 AI 교수학습 플랫폼 운영을 위해서는 대규모 학습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전제되지만, 데이터를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는지, 상업적 이용이나 학생 프로파일링을 어떻게 막을지에 대한 기준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공공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만으로 데이터의 공공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학습데이터의 수집 근거와 이용 범위, 저장·공유·삭제 절차, 학생과 보호자의 권리 등을 법적·제도적으로 설계하고 민간 플랫폼 의존을 관리할 기준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교사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교원 양성기관 교육과정 개편과 AI·디지털 연수 확대, 정보교사 임용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교사를 플랫폼과 콘텐츠를 전달하는 사람으로만 위치시켜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교사가 수업에서 AI를 사용할지,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전문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학생의 비판적 리터러시도 제대로 길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원 연수 역시 특정 도구의 사용법을 익히는 수준을 넘어 AI의 교육적 가치와 한계를 따지고 학생의 학습과 안녕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는 역량 중심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형평성의 기준도 기기 보급 여부에서 실제 역량 수준으로 옮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모든 학생에게 기기와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학교와 가정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AI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역량에 실제로 도달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범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AI 교육의 목표를 기술 보급에서 학습자의 역량 형성으로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교사를 집행자가 아닌 판단 주체로 전제하고 학생의 안녕과 인간 역량 격차 해소를 교육정책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백승호 기자 10004ok@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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