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피 한 장으로 만든 체육 ‘수업 한 끼’

2025.12.23 11:24:59

유튜브 채널 ‘체육레시피’ 운영자
서울위례초 오유근 교사를 만나다

 

“솔직히 체육 시간이 제일 부담돼요.”

 

어느 초등교사의 말이다. 40분 안에 준비·설명·활동·정리를 모두 해내야 하고, 체육 전공이 아닌 교사에겐 더욱 막막한 시간이다. 초등학교 교사의 체육 수업은 언제나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겠다며, 현직 교사들이 직접 ‘레시피 한 장’을 들고 나섰다. 유튜브 채널 ‘체육레시피’ 이야기다. 필자는 채널을 기획·운영하는 서울위례초(교장 박용구)의 오유근 교사를 만나 이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체육레시피, 한 장짜리 조리법 같은 수업 안내서”

 

Q. ‘체육레시피’라는 이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나요?

 

A. 레시피(recipe)는 ‘어떤 음식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와 순서, 방법을 적어 놓은 것’이잖아요. ‘체육 레시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이 뛰고 웃고 땀 흘리는 체육 시간을 교사가 한 장의 조리법처럼 ‘이 순서대로, 이 맛으로’ 차려 낼 수 있게 돕는 설계도라고 생각했어요. 정답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이 정도 레시피면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는 출발점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Q. 체육레시피 팀은 어떻게 꾸려졌나요?

A. 2024년 봄에 팀을 꾸렸어요. 서울교대 배구부 출신 후배 네 명이 다시 모였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답십리초 길제원 선생님, 대치초 이채연 선생님, 화계초 이현민 선생님, 다들 학교 현장에서 체육을 가르치고 있고, 대학 때부터 함께 운동하던 팀워크가 있어서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보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오 교사는 현재 서울시교육청 체육 프론티어 교사단, ‘365 체육온(ON)활동’ 직무연수 강사, A사의 교실 놀이, 놀이 체육 연수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저는 과학교육과 출신이에요. 전공은 과학인데, 운동을 워낙 좋아해서 학교에서는 체육을 즐기며 가르쳐 왔습니다. 체육 전공인 동기들과 같이 팀을 이루다 보니 기획·촬영·출연·편집까지 역할을 굳이 나누지 않고 네 명이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만들고 있습니다.”

 

Q. 유튜브에 교육 영상이 많습니다. 체육레시피만의 차별점은요?

A. 일단 AI 음성을 쓰지 않습니다. 모두 교사인 저희 목소리로, 저희 말투로 설명해요. 현장감이 훨씬 살아나고, 듣는 교사들도 덜 어색해하십니다. 또 한 가지는 학생 얼굴이 안 나온다는 점이에요. 영상에는 네 명 교사만 등장합니다. 학생들의 시범 장면을 찍는 대신, 교사가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시연하면 되는지를 저희가 직접 보여 줍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콘텐츠를 숏츠·릴스 같은 짧은 형식으로 만들어요. 요즘 선생님들, 길게 볼 시간이 잘 안 나잖아요. 그래서 ‘한 장짜리 레시피’처럼 핵심만 보고 바로 수업 아이디어를 떠올리실 수 있도록 구성합니다.

 

 

Q. 이 채널을 통해 선생님들께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A. 저희 목표는 수익이 아닙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모여서 ‘이게 현장에 진짜 도움이 될까?’를 먼저 물어요.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게 체육 수업의 정답이다’가 아니라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출발점이에요. 실제 선생님들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40분 안에 준비·설명·활동·정리까지 하려니 너무 버겁다’, ‘체육 전공이 아니라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요. 그래서 영상마다 활동 규칙 운영 방법 난이도 조절 포인트를 짧고 간단하게 담습니다. 아이들에게 바로 틀어주는 영상이라기보다, 교사가 보고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게 도와주는 영상이에요.

 

Q. 체육 수업을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A. 저는 체육 수업이 요리랑 정말 비슷하다고 느껴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한 끼를 차려라’ 하면 막막하잖아요. 그런데 레시피 한 장만 있어도 재료를 조금 바꾸거나 양념을 조절해서 나만의 요리를 만들 수 있죠. 체육도 똑같아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40분짜리 체육 수업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간단한 레시피 하나만 있어도 우리 반 상황에 맞게 변형해서 운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현재 채널 규모와 운영 방식은 어떤가요?

A. 콘텐츠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260편이 넘는 숏폼 영상, 유튜브 구독자 약 1700명, 인스타그램 팔로워 약 1만3000명 정도 됩니다. 숏폼 중심으로 운영하는 이유는 분명해요. 선생님들이 출근길, 쉬는 시간, 수업 사이 5분 정도에 핵심만 빠르게 확인하시길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이 활동은 이렇게 하면 된다’는 실행 포인트만 정확히 전달하는 게 목표입니다. 체육 수업 준비가 부담스러운 선생님일수록 짧고 구체적인 안내가 훨씬 도움이 되거든요.

 

Q. 체육 수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A. 저는 항상 ‘액추얼 러닝 타임(actual learning time)’을 생각해요. 아이들이 실제로 몸을 움직이며 배우는 시간 말이에요. 설명하고 줄 세우고 정리하다 보면 실제로 움직이는 시간은 10분도 안 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체육 수업의 핵심은 아이들이 땀을 흘리며 몰입하는 그 시간이에요. 그래서 저희 레시피는 짧고 명확한 규칙 설명, 한 활동을 여러 방식으로 반복·변형, 이동 동선·교구·난이도 설계 이 세 가지를 정말 중요하게 다룹니다. 같은 활동이라도 방식만 조금씩 바꿔 여러 번 해 보면 지루함이 줄고, 아이들의 운동 기능은 자연스럽게 늘어나요.

 

Q. 개인 채널 ‘체육한상’도 함께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A. 네. 체육레시피가 아이디어와 레시피를 나누는 채널이라면, 제가 따로 운영하는 ‘체육한상’은 그 레시피를 실제 학급 수업에서 어떻게 쓰는지를 보여주는 채널입니다. 체육 한 상에는 롱폼 영상으로 수업 시작 전 준비, 규칙 설명, 실제 활동 장면, 마무리와 정리까지 전 과정을 담고 있어요. 선생님들께서 ‘레시피가 실제 수업에선 이렇게 구현되는구나’ 하는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도록 한 거죠. 학생들이 활동에 몰입해 뛰고 웃는 모습, 짧은 규칙 설명 후 바로 활동에 들어가는 장면, 다양한 교구로 변형 활동을 즐기는 모습까지 그대로 담으려고 합니다.

 

 

 

Q. 이 채널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A. 저희는 스스로를 ‘유명 유튜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지향하는 건 한 교과를 깊이 파는 장인(匠人)과 같은 체육 교사에 가깝습니다. 요즘 연수 현장을 보면 AI, 에듀테크, 디지털 등등 화려한 키워드가 정말 많아요. 그런데 저희 팀은 한결같이 ‘초등 체육’이라는 한 영역만 파고들었습니다. 그 꾸준함 덕분인지 최근에 초등교육 전문사이트의 원격교육연수 공모전 2등을 받기도 했어요. 내년까지는 전 학년 체육 콘텐츠를 채워 넣는 걸 1차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연수, 자료 개발, 전문가 활동 등 다음 단계도 천천히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체육레시피의 ‘궁극적인 목표’를 다시 물었다.

A. 정말 단순합니다. 체육 수업이 막막한 선생님께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을 드리고 싶어요. 완벽한 수업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이 몸을 움직이고 웃고, 같이 뛰고 땀을 흘리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체육 수업 준비가 막막한 선생님이 계시겠죠. 저희는 그 선생님께 조용히 ‘레시피 한 장’을 건네고 싶습니다. 그 한 장이, 교실을 움직임과 웃음이 가득한 체육관으로 바꾸는 작은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고요.

 

 

앞서 언급했지만, 대다수의 초등교사는 체육 수업에 많은 부담을 느낀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체육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간극 때문에 교사들은 늘 마음 한켠에 미안함과 부담을 동시에 안고 수업 준비를 한다. 그래서 ‘재미있고 안전하면서도 교육과정에 맞는 체육 수업’을 혼자 힘으로만 설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지점에서 ‘체육레시피’가 가진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왔다. 이 채널은 거창한 이론이나 완벽한 수업 사례를 제시하기보다, 교사가 당장 다음 주나 오늘 체육 수업에 가져가 활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한 장짜리 출발점’을 건넨다. 특히 AI 음성 대신 실제 교사의 목소리로, 학생 대신 교사가 직접 시연하는 방식은 “현장에서 진짜 써 본 사람들의 언어와 감각”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는 인상을 남겼다.

 

또한 오 교사가 운영하는 ‘체육한상’ 채널은 레시피가 실제 교실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 주며, 교사들이 막연한 두려움 대신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다. 활동 규칙 설명, 이동 동선, 교구 활용, 난이도 조절까지 전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초등 체육 수업의 ‘실행 가능성’을 한층 높여 주는 도구라고 느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이들이 스스로를 ‘유명 유튜버’가 아니라 한 영역을 깊이 파고드는 ‘장인(匠人)적인 체육 교사’로 규정한다는 대목이다. 눈에 띄는 수치나 화려한 포장보다, 초등 체육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끈기 있게 붙들고 있는 태도가 교육자로서 큰 울림을 준다. 현장에서 체육 수업을 부담스러워하는 수많은 교사들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라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응원을 건네는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체육레시피’는 단순한 수업 아이디어 모음집을 넘어, 초등 체육 수업을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전해 주는 버팀목에 가깝다. 한 장의 레시피가 수업을 완벽하게 만들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교사의 두려움을 줄이고 아이들의 웃음과 움직임을 늘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체육 수업을 준비하며 막막함을 느끼는 초등 교사에게, 이 팀이 건네는 조그만 한 장의 레시피가 새로운 용기와 첫걸음이 되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조태원 교육문화 에세이스트 j7027@naver.com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 wks123@tobeunicorn.kr, TEL: 1644-1013,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강주호 | 편집인 : 김동석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