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앞 초고층 재개발 논란과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

2025.11.17 13:40:41

언제나 그렇듯이 서울 종묘에 서면 늘 두 가지 시간이 교차한다. 수백 년 전 왕과 신하들이 걸었던 돌길을 밟는 발끝에선 고요한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지만, 고개를 들면 사방을 둘러싼 빌딩들의 유리창이 현대의 속도감을 반사한다. 이 공존의 오묘한 풍경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상징이 되어왔지만, 최근 종묘 인근 초고층 재개발 논란은 그 섬세한 균형을 단숨에 흔들어 놓고 있다. 한국의 세계문화유산 제1호인 종묘가 보존해 온 시간의 품격과 도시의 욕망이 정면으로 충돌한 것이다.

 

유네스코(UNESCO)는 세계유산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완충지대’를 강조한다. 유산이 품은 서사가 훼손되지 않도록 주변 경관까지도 그 유산의 일부로 보기 때문이다. 종묘가 세계유산 등재에서 높이 평가받은 것도 ‘한국만의 제례 문화’와 ‘영혼을 모시는 공간으로서의 장엄한 분위기’ 덕분이었다. 그런데 그 장엄함은 건물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의 하늘, 빛, 여백, 소리까지 모두가 하나의 문화적 무대다. 만약 그 공간을 가르는 초고층 건물이 등장한다면, 종묘의 시간은 ‘단절’되고 말 것이다.

 

이 논란에서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힘은 문화의 힘이다.”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 남긴 이 말은 오늘의 논쟁을 관통하는 질문처럼 다가온다. 그는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총과 돈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문화’를 강조했다. 눈부신 개발 속에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 나라, 시간과 전통을 존중하는 나라가 진정한 강국이라는 생각이었다. 만약 그가 오늘의 서울을 본다면, 우리는 과연 그의 바람에 다가가고 있는가, 혹은 더 멀어지고 있는가, 생각에 깊이 잠기게 된다.

 

세계 여러 도시들은 이미 비슷한 시험대를 거친 적이 있다. 파리는 역사와 경관을 지키기 위해 센강 주변 고도 제한을 철저히 유지했고, 교토는 전통 도시의 이미지가 흐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31m 이상의 건물을 금지했다. 이 도시들은 ‘낮음의 미학’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은 곧 도시 브랜드의 힘이 되었다. 결국 문화 보존은 개발의 반대말이 아니라, 오히려 긴 호흡의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과거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종묘를 찾을 때면, 그들은 늘 비슷한 질문을 했다.

 

“선생님, 왜 이렇게 조용해요?”, “왜 이렇게 큰 빌딩은 안 보여요?”

 

그리고 잠시 후, 아이들은 스스로 대답을 찾았다. “아… 여긴 옛날 사람들이 그대로 있는 것 같아요.”

 

이 짧은 깨달음 속엔 교과서가 줄 수 없는 정체성 교육이 담겨 있다. 문화유산은 아이들에게 단순한 ‘옛 건물’이 아니다. 그들의 시간을 과거와 연결해주는 다리이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종묘의 경관이 변한다면, 그 교육의 깊이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 우려하는 이유다.

 

종묘 인근 재개발 논란은 그래서 더욱 무겁다. 우리는 지금 ‘어떤 서울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 앞에 서 있다. 초고층 개발이 순간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화유산의 훼손은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도시의 이익은 복구가 가능하지만, 시간의 상처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이 꿈꾼 문화강국은 거창한 이념이 아니었다. 그가 말한 문화는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한 나라의 품격을 결정하는 마음의 힘”이었다. 종묘를 지키는 일은 과거를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품격의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서울이 더 높은 도시가 되기보다, 더 깊은 도시가 되기를 바란다. 돌길 위로 스며든 조선의 시간과 유리창에 비친 현대의 시간이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할 때, 비로소 서울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문화강국의 수도’가 될 것이다. 이것이 교육으로 보존하고 가꾸어야 할 진정한 문화강국의 자긍심과 가치라 믿는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hak03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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