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부터 출산 휴가에 들어가신 선생님의 자리를 대신해 4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신규 교사입니다. 정식 발령 전 임시 기간이라 학교생활이 아직 낯설고 서툰 부분이 많습니다. 처음 이 반을 맡을 때, 주변에서는 대체로 무난하고 큰 문제 없는 학급이라 말해 주셨고, 저 역시 기대감으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의 수업 태도나 행동이 점점 무너지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작고 단호하지 못한 저의 말은 수업 시간에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자주 묻히고, 밤새 준비해 간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무력감과 자책이 커지고 있습니다.
제가 어려 보이고 서툴러 보여서인지, 아이들이 저를 쉽게 생각하고 통제를 벗어나려는 듯한 행동도 보입니다. 차분하게 지도하려 해도 결국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방식으로 상황을 통제하게 되고, 이내 아이들이 킥킥거리며 웃는 모습을 보면 조롱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너집니다. 예전에는 화를 거의 내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매일같이 분노를 느끼고, 아이들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어렵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학급은 기존 담임 선생님의 스타일에 따라 이미 어느 정도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고, 그것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내년 3월, 처음부터 제가 학급을 운영하게 되면 조금 나아질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보지만, 동시에 제가 유난히 아이들을 향한 인내심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도 커지고 있습니다. 매일 달력을 보며 계약이 끝날 날만 기다리는 제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교사로서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을지 스스로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사연자: 이현지(가명) 교사) |
매일 밤 혹은 아침 선생님께서 출근하는 것이 무섭고 두렵지는 않을지, 마음에 큰 돌을 얹은 기분은 아닐는지 생각하며 보내주신 사연을 읽었습니다. 누구나 신규교사로 처음 교단에 서면 크고 작은 혼란을 경험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무런 고민 없이 능숙하게 처음부터 잘하기란 어렵습니다.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단어로 표현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한 명의 선생님과 다수의 학생이 한 공간에 있는 곳이 교실이지요. 아이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갈등이 빚어지듯 선생님도 아이들과 관계를 맺고 갈등을 경험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가 관찰자로 바라보는 것과 당사자가 돼 경험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사가 되기 전 ‘나중에 나는 어떤 교사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하고 기대하셨던 것과 막상 교사가 돼 아이들과 매 순간 부딪히면서 겪는 경험은 상이할 수 있고 그게 당연합니다.
교생실습을 다녀온 예비 교사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곤 합니다. “교생실습을 나가서 만난 학급은 마치 모델하우스나 잘 만들어진 영화의 티저와도 같습니다. 나중에 아이들과 만드는 학급은 본인이 직접 그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라고 말이죠. 이처럼 매해 담임이 되면 처음 만난 아이들과 학급의 규칙을 설정하고 서로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들 역시 올해 담임 선생님의 스타일과 규칙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고경력 분들께서는 3월이 한 해 분위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하곤 합니다.
지금 선생님의 상황을 다시 보면 주변에서 대체로 무난하고 큰 문제 없는 학급이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은 사실일 수도 혹은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신 바와 같이 지금 반 아이들은 기존의 담임께서 만들어 놓은 규칙과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간혹 중간에 담임 선생님이 교체되어도 교사의 요구와 기대에 순응하고 무난하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만 보통은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이런 현상은 나이, 목소리 크기 등과 관계 없이 연차가 높은 분이 반을 맡아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집단의 역동임을 이해하시면 좋겠습니다. 절대 선생님이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명확한 원칙과 일관된 자세
선생님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이 이야기하곤 합니다. ‘제가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권위가 없어요’, ‘저는 단호하게 구는 것이 어려워요’, ‘제가 기가 약해서요’ 등의 고민이죠.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단호하게 구는 것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단호하다는 것의 의미를 먼저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사가 단호하게 해야하는 이유는 아직 발달 중인 아이들에게 사회에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는 것, 되는 것과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체득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종종 ‘단호하다’는 것을 내가 나쁜 사람이 된다거나 무섭게 구는 거라고 오해하는 분들을 보곤 합니다.
내가 소위 기가 세야만, 목소리가 커야만 애들에게 단호하게 굴 수 있다고 믿는거죠. 하지만 단호하다는 것은 아이들이 지켰으면 하는 규칙들에 대해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꼭 지켜야 하는 원칙에 대해 타협하지 않거나, 침묵으로 단호함을 표현할 수도 있고, 짧고 명확한 지시를 통해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선생님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화를 내고 지금처럼 소리를 지르는 방식을 자주 쓰게 되면 서로의 관계만 나빠질 뿐 교사의 권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다른 모습에 매번 대응하기 보다 학급에서 꼭 지켰으면 하는 원칙을 명확히 하신 뒤 그 순간에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셔야 선생님과의 행동 규칙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친절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도 어렵다는 것은 심리적 여유가 바닥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흔히 우리가 정서적 소진이라고 부르는 현상이죠. 나는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인데 애들한테는 화를 내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그 순간에는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에게 화가 나고 소리를 지르고 친절하게 대하지 못하지만 소강상태에 접어들면 내가 나 답지 못하게 반응했다는 사실에 더 실망하고 스스로 자책하고 다음 순간 또 반복하게 되면서 교사로서의 효능감도 낮아지게 됩니다.
분노 보다 반복된 규칙 전달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무리해서 다정하고 친절한 교사가 돼야겠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감정노동 혹은 정서적 소진, 번아웃이라고 부르는 증상은 내가 내면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욕구의 상태와 반대되는 감정을 억지로 유지해야 할 때 오기 쉽습니다. 이미 다른 선생님께서 유지해오던 학급을 심지어 신규교사인 상태에서 방학이 끝난 상태에서 들어가서 아이들과 관계를 안정적으로 맺고 통제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내 맘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킥킥거리고 웃거나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을 선생님에 대한 조롱으로 해석하지 마세요.
남은 기간이 몇 개월 뿐이지만 선생님께서 지금 하셔야 할 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 반 아이들과 어떤 시간을 보낼 것인지, 무엇을 꼭 지켰으면 하는지를 정리해서 그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정도를 골라 아이들에게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둘째, 선생님께서 도저히 참을 수 없이 분노하게 되는 순간이 언제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 장면은 나중에 새로운 학급을 만나게 되더라도 규칙을 통해 아이들이 경계선을 침범하지 않도록 알려줄 수 있는 중요한 신호가 됩니다.
내년에 새로운 학급을 만나면 분명 올해보다는 좋고 더 나아진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관계 맺기, 학급 구조화에 대한 선생님의 그림이 명확하지 않다면 내년에도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처음에 학교 현장에 적응하는 중이라고 말씀하셨죠. 올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임시 담임을 맡는 동안 교사로서 실전 경험을 연습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과 지켰던 규칙이 있어도 올해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다시 새롭게 규칙을 세우고 지켜나갑니다. 선생님께서 지금 맡은 아이들과도 비록 몇 개월이지만 선생님의 학급을 꾸려나간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을 2-3가지 정도 정하셔서 공지하고 지켜나가세요. 이때의 규칙은 앞서 말씀드린 단호해야하는 규칙과 내 경계선을 침범하는 순간들을 참고하셔서 정하시면 좋습니다.
오랜 연차의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신규 교사시절 겪었던 어려움들을 이야기하시곤 합니다. 누구나 겪어나가는 과정인거죠. 선생님이 교사로서 부적합해서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조금 어려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과정이 내년에, 그리고 그 후년에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