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오솔길-21> 인구론의 오역

2004.01.29 09:27:00


맬더스는 18세기 후반부터 태동한 근대 경제학의 초석을 놓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는 1798년에 펴낸 자신의 저서 '인구론'에 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말로 가장 유명하다.

이 말은 '인구'라는 사회적 현상을 자연과학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하여 경제학이 객관적 관찰과 설명 그리고 예측을 행하는 어엿한 과학으로 자리잡는 데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위에 인용한 표현은 잘못된 번역이다. 이 구절에 대한 원어 표현을 보면 "Population, when unchecked,
increases in a geometrical ratio. Subsistence increases only in an arithmetical ratio"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되는 어구는 'geometrical ratio'와 'arithmetical ratio'이다.

등차수열과 등비수열은 영어로 각각 arithmetic sequence와 geometric sequence로 부르며 이른바 '수열과 급수'라는 주제 아래 논의되는 내용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다. 이와 같은 중요성 때문에 고교 과정에서 누구나 배우도록 되어 있다. 한편 급수는 '수열의 합'이며 영어 표현은 series이다. 따라서 등차급수는 영어로 arithmetic series이고 등비급수는 geometric
series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산술급수와 기하급수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등차수열을 산술수열, 등비수열을 기하수열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배경 지식을 갖고 다시 맬더스의 말로 돌아가 보자. 그러면 우리는 곧 'geometrical ratio'와 'arithmetical ratio'에 정확히 들어맞는 개념은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의 말을 올바로 옮기자면 이 표현 하나만 붙들고 씨름할 게 아니라 그 뒤에 이어지는 설명을 자세히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지면 관계상 이 구절에 이어지는 맬더스의 설명을 모두 옮길 수는 없다. 하지만 대략 말하자면 그 내용은 "아무런 제한이 없을 경우 인구는 매 25년마다 배로 증가한다. 반면 같은 기간마다 식량은 오직 일정한 양만큼만 증가한다"라고 간추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geometrical 'ratio'와 'arithmetical ratio'는 각각 '일정한 비율'과 '일정한 수량'을 뜻한다. 이를 토대로 문제의 구절을 정확히 옮기면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경우 인구는 등비수열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등차수열적으로 증가할 뿐이다"로 된다(subsistence는 넓은 의미로
'생존 상황'을 뜻한다. 그런데 이를 위하여 식량이 가장 중요하며, 일반적으로 이 구절을 식량과 결부시켜서 옮기므로 여기서도 식량으로 옮겼다).

경제학은 인문과학 가운데 수학을 가장 많이 원용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가장 기본적 지식이라 할 수 있는 이 구절이 이처럼 오역되어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물론 원전이 200년도 넘는 고전이어서 거기 나온 용어들 자체가 모호한 점도 있고 또 최초의 오역을 무심코 답습한 탓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어쨌든 학문간의 교류가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는 오늘날 이런 혼란을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나아가 앞으로 비슷한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고중숙 순천대 사대 교수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강주호 | 편집인 : 김동석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