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상담실의 사탕

2003.11.06 14:29:00


쉬는 시간만 되면 내가 있는 상담실으로 학생 몇 명이 우르르 몰려들어온다. 지난 봄부터 시시때때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턱 밑에 굵은 수염이 여러 가닥 돋아난 고2짜리 녀석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선생님, 사아-탕" 한다. 나도 얼른 애들처럼 "그래, 어서 와. 귀여운 우리 아기들,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하고 맞장구를 쳐준다.

학교에서 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학생이 제 발로 찾아와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지는 않는다. 눈물까지는 기대하지 못해도 좀 심각한 모습이라도 봤으면 원이 없겠는데 도통 세상이 너무 편한지, 어려운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는 건지 그런 모습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학생들이 좋아하는 사탕을 상담실에 사다놓고 언제든지 와서 집어가도록 한 것이다. 조금 유치하고 원초적인 방법이지만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일단 내 방으로 아이들이 몰려오도록 했으니 일차 작전은 성공한 셈이다. 그 다음은 아이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나누면 되는 것이다. 오늘도 청포도 맛이 나는 사탕 봉지를 사들고 학교를 간다. 여기저기서 나를 본 녀석들이 "선생님, 사아-탕" 한다. 나를 사탕으로 보지 말라고
시침을 뚝 떼지만 소용이 없다.

"선생님, 저 요즘 공부 엄청 해요. 여자친구랑 한달에 한번씩만 만나기로 약속했고요."

지난 5월에 자퇴를 신청하려던 현철이가 맘 잡고 열심히 한다며 먼저 말을 건넨다. 내성적이어서 친구가 적은 순화의 손에 사탕 한 알을 쥐어 주고 "이게 내 마음이야"하면 저도 수줍게 웃으며 "잘 알아요" 대답한다. 정환이는 심각하게 "선생님, 요즘 진로선택 때문에 살맛이 안나요" 한다.

미래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경험과 지혜, 사랑을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학생을 위해 피흘려 죽을 수는 없어도 내 주위의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나눠주는 일, 그런 작은 섬김의 삶이 교육이라고 한다면 그 실천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임영규 서울 독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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