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가 열리면서 사람들은 지식을 얻는 방법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검색 창에 묻고, 긴 글을 읽기보다 AI에게 요약을 부탁한다. 이제 AI는 모르는 것을 알려 주는 가장 빠른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AI가 발전할수록 국어사전의 가치는 더욱 발휘될 것이다. AI가 아무리 많은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그 정보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출발점은 결국 이른 사용하는 인간이 ‘말의 뜻’을 아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최근 중학생 대상 수업에서 ‘족보’가 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족발보쌈 아니예요?"라고 답했다. 신문기사에서 본 현실이 나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한국 문화에서 매우 가치가 높게 평가를 받는 족보조차 중학생의 언어생활에서 사라지고 있다.
10여년 전 프랑스 오랑주 한국학 교수가 '한자 버리면 한국문화도 잃을 것' 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는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박씨부인전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다. 오래 전 한불사전에 한자를 안 써 의미 전달이 안 된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이제는 질문력이 핵심 실력인 시대다. AI에게 질문하려면 먼저 기본 단어를 알아야 한다. 좋은 질문이 핵심인데 질문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한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정’, ‘책임’, ‘배려’, ‘자유’, ‘권리’, ‘의무’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AI에게 질문을 할 수가 없다. 또 많이 해도 원하는 답을 얻기 어렵다.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으면 질문도 잘못되고, 답변을 이해하는 과정에서도 오류가 발생한다.
따라서 국어사전은 단순히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는 책이 아니다. 어휘력이 곧 사고력이다. 생각의 재료인 어휘를 주는 기본 영양제라고 할 수 있다. 외국어를 배울 때 중요한 것은 어휘력이다. 필자는 중학교 시절 단어장을 만들어 정리하고 가지고 다니면서 암기한 기억이 있다. 무엇보다도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그 뜻을 연결하고, 질문하고, 시험문제 풀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화하고 글을 쓰면서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만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사고가 언어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데 언어는 핵심적인 도구다. ‘싫다’라는 말밖에 모르는 사람과 ‘불편하다·부당하다·우려스럽다·유감스럽다·비판적이다’라는 표현을 구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의 생각에는 차이가 생긴다
국어사전을 펼쳐 단어의 뜻과 쓰임을 확인하는 습관은 자연스럽게 어휘를 넓혀 준다. 어휘가 늘어나면 표현할 수 있는 생각의 범위도 넓어진다. 국어사전을 활용하여 어휘력을 확장하고, 표현력을 기르며, 이를 통하여 사고력과 질문력을 높이는 것이 교육의 선순환으로 작동되어야 한다. 이같은 연결고리가 AI 시대의 기초학력을 떠받치는 중요한 사슬이다.
AI가 답을 주는 시대일수록 ‘검증’이 중요하다. AI는 매우 유용하지만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럴듯하지만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따라서 AI 시대에는 ‘AI가 무엇이라고 했는가’보다, ‘그 말이 무슨 뜻이며, 과연 옳은가’를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이때 가장 기초적인 도구가 국어사전이다. AI가 어려운 개념을 설명했을 때 핵심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다시 확인해 보는 습관을 들이면, 학생은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사용자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는 능동적인 학습자가 된다. 국어사전은 AI와 경쟁하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AI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인간의 기초 체력과 같은 것이다.
디지컬 시대가 되면서 종이 국어사전에서 디지털 국어사전으로 변하였다. 물론 검색 창에서도 가능하지만 편리한 앱은 매우 유용하게 활용된다. 오늘날 학생들에게 두꺼운 종이 사전을 반드시 들고 다니라고 할 필요는 없다.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에서 언제든지 국어사전을 이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매체가 아니라 ‘모르는 말을 만나면 바로 찾아보는 습관’이다. 특히 학생들에게 모르는 말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사전에서 뜻을 찾는다. 예문을 읽는다. 자기 문장으로 다시 써 보는 습관을 길러 줄 필요가 있다. 이 네 단계만 꾸준히 실천해도 어휘력과 문해력을 크게 키울 수 있다.
국어사전은 AI 시대의 ‘언어 백신’이다. AI 시대에는 정보가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된다. 수많은 정보 가운데 무엇이 정확한지 판단하려면 문장을 읽고 핵심어를 파악해야 한다. 특히 비슷해 보이지만 의미가 다른 단어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능’과 ‘불가능’, ‘사실’과 ‘의견’, ‘추측’과 ‘판단’, ‘원인’과 ‘결과’를 구별하지 못하면 AI가 만들어 내는 수많은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국어사전은 학생들의 언어 감각을 지켜 주는 기초 영양제이자 언어 백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교육도 ‘사전 찾기’를 다시 기본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AI 시대의 학교에서는 AI 활용 교육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AI를 활용하기 전에 국어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수업 중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학생 스스로 사전을 찾아보고, 단어의 뜻과 어원을 확인하고, 그 단어를 활용해 문장을 만들어 보게 할 수 있다. 앱 사전의 활용은 매우 편리하며 유용하다.
특히 국어·사회·과학·수학 등 모든 교과에서 교과서의 핵심 어휘를 사전과 연결한다면 어휘 공부가 곧 교과 공부가 된다. AI가 학생에게 답을 알려주는 시대일수록 교사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다. “AI에게 묻기 전에 먼저 국어사전에서 그 말의 뜻부터 찾아보자.” AI 시대, 가장 먼저 먹어야 할 영양제는 국어사전이다. 국어사전은 결코 낡은 책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