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명퇴 급증의 의미와 대응책

2025.12.29 10:54:06

필자는 과거 2개 고등학교에 걸쳐 5년 간의 고등학교 교감 봉직 시에 의외로 많은 업무로 인한 부담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을 상실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를 경험했다. 가끔은 “내가 이러려고 교감이 되었나?”라고 자책하기도 했으며, 순간순간 교실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익숙한 수업 시간이 더 그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교직의 꽃’이라 불리는 교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과 학교의 최고 경영자(CEO)로서 교육 철학을 펼칠 수 있다는 마지막 성취동기와 의지를 다잡아 교장으로 40년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임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교감 시절을 회고해 보면 교사와 학교장의 중간에서 중재 역할과 함께 학교의 교무, 재정, 행정의 모든 면에 걸쳐 엄청난 양의 업무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학년말에 다음 학년도 교무분장 준비 시에는 모든 교사를 면담하며 가급적 희망 업무 순위에 따라 배정한다는 원칙으로 긴 시간에 걸쳐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했다. 특히 보직교사를 꺼리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적임자를 선정하기에 많은 시간의 면담과 고민을 감내해야 했다.

 

최근 인천일보(2025.12.24.)에 의하면 인천지역 학교에서 교사 명예퇴직의 증가와 함께 특히 행정·교원 관리는 물론 문제 학생 지도를 담당하는 교감들의 퇴직이 늘어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우려가 있었다. 요즘 교감은 대개 악성 민원 처리 등의 책임을 폭넓게 지면서, 이를 버티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이는 교직 위계상 마지막 단계이자 누구나 꿈꾸는 교장 승진을 포기하기 일쑤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사실 교감의 업무를 고려해 보면 그러한 인과관계가 간단하게 드러난다. 행정업무, 학교 시설 관리, 문제 학생 지도, 악성 민원 등 교감이 맡아야 하는 업무 범위가 광대해진 탓이다. 2023년 발생한 서울서이초 교사 순직 사건 이후 악성 민원 처리·조율이 가중된 점도 교감 명퇴 증가 이유로 꼽힌다. 교감은 수많은 행정업무 외에 교실에서 지도가 어려운 문제 학생을 데려다 분리 지도를 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한다. 사안이 불거진 악성 민원도 교감에게 올라온다. 이러한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만큼 심리적 압박은 클 수밖에 없다.

 

2024년 기준으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교감의 명예퇴직자가 2581명에 달했다는 교육부 집계는 단순한 인사 통계가 아니다. 2020년 1125명에 불과했던 수치가 4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한 이 현상은 교감이 감내해 온 과중한 업무 부담과 책임 증가의 적나라한 결과다.

 

학교 관리자들은 본래 교육 현장의 중간 조정자이자 운영 리더 역할을 수행해왔지만, 최근에는 과거 어느 때보다 민원 대응, 갈등 조정, 학생 안전 및 문제 행동 지도, 각종 이해관계자와의 소통까지 폭넓은 역할을 떠안고 있다. 특히 서울 서이초 사건 이후와 같이 사회적 이슈가 커질수록 교감에게 가해지는 책임과 부담은 한층 커졌다.

 

최근에도 필자의 지인인 현장 교사들과의 대화에서 이러한 변화가 여실히 드러난다. 한 초등 교감은 “문제 학생 지도, 갈등 상황에서의 중재, 민원 대응까지 교감이 중심이 된다”고 말하며, 이는 단순한 행정업무를 넘어 정신적·심리적 부담까지 요구되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업무로 인해 교장 승진을 목표로 해온 경력도 흔들릴 만큼 지속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어느 중학교 교감은 “교사들에게 업무를 할당하는 것도 갈등 조정의 연속이며, 상위 행정기관과 학부모, 교사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다 보면 책임은 많고 실질적인 권한 부여는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이는 교육 현장의 관리자들이 단순히 수많은 작은 업무들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의 정서적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까지 부담하게 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업무의 폭주와 책임 증가가 단지 개인의 부담이 아니라 시스템의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감의 역할 확대는 OECD 국가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학교 리더에게 행정 업무, 인사 관리, 교직원 역량 강화, 교육과정 중심 운영까지 요구되는 경향이다. 그럼에도 효과적인 지원 체계 부족이 관리자들의 업무 만족도를 저해하고 있다는 점이 국제 비교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한국 교육 행정의 특성상 교감과 교장은 법적·제도적 권한보다 책임이 더 무거운 직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교육부는 직무수당 인상을 추진한 바 있으나, 업무량과 비교할 때 여전히 현실적인 보상과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있다. 현재의 교감 명퇴 급증은 교육 정책 전환이 시급함을 알리는 신호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관리자 역할의 핵심과 비핵심 업무 분리 ▲관리자에 대한 정당한 보상 및 지원 확대 ▲민원 문화 개선 및 교권 보호 제도 강화 ▲교육 행정 시스템 혁신 ▲디지털 및 공동체 기반 지원 등의 조치가 절실하다 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왜 교감이 필요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하고 교감 직책의 폐지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하나만 알고 둘 이상은 모르는 지극히 무지의 소치다. 교감이 있는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가 그 이유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 역할의 중요성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교장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다. “어떤 학교가 좋은 학교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좋은 교감이 있는 학교”라고 말한다. 이처럼 교감의 존재감이 학교에서 선순환을 이루는 가운데 최근 교감 명퇴자 수의 급증은 개인의 선택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교육 현장의 위기 신호라 할 것이다.

 

교감은 학교라는 작은 조직의 리더이자 교육 공동체의 연결 고리다. 지금의 현상은 학교 관리자들에게 과도한 책임이 주어지고 권한과 지원은 부족한 채로 남겨진 결과라 할 수 있다. 교육 정책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지속 가능해야 질 높은 교육이 가능하다. 과감한 역할 재설계, 현실적 보상 체계, 민원 대응 시스템 혁신을 통해 교감이 다시 교육 현장의 중심으로 다가설 수 있는 길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는 총체적 위기라 할 수 있는 이 나라 교육을 살리는 효율적인 대응책 중의 핵심이라 믿는다.

 

전재학 교육칼럼니스트, 전 인천 산곡남중 교장 hak03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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