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게임중독과 관련된 한 토론회에서 한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아이들이 게임에 중독되어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잠도 못 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가족은 게임에 중독된 아이 때문에 심각한 불화를 겪고 있었다.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새로운 활력소를 찾기 위해 선택한 인터넷게임에서 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일까? 왜 가족들과 불화가 생겨 가족해체위기로까지 가는 것일까? 이는 인터넷게임의 특성 때문이다. 인터넷게임 이용자들은 키보드의 단추들을 쉬지 않고 조작해 이를 통해 게임의 내용을 주도적으로 생성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직접적인 보상도 받게 된다. 자신들의 능력과 성과에 따라 게임아이템을 획득하게 되면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그것을 지키고 더 좋은 것으로 향상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게임을 중단하면 보상물이 약화되거나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중단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게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놓은 보상물을 지키지 못하게 게임중단을 요구하는 가족들과는 당연히 불화가 생길 수밖에 없고, 게임에 빠져들수록 불화의 정도는 점점 깊어져만 갈뿐이다.
그러면 게임이 아이들에게 정말 나쁘기만 한 것인가. 게임 중에는 아이들의 긴장완화와 건전한 여가생활에 도움을 주는 게임들도 많다. 인지·학습 능력의 발달, 공간지각 능력의 향상에도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게임으로부터 얻은 특정한 보상물을 지키고 업그레이드하도록 해서 계속할 수밖에 없는 게임구조를 가진 유형의 게임들은 문제가 되며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더욱 문제가 된다.
2005년 미국심리학회는 어린이·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미국 내에서 판매되는 비디오게임에서 폭력을 줄일 것을 게임산업계에 권고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폭력적인 게임들에 대한 많은 연구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보니, 게임 내 폭력이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분노, 공격적 사고와 행위를 증가시키는 반면 친사회적인 행동은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2007년 미국의료학회도 게임과 관련된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게임중독에 의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부모들이 자녀의 게임 이용을 세심하게 모니터링하고 게임이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 폭력적인 게임과 게임을 많이 하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게임 중독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거의 아이들과 그 가족에게만 맡겨져 있는 상태다. 게임중독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터넷게임을 둘러싸고 두 가지 가치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산업적 가치이다. 국내 인터넷게임은 세계 최강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9년에는 15억 달러의 수출 성과를 올리기도 했고, 국내 고용창출 효과도 매우 크다. 따라서 인터넷게임산업은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진흥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보호 가치이다. 이들이 인터넷게임 때문에 수면권과 학습권을 침해받으며, 건강과 가족관계에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인터넷게임에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문제를 경험한 중국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인터넷게임 중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피로도시스템(Fatigue System)’을 도입했다. 하루 3시간 정도를 건강한 게임이용시간으로 보고, 그 이상으로 이용하게 되면 게임이용으로부터 얻은 보상물이 감소하도록 하는 조치이다. 태국은 연령대별로 차이를 두면서 오후 2시에서 10시까지만 인터넷게임 서비스하도록 ‘셧다운제도(Shutdown System)’를 강제 도입했다. 국내에서는 일부 인터넷게임업체들만이 자율적으로 피로도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강제적인 규제조치는 없는 상태이다.
인터넷게임의 산업적 가치, 어린이·청소년 보호 가치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그 해법은 산업적 가치에 대해 일정 정도의 ‘침해’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인터넷게임산업이 성장하는 동안 어린이·청소년과 부모들의 희생이 지속되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희생을 했던 개인들에게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터넷게임 업계 스스로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피로도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면, 강제적인 규제도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학교현장에서도 아이들에게 정보통신윤리를 가르치면서 게임이용윤리를 함께 다루고, 부모들은 세심하게 자녀들의 게임이용을 관찰하고 지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게임 강국의 이미지 유지와 아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사회구성원 모두가 양보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