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생활기록부 전산작업을 하고 있는데 웬 사람이 구두를 신은 채 교무실로 들어왔다. 경찰서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그는 교통사고 조사계 뺑소니 전담반 최 형사라며 한 학생이 교통사고를 목격해서 조사하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교감선생님께 허락을 받았다며 그 학생을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
그 학생을 불러다 주자 형사는 학생에게 점심이나 먹으면서 이야기를 하자며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보고 있던 나는 형사에게 밖으로 나가기보다 학교에서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학생에게는 만일 교내를 떠나게 되면 부모가 궁금해 할 수도 있으니 먼저 집에 전화를 하라고 말했다.
그 때였다. 형사는 내게 인상을 찌푸리더니 왜 그렇게 비협조적이냐고 불평을 해대기 시작했다. 내가 무엇이 비협조적이었냐고 반문했더니 그는 갑자기 반말을 하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어 나도 반말로 대꾸를 하니까 그는 심한 욕설을 해대며 경찰서로 가자고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현장범도 아닌 내게 경찰서로 가자며 핏대를 올리는 그 형사를 보면서 정말 기가 막혔다. 동료 교사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실랑이는 계속 됐을 것이다. 형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갔다. 나와 동료들은 갑작스런 소동을 겪고 한 동안 충격에 싸였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자가 학교에 들어와 교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과 욕설을 하다니…. 교사라는 신분이 한없이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현 정부와 이 사회, 그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 교권의 실체를 그 형사는 내게 다시 일깨웠다.
분한 생각에 나는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고 경찰서장은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시간이 흘러 마음은 조금 진정됐지만 아직도 그 씁쓸한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는 우리 교사들이 스스로 교권을 보호하고 지켜내야 한다는 점을 느꼈다. 개혁의 의지를 상실한 정치권과 교직을 업신여기는 사회 안에서 교사들이 기댈 곳은 없다. 아무리 어려워도 교권과 자율은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 가야 한다는 마음에 어깨가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