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새, 어보, 그리고 도장 문화

2021.03.02 09:25:00

 

[박광일 여행작가·(주)여행이야기]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조선 시대 어보(御寶)의 제작기법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어보는 왕과 왕비의 도장으로, 이번에 분석한 어보의 수는 322점이다. 이 가운데 금보가 155점이고 옥보 167점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어보가 모두 331점이니 상당수를 분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분석 과정에서 금보의 경우 구리, 아연의 비율이나 금으로 도금하는 기법(아말감기법: 금을 수은에 녹여서 도금한 뒤 수은을 증발시키는 방법) 등이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을 확인했다. 참고로 어보는 어책(御冊)과 더불어 현재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왕, 그리고 왕비의 수에 비해 어보의 수가 크게 많다. 또 어보와 국새(國璽), 또는 옥새(玉璽)라고 부르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나라를 상징하는 도장, 국새

 

먼저 국새를 살펴보자. 새(璽)는 천자, 왕의 도장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국새는 말 그대로 나라를 상징하는 도장이다. 어떤 왕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 그리고 정부를 상징하는 물건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문서에 이 도장, 국새를 찍는다. 나라 사이의 외교 문서가 대표적이다. 국내 문서에도 국새를 찍는 경우가 있다. 국새 역시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국새 중 대외 문서에 찍는 국새가 13종류, 대내 문서에 찍는 행정용 국새가 26종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국내 행정용 국새 일부만 남아있다.
 

국새에는 조금 아쉬운 역사가 담겨있다. 고려 말, 고려는 명으로부터 ‘고려국왕지인’이란 국새를 받았다. 이 국새가 ‘사대외교’의 관점에서 여러 국새 가운데 대표가 되며 ‘대보(大寶)’란 이름을 갖게 된다. 하지만 명이 줬다는 점, 그리고 맨 끝에 인(새나 보란 글자보다 격이 낮다)이란 글자가 있다는 점은 고려와 명이 사대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조선이 건국하고 나서 역시 태종 때 ‘조선국왕지인’이란 국새를 받아서 ‘대보’로 쓰게 된다. 이런 상황은 명에서 청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외교 관계의 변화 속에 국새의 내용도 달라진다. 근대에 이르러 조선은 새로운 외교 질서에 눈을 뜬다. 1876년 강화도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서양 열강이 적어도 외교의 형식에 관해 나라 사이의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청은 오히려 형식적인 사대관계를 넘어 실질적인 내정 간섭을 하고자 하며 조선의 많은 사람이 반발했다. 
 

그런 가운데 조선은 이전과 다른 국새를 만들어 쓰게 된다. 2020년 미국에서 환수된 국새는 1882년부터 쓰던 것인데 ‘대군주보(大君主寶)’를 쓴 이후 1894년 이후부터 ‘대조선국보(大朝鮮國寶)’와 ‘대조선대군주지보(大朝鮮大君主之寶)’를 제작해 썼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전과 달라진 조선과 중국 사이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이후에는 ‘대한국새(大韓國璽)’·‘황제지새’·‘황제지보’·‘칙명지보(勅命之寶)’ 등 황제의 지위에 맞는 국새를 만들어 쓰게 된다. 이 시기에 이르러 거북 모양의 손잡이도 용 모양으로 바뀐다.
 

이처럼 국새가 나라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 수가 일정하다. 그러나 어보는 왕 개인에게 부여되는 도장인데, 특정한 의식을 치를 때마다 제작한다는 점에서 그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어보는 원칙적으로 왕의 시호나 묘호가 정해지면 제작한다. 왕비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세자나 세자빈에게도 책봉될 경우 어보(보통 어보로 부르지만 실제 도장의 이름은 ‘왕세자지인’이 된다)를 갖게 되니 기본적으로 왕이나 왕비의 어보는 그 숫자가 여러 개다.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왕이 존호를 받을 때에도 어보를 제작한다. 신하들이 왕의 덕을 칭송하기 위해 부르는 이름을 올리는데 이를 존호라고 한다. 존호는 왕비의 경우 살아서 받는 경우가 빈번한 편인데 그 이유는 아들이나 손자가 왕이 됐을 때 살아계신 왕실의 어른에 대한 효의 뜻을 담아 존호를 올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최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된 철종의 왕비, 철인 왕후는 1863년 고종 즉위 직전 명순(明純)의 존호를 받고 이듬해 고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됐으며, 1866년(고종 3) 휘성(徽聖)에 이어 정원(正元), 1873년에는 다시 수령(粹寧)의 존호를 받아 명순휘성정원수령대비가 됐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철인왕후는 죽은 뒤 붙는 시호다. 이처럼 여러 번의 존호와 시호를 받은 철인왕후의 이름을 모두 적으면 ‘명순휘성정원수령경헌장목철인왕후’가 된다. 그러니 이 내용을 모두 어보에 적어야 하니 어보는 국새와 달리 글자 수가 많아지게 된다. 

 

가장 많은 글자가 적힌 문조의 어보

 

왕도 존호를 받는데 왕비가 한 번에 2글자의 존호를 받는 것과 달리 8글자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존호가 길어지게 된다. 조선의 어보 가운데 가장 글자가 많은 것은 문조로 추존된 효명세자다. 고종의 족보상 아버지가 되는데, 그래서인지 무려 12번이나 존호를 올렸다. 실제로 문조(효명세자) 어보에 116글자가 적혀 있다. 왕비의 어보 가운데 가장 많은 글자가 새겨진 것도 역시 효명세자의 부인이며 당시 고종을 왕으로 즉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신정왕후로 62자에 이른다. 도장을 새기는 일도, 도장을 찍은 내용을 읽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이처럼 국새와 어보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국새는 평소 쓰기 때문에 왕이 자주 보는 편이었을 것이다. 보관도 도승지의 책임 아래 상서원(도장을 책임지는 관청)에서 제작하거나 관리했다. 그런데 어보는 일종의 기념물이라는 점에서 평소에도 쉽게 볼 수 없는 것이었고 이들은 모두 왕의 죽음과 함께 종묘에 보관한다. 종묘 정전의 19개의 각 신실을 보면 가운데 신주장을 두어 왕과 왕비의 위패를 보관하는데, 그 왼쪽에 보장을 둬 거기에 어보를 보관한다. 오른쪽에 있는 책장에는 어보를 제작하게 된 경위를 대나무나 옥에 새긴 죽책이나 옥책을 보관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보와 죽책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나라와 왕을 상징하던 국새와 어보는 대한제국의 멸망과 함께 모두 일본의 관리로 넘어가게 됐다. 다행스러운 건, 일본의 패망으로 미 군정청이 이를 모두 환수해서 다시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렇게 돌아온 국새와 어보가 한국전쟁을 겪으며 일부가 사라지게 됐다. 미군이 기념품으로 가져간 것도 있으며 도난된 것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행스러운 건 최근에 어보 환수 소식이 종종 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문화재와 달리 국새, 어보는 나라를 상징하는 문화재라는 점에서 도난이나 약탈 여부와 관계없이 환수돼야 하는 것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혹시 외국에서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거래를 한다고 하더라도 모두 불법이 되는 셈이다. 

 

일제 잔재인 도장 문화 ‘인감’ 

 

국새, 어보와 관련해서 요즘 우리 시대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인감이 아닐까. 국가나 개인의 증명을 도장으로 한 셈이니 민간에서도 도장 문화로 인감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인감은 일제의 잔재다. 1914년, 조선총독부가 도입한 제도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인감 제도가 있는 곳은 우리나라 외 일본, 대만에만 있다는 사실에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인감 제도는 광범위하게 각종 증명에 쓰이고 있다.

 

인감증명서는 한 해 평균 4000만여 통이 발급되고 있고, 이에 따라 인감증명서의 발급 비용만 약 3000억여 원에 이르며 여기에 전담 공무원만 전국적으로 4000명이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인감제도를 대신할, 효율성이 높은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10여 년 전에 도입한 ‘본인사실확인제도’가 인감 제도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인감 도장 대신 서명을 활용하는 증명서다. 인감증명서와 달리 본인만 직접 확인서를 뗄 수 있다. 
 

그렇다고 도장과 도장 문화를 아예 없애자고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예전 선비들은 도장을 새겨 문서나 그림에 장식으로 찍기도 했다. 그런 사례를 참고해 공예품처럼 도장을 만들어 자신을 기념하는 것으로 쓰는 것도 좋을 것이다. 행정제도가 아닌 일상에서 즐기는 문화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 어보와 국새를 만날 수 있는 곳


국립고궁박물관은 조선 왕실문화와 관련 된 유물을 보존‧연구하고 전시하는 조선왕실 전문 박물관입니다. 현재 경복궁 서남쪽에 자리하고 있어, 경복궁과 함께 관람하기 좋습니다. 

 

- 관람시간: 오전10시-오후6시(연중무휴, 설추명절당일만 휴무)
- 관람요금: 무료
- 유의사항: 코로나19 방역조치 시행에 따라 사전관람예약제를 실시
- 예약하기: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
  www.gogung.go.kr/mai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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