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서재 19>고전에서 찾은 글쓰기의 정석

2021.02.22 09:15:01

용감하고 사랑 많은 선생님께

코로나 시대의 글쓰기 교육

요즈음 글쓰기 교육이 대세다. 글쓰기 프로젝트 사업으로 학생 저자들이 펴낸 책들이 선을 보이는 모습이 무척 반갑다. 지역교육청에서 글쓰기 강좌를 개설하여 학교를 찾아가 직접 가르쳐주는 프로그램 덕분이다. 코로나 19로 원치 않는 집콕 시대를 사는 지금, 자신의 성에 머물며 가장 하기 좋은 최상의 작업이 독서와 글쓰기가 아닐까. 두고 온 나의 제자들에게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이야말로 일기를 쓰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전화위복의 시간을 만들기를 빌어본다.

현직에 있을 때 전교생 자기 책 갖기 프로잭트를 학교 특색사업으로 추진하며 해마다 자기 작픔집을 묶어 전시하고 대표작을 발표하며 상기된 핵생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지도하는 선생님들의 수고와 학생들의 부지런한 손길 끝에 탄생한 자기만의 책을 집으로 가져가면서 뿌듯해 하던 아이들. 특히 학부모님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자녀의 1년 역사 속에 성취하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긴 진실과 진심이 담긴 작품집이니.

쓰기 교육은 국어 교육의 열매와 같다.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현장에서 가장 더딘 분야이기도 하다. 특별하게 관심을 갖지 않는 이상 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분야다. 언제부턴지 한창 유행하던 논술 평가를 따라 글쓰기 열풍이 부는 가 싶었는데, 대학입시의 방향이 바뀌면서 그마저도 시들해졌다.

오늘날 학생들의 글쓰기 능력이 퇴보한 가장 큰 이유는 일기 쓰기 지도가 뒷걸음치면서 부터라고 생각한다. 일기 쓰기가 사생활 침해니, 개인정보 노출이라는 논란이 일면서부터 학교 현장에서 슬금슬금 꼬리를 감춘 것이다. 이제는 강심장을 가진 선생님이거나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선생님들만이 일기 쓰기 지도를 하고 있는 실정에 이르렀다. 날마다 일기장을 검사하고 지도하던 풍경은 사라진 것이다. 선생님들에게 일기 지도는 시간과 노력, 손길이 많이 가는 일이 분명하다. 일일이 읽어 보고 학생들이 지닌 상처나 고민을 알 수 있어서 예방적 생활지도에 일기 쓰기만큼 좋은 장치는 없었다.

학생들의 일기장을 읽고 오탈자를 고쳐주는 일, 때로는 일일이 답글을 달아주는 일도 해야 했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일기장 쓰기는 기본 중에 기본이었으니 글을 쓰는 일이 일상이었던 셈이다. 귀찮아하면서도 숙제처럼 써야 했던 일기장은 글쓰기 훈련의 일등공신이었다. 그 일기장이 학생들의 책가방에서 거의 사라진 결과는 매우 참담할 지경이다. 학교에서 숙제로 내지도 않고 선생님이 봐서도 안 되는 일기장을 일부러 쓰는 학생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나는 현직에 있을 때 여러 해 동안 영재반 인문교육을 담당했다. 독서지도와 글쓰기 지도 중 글쓰기에 더 공을 들였다. 5, 6학년 학생들이 선발 과정을 거쳐 학교의 대표로 와서 수업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학년이 사용하는 기본적인 낱말조차 틀리는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활동은 매 시간 책을 읽고 핵심문장을 고른 다음 자신의 생각을 곁들여 문장을 쓰게 했다. 자신의 생각을 곁들여 쓰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다. 형식문단을 묶어 의미문단을 구성하여 한 편의 글을 완성시키는 글쓰기 공부 단계를 제대로 따라오는 학생은 2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예전 고학년 학생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도 독서력을 갖춘 학생과 책을 읽지 않는 학생의 차이는 더 벌어졌다.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지만 책을 읽지 않는 풍조에는 바람이 불고 있지 않음을 몸으로 느껴야 했다. 책 대신 인터넷과 컴퓨터, 휴대폰 게임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초등학생도 마찬가지인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러니 글쓰기 지도보다 선행되어야 할 교육은 바로 독서력 향싱이었기에 인문영재교육을 위한 책들을 지역교육청 예산에서 구입하여 강제적으로라도 읽게 하곤 했다. 독서력을 갖추어야 문해력이 높아지고 어휘력이 풍부해져서 글쓰기에도 자신감을 보이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고전에서 찾은 글쓰기의 정석
 
글의 씨앗이 부족한 학생, 지식이 쌓이지 않는 학생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는 일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지식-이해-분석력-종합력-평가력으로 이어지는 단계에서 지식의 보고인 책을 읽지 않은 학생들을 불러다 놓고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교육을 해야 하는 나의 고민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교육의 현실을 매 시간 직면하며 가르치는 기쁨보다 안타까움이 더 컸기에 소개하는 책은 글쓰기를 위한 읽기 자료로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던 책이다. 이 책의 핵심문장으로 학생들이 골라낸 문장이다.

 

"사람이 글을 짓는 것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나무를 심는 사람은 가장 먼저 뿌리를 돋우고 줄기를 바로 잡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고 나서 진액이 오르고 가지와 잎이 돋아나면 꽃을 피울 수 있게 된다. 나무를 정성껏 가꾸지 않고서, 갑작스럽게 꽃을 얻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정약용 <다산시문선> 양덕 사람 변지의에게 주는 말 -145쪽


글을 쓴다는 것을 나무에 꽃이 피는 것과 같음에 비유했으니 참으로 적절한 비유가 아닌가. 나무를 심는다 함은 책을 읽음을 가리키는 말이리라. 책을 읽어 쌓은 지식이 지혜로 바뀌는 순간에 이르러야 비로소 생각의 발효 과정을 거쳐야 글의 씨앗이 영글어질 수 있으니! 글자를 안다 하여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글쓰기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책을 읽는 오랜 기다림과 삶이 잘 버무려져 숙성되는 순간에 이르는 기다림처럼 한 그루 어린 싹이 큰 나무에 이르는 동안 겪는 비바람과 인고의 시간과 동일하니.

 

"문장력이 있는 아름다운 글이란 화려하게 반짝이는 글이 아니다. 비열한 사회의 모습을 고발하고 아픈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좋은 글입니다. 매끄럽게 읽히는 글보다 한 줄마다 물음표가 생기고, 한 글자마다 느낌표가 생기는 글이 진짜 아름다운 글입니다. -135쪽


글을 쓰는 자의 소명은 비열한 사회의 모습을 고발하고 아픈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 대목은 큰 울림을 주는 대목이다. 이 책이 초등학교 고학년을 독자로 하고 있음에 비추어 본다면 사회적 글쓰기나, 상처를 드러내는 치유의 글쓰기를 권하는 대목으로 보여서 의미심장하다. 초등학생을 위한 책임에도 그 깊이와 넓이는 결코 어른들의 글쓰기 지침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각별한 문장들이 넘친다.

 

"글은 가슴 속에 가득한 지식이 터져 나온 것이다. '문장'이란 무엇인가? 허공에 걸려 있어 쳐다볼 수 있고, 땅에 떨쳐져 있어 뛰어가 잡을 수 있는 것인가? 옛사람은 덕을 쌓아 인격을 닦고 효도와 우애, 충성과 믿음으로 행동했다. 또 시서와 예악으로 기본 몸가짐을 기르고 <춘추>와 <주역>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다. 즉 하늘과 땅의 올바른 이치와 모든 사물의 변화를 두루 꿰뚫었다. -115~116쪽

 

"사람들이 감동하고, 멀게는 하늘과 땅이 움직이고 귀신이 감탄하게 된다. 이것을 가리켜 '문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듯 문장이란 결코 밖에서 구할 수 없다. 문장은 마음속에 쌓아둔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약용<다산시문집>오학론 3


하늘과 땅을 움직이는 글이 문장이라는 대목을 이르러서는 글쓰기의 두려움이 앞을 가린다. 하늘과 땅의 올바른 이치와 모든 사물의 변화를 꿰뚫기는커녕 아직도 배움의 길 위에서 서성이는 중이니 감히 문장다운 문장을 언제쯤 쓸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하다.

아직도 선생 소리를 듣지만, 가르침의 자리에 서 있었지만 다산의 목소리 앞에서는 움츠러드는 자신감을 숨길 수 없다. 그러기에 나의 수업을 들었던 인문영재반 학생들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들의 간절함이 나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니. 하늘과 땅을 움직이고 귀신이 감탄하는 문장은 못 되어도 단 한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문장을 쓸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이 책은 필자가 초등학교 5, 6학년을 대상으로 한 인문영재반 필독서로 선정하여 지도했던 책이다. 함께 윤독하고 배움이 일어난 문장을 옮겨 적은 후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첨가하는 독서록 쓰기를 병행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낱말의 뜻을 묻는 학생에서부터 좋은 문장에 자신의 생각을 첨언하는 재주가 남다른 학생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배움의 깊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속도와 범위도 다 달랐다. 마치 같은 날 씨앗을 뿌린 밭이랑에도 싹트기와 자람이 다 다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배움이 동반되는 아름다운 일임을 다시금 깨닫곤 했다. 특히 책을 읽고 글쓰기를 흠모하는 중에 나이 어린 도반들과 함께 읽고 배우는 것도 여간 좋은 게 아니었다. 새로운 문장 앞에서 번득이는 깨달음에 눈빛을 반짝이는 학생을 보는 것은 설렘을 동반하는 즐거움을 안겼다.

사춘기의 정체성이 자리 잡혀 가고 있는 시기에 좋은 책을 읽고 특히 글쓰기의 행로를 함께 걷는 나의 어린 도반들이 나와 함께 이 책을 배우는 동안 글쓰기와 독서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을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길을 안내하던 그날의 풍경들이 그리움을 몰고 온다.

교직의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다. 공자는 자신보다 30년이나 어린 제자들을 가르치며 배움의 기쁨을 토로한 바 있다. 사는 것은 배운다는 뜻이다. 날마다 새로운 배움으로 어린 영혼들의 해맑은 눈빛을 만나는 그 시각을 기다리며 먼저 읽고 길을 내려고 노력했다.

용감하고 사랑 많은 선생님께

같은 책을 읽게 하고 독서평가를 실시하고 독서토론을 하던 모습, 자기가 쓴 글을 묶어 1인 출판 작업으로 작품집을 만들던 콧수염 거뭇하던 남학생들, 숙녀 티가 나던 6학년 여학생들의 모습은 추억이 되었다. 출판을 위한 책 쓰기까지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글을 쓰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진로를 정하며 인생을 설계하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독서지도와 글쓰기 지도에 관심이 있는 선생님들의 일독을 권한다. 결코 후회 않을 선택이 되리라 확신하면서. 배움은 공유하고 소통함이 기본이니 이것 또한 즐거운 나눔이라 여기는 마음으로 이 글을 올린다. 학교 현장에서 다시 일기 쓰기를 지도하는 용감한, 사랑이 많은 선생님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일기 속에 아름다운 일도
잘 견뎌낸 일도 추억으로 담아내기를!
선생님과 제자의 줄탁동시 풍경이 가득하기를!

장옥순 아이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외 다수 jos2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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