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을 맞이하면서

2014.09.02 11:31:00

9월이 시작되는 첫날 9월1일은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방재의 날'이다.일본은 우리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재해가 많다. 이 자연재해와 싸우는 일이 생존과 직결된다. 그런데 일본의 방재의 날이 9월1일이 된 배경에는 오래전 우리 민족의 큰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금은 많이들 잊고 있지만 91년전 1923년 9월1일, 일본의 관동(간토)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불운하게도 점심 식사 준비로 인해 거의 전 가정에서 불을 때고 있던 시간대라서 지진의 여파는 곧바로 대화재로 이어졌고, 도쿄, 요코하마 지역을 비롯한 관동 지역 일대가 궤멸되다시피 한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사망자, 행방 불명자가 14만 명, 이재민 34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재난이었다. 그런데 재난의 혼란 속에 계엄령이 시행되었고, 사회 불안 속에서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이상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유언비어 속에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하였다.', '우물에 조선인이 독을 넣었다.'는 등의 근거도 없는 낭설이 경찰 조직의 비상 연락망을 통해 확대되면서 자경단이나 경찰관에 의해서 조선인과 조선인으로 의심받았던 중국인이나 일본인까지도 학살당하는 비극이 발생하였다. 살해된 수는 정확하지 않지만 3000명에서 6000명까지 이야기되고 있고, 그 이상이라는 설도 있다. 심지어 조선인을 구분하기 위해 발음하기 힘든 일본어를 시켜 보는 과정에서 일본의 외딴 지방에서 올라온 일본 사람들도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학살 사건은 대부분이 불문에 부쳐지고 아직까지도 진상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사실로 존재하고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좀 더 윤택한 생활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 갔던 초기 이주자들과 소수이기는 했지만 소중한 인재였던 조선인 유학생들이 그 재난의 희생자가 되었다. 하지만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으로 불려지는 이 사건에 대해 일본 정부는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어떠한 사과의 말 한마디도 없었다.

1923년 당시 일본은 심각한 경제침체를 겪고 있었다. 한반도와 대륙 진출에 혈안이 되어 있던 일본 정부와 군부의 강력한 군수정책으로 민간경제는 위축될 수 밖에 없었고 일본 국민들은 언제 전쟁이 벌어질 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진이 일어나자 자국민들의 민심이 크게 동요할 것을 염려한 일본 정부가 그 증오의 대상을 조선인들에게 돌리려 하기 위해 이같은 책동을 벌인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 같은 엄청난 만행이 있었음에도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유언비어가 있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수를 축소하여 발표하고 학살을 자행한 자경단원 일부를 연행하여 조사하였으나 이는 형식상의 조치에 불과하였다. 또, 기소된 사람들도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무죄방면 하였다. 무려 6000여명이 넘게 학살된 이 만행으로 사법적 책임을 진 사람이나 단체는 전무하고 도의적 책임을 진 사람이나 기구도 전혀 없었으나 양심적인 소수의 일본인은 이를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였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러한 대학살의 만행이 있었다는 것도 모른 체 아직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이었던 당시 미국 등 서구나라에서는 대규모 지진 피해를 입은 일본을 돕자는 캠페인을 벌여 성금모금을 하였다. 실제로 일본에 많은 후원을 했었다는 것이다. 통신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당시 큰 지진이 일어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만을 전달받고 피해자들을 돕자고 나선 미국 국민들의 순수한 인간애는 몇년이 지나지 않아 진주만 공습이 되어 돌아왔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당시 일본의 자경단들이 선동을 하기 위해 외치던 구호가 바로 " 조선인들을 죽여라." 였다. 그런데 9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일본의 수도 도쿄 한복판에서 이같은 소름끼치는 선동구호를 들을 수 있다. 일본 우익들은 재일 한국인들에 대해서 이른바 '헤이트스피치'라 일컬어지는 인종 차별적인 가두 선전 활동, 혐한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7월 유엔 인권위에서 이 같은 헤이트스피치, 혐한시위를 금지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권고를 받았음에도 일본 정부의 어떠한 조치도 없이 혐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백주 대낮에 도쿄 한 복판에서 '조선인들을 죽여라'라고 외치는 일본 우익들을 보면서 90여년전 실제로 조선인들을 학살했던 일본인들의 광기를 또다시 느낄 수 있다. 지각 있는 일본인들조차 자신들이 일본인이라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었다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사건의 광기가 또다시 일본에서 불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김광섭 교육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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