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다시읽기] 세상에 있는 집, 집에 있는 세상①

2024.05.07 10:00:00

인종과 인종 정체성

 

세계화의 한가운데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집에서 있으면서 세계 속에 있는 것 같고, 세계 속에서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The World at Home and at  Home in the World?)”  

 

‘세상에 있는’ 혹은 ‘집에 있는 세상’은 모순되거나 심지어 역설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집’과 ‘세상’이 동시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인가요? 집은 편안함·안전함·소속감을 느끼는 곳입니다. 반면에 ‘세상에서’는 새로운 장소나 다른 장소, 즉 정의상 ‘집 밖에서’를 의미합니다.

 

저는 자신의 집과 다른 공간에서, 두려움이나 판단 없이, 열린 마음과 인종적·언어적·문화적으로 다양한 이들의 ‘가정’이나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배워서, 드디어 전 세계의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글로벌 사고방식을 통해 가정과 세계의 시민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세계 속의 집’에 있는 것을 고대 그리스어로 코스모폴리탄이라고 부릅니다. 코스모폴리탄적인 사람은 글로벌 마인드와 오픈 마인드를 갖고 있으며, 새로운 사람·경험·아이디어에 열려 있습니다. 코스모폴리탄은 안전지대인 자신의 집을 나와, 국경을 넘어, 새롭고 다양한 관점을 탐색하고 배웁니다.

 

이들은 자신의 집 공간에서도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다른 인종,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배우고 경험함으로써 국경을 넘어 집에서도 여행 중일 수 있다는 말인 거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지역적 정체성이나 국가 시민권을 세계시민권(Global Citizenship)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정체성을 추가하는 사람들입니다(Song et al., 2023). 


유색인종(Korean American)인 저는 처음 10년은 한국이 집(Home)이었고, 미국이 집 밖 혹은 세상(World)이었고,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한국을 넘어, 미국을 넘어 글로벌 정체성을 추가해 나가고 있는 코스모폴리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린 마음을 가진 글로벌 시민으로서 실제로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전 세계의 사람들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인종과 인종 정체성, 특히 다양한 인종들이 사는 미국 사회에서 어떻게 정의하고 있느냐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이민역사가 긴 미국역사 속에서 인종·언어·문화의 문제는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고, 그중 인종과 인종 정체성은 사람들이 제일 피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이지만, 다인종·다중언어·다문화화되어 가는 글로벌 시대에 첫 화두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종
인종은 신체적·사회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 집단을 의미합니다(Kubota & Lin, 2006). 콜버트는 인종은 백인·흑인·아시아인 등으로 분류되며, 신체적이고 생물학적이라는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른 사회적 구성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800년대 미국에서는 아일랜드와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들은 백인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영국에서 온 이민자들만 백인으로 간주했고, 그 당시 미국 인구조사에 따르면 중동 및 북아프리카(MENA) 출신 사람들은 백인 인종범주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아랍계 미국인 연구소 재단(Arab American Institute Foundation)과 같은 그룹은 별도의 인종범주 생성을 위해 로비 활동을 벌였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자들은 서로 다른 인종이 별개의 범주가 아니라는 점에 합의했습니다. 이는 인종이 겹칠 수 있고 범주 간의 경계가 때때로 불분명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종에 대한 생물학적 또는 유전적 지표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피부색과 머리카락 질감, 눈 모양과 같이 개인의 필수적인 신체적 특징을 기준으로 인종의 정의를 내리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러나 흑인으로 식별되는 사람이 아시아인으로 식별되는 사람보다 피부색이 더 밝을 수 있고, 아시아인으로 식별되는 사람이 백인으로 식별되는 사람보다 피부색이 더 밝을 수 있습니다. 피부색, 머리카락 질감, 눈 모양은 개별적으로 유전되는 유전자이며, 인종 간 변이만큼 인종 내 변이도 많습니다.

 

이는 임의의 두 한국인이 한국인과 이탈리아인만큼 유전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로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유전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다르지 않다면 왜 인종이 계속해서 정체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까요? 


관행적으로 미국인들은 다른 집단의 사람들에 대한 열악한 대우를 정당화하는 것을 찾고 있었고, 인종이라는 것을 이용해 차별의 개념을 영속시켰던 것입니다. ‘호모사피엔스’라는 이름으로 우리 모두 한 인종으로 여러 인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제도적 인종차별은 현실입니다. 제도적 인종차별 담론 중 색맹(color-blindness)이라는 말은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 쓰는 말로, 유색인종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을 인정하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것을 의미하며(색맹 인종차별), 이는 ‘용광로(melting pot)’ 개념과 다소 유사합니다. 


교육자들이 논의를 기피하는 ‘인종’ 담론은 유색인종 자녀에 대한 교사들의 암묵적인 편견을 가리는데 기여합니다(Bonilla-Silva, 2003). 색맹 인종론은 특정 문화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명시적으로 평가절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색으로 녹여 색맹으로 만들어 제도화된 인종차별을 영속시킵니다.

 

이를 통해 교사는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들의 다양한 문화를 과도하게 일반화하거나 이분화함(either-or, 백인 or 유색인)으로써 불평등한 교육 결과를 가져오게 되기 때문에 그 영향이 형평성 교육에서 멀어진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Kreamelmeyer et al., 2016; McCarty & Lee, 2018). 교사는 ‘문제의 일부이거나 해결책의 일부’이기 때문에 중립적인 방관자가 될 수 없습니다(Derman-Sparks & Phillips, 1997, p. 24). 교사는 (사회적) 인종이 교육과 학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탐구하고 이해해야 하며, 그 한 가지 방법은 인종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입니다. 

 

인종 정체성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특정 인종집단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인종 정체성을 표시하고 전달합니다. 자기의 다양한 인종 정체성을 인식하고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사우디에서 이민 온 태라(Tara)의 이야기가 그 예입니다.

 

태라는 직장에 있을 때는 전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특정한 방식이나 미국 중심적인 방식으로 옷을 입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직장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능한 사람으로 인식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태라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 신체적으로 편안하고 문화적으로도 의미 있는 옷(차도, chador)을 입습니다. 이는 그녀에게 중요한 또 다른 인종 정체성 가치이기 때문이지요.


현대 미국의 백인문화는 다른 인종 정체성의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우리 대 그들(we vs they)’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그들’의 언어·문화·행동은 품위가 떨어진다고 평가하게 됩니다. 인종 정체성과 관련된 특권 중 하나가 백인특권(White Privilege)이라고 합니다. 백인특권에는 어울리는 메이크업 컬러를 찾을 수 있는 편리함, 같은 인종사람들의 긍정적인 묘사를 볼 수 있는 이점 그리고 정직하다는 가정이 포함됩니다. 


백인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반대하더라도 그들은 확실히 혜택을 받습니다. 백인의 인종 정체성에 대한 취약성은 종종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백인의 침묵으로 이어지며, 침묵은 현상 유지, 체계적인 인종차별을 유지합니다. 백인과 유색인종의 인종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은 반인종차별 활동의 중요한 토대입니다. 우리는 인종차별주의 세계에서 인종차별화된 존재로서 그 세계를 헤쳐 나가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San Pedro, 2018). 


인종 정체성에 대해 알게 되면 개인의 실제 경험이 다른 인종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경험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인종정체성 담론은 언어적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되는데, 이는 그들의 제1언어(모국어) 및 제2언어(제2외국어) 능력을 바라보고, 비지배 혹은 소수인종집단을 부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라보게 됩니다(Rosa, 2016). 지배적인 백인담론과정은 단일 언어 이데올로기를 활용하여 백인 주류 미국 영어를 정상적으로 구성하고 결과적으로 다른 악센트나 문법에 결함이 있거나 열등한 것으로 여기게 만듭니다(Shuck, 2006). 


인종 정체성(racial identity)은 이렇게 언어 정체성(linguistic identity), 나아가 문화 정체성(cultural identity)과 연결이 됩니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종의 정의, 인종 정체성, 그리고 한국인 우월성, 혹은 특권의식으로 형평성 있는 코스모폴리탄이 되는데 방해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송킴 미주리주립대학교 사범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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