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면, 주인공 동백이가 부러워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바로, 기차역의 분실물 센터 직원이었지요. 사람들은 분실물 센터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가며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건네고 가요. 동백이는 그게 부러웠어요.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게 말이지요. 그 장면을 보면서 공감이 되더군요. 학교에서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아이들에게나 학부모님들에게 “선생님 고맙습니다” 한마디를 들으면 왠지 뿌듯해요. 보람도 느껴지지요. 그런데 문제는 요즘에는 학부모님들에게 고맙다는 말보다 화를 내는 전화를 받는 빈도가 높다는 것이에요. 온라인 수업 때문에, 도서관 책 반납이 연체되어서, 학교폭력 때문에 속상해서, 또는 이런저런 이유로. 어떤 학부모님들은 담임 선생님에게 화나는 마음을 그대로 전하기도 해요. 답답한 노릇이지요. 본인의 화를 여과 없이 전하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니까요. “선생님, 속상해요”라고 말해준다면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줄 수 있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나 봐요.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었어요. 드라마 주인공 동백이처럼요. 생각해 보니 저만의 분실물 센터가 있어요. 매일 아침
“선생님, 학교폭력이 터졌어요.” 등교수업이 시작되기 전, 어느 담임 선생님 말씀에 ‘올 것이 왔구나.’ 싶더군요.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돌아가는 국방부 시계처럼 학생들이 없어도 학교폭력은 일어나는 상황. 마치 번개 같았어요. 번개가 번쩍이면 천둥소리가 들리듯, 학교폭력 사안부터 발생하고 아이들이 등교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학교폭력이 일어난 장소는 집 주변. 학교폭력이 일어난 시간도 저녁 무렵. 상대는 다른 학교 학생. 학부모님은 일단 경찰에 신고부터 하셨대요. 그래서 학교에서도 알고 계시라고 전화를 주셨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아이가 속상해하고 부모님도 화가 나셨기 때문에 경찰 조사와는 별개로 학교에서도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사안을 넘겨달라고 하시더군요. 매뉴얼에는 학부모의 의사가 있으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받도록 해요. 사안을 조사하고, 학교폭력전담기구를 소집하고, 교육청에 요구하게 돼 있어요. 해당 학생이 등교하고 난 후 상담하고 확인서를 작성하고, 상대방 학교와 해당 학생의 확인서를 교환하고, 매뉴얼을 살피면서 빠진 절차가 있는지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확인하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더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9시. 정신없이 일 처리를 하
4월부터 시작된 온라인수업. 요즘 많은 학부모님이 온라인수업 때문에 힘들어하세요. 교사이기도 학부모이기도 한 입장. 솔직히 학급 온라인수업도 준비해야 하고, 업무도 많아서 학부모로서는 기본만 잘 해보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은 함정이었어요. 며칠 전 저녁, 아이의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어요. 배움 공책 올린 것을 보니, 제대로 하고 있는지 걱정이 된다고요. 아이가 해 놓은 과제를 보니 교과서 사진도 올리지 않고 시간마다 정해준 배움 공책에 쓸 내용도 대충 써놓았다고요. 부모님이 제대로 확인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하는 문자였지요. ‘혼자서도 잘하겠지….’ 하는 마음에 점검을 해주지 않았어요. 솔직히 이야기하면 퇴근을 하고 집에 와서 편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요. 집에서까지 온라인학습의 덫에 갇혀 있기는 싫었었어요. 막상 아이의 과제 때문에 연락을 받고 나니 민망한 마음이 들더군요. 담임 선생님의 문자 한 통으로 정신이 번쩍! 문자를 받은 다음 날부터 아이는 특별훈련을 받아야 했어요.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그 전에 제대로 하지 못했던 배움 공책과 교과서를 다시 풀었거든요. 그렇게 3일 정도 아이와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일본 교토의 시치조. 그곳에 가면 이총이 있어요.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들이 전공을 기리기 위해서 베어간 조선사람들의 귀와 코로 만들어진 무덤이지요. 무덤에서 몇 걸음을 더 가면 도요쿠니 신사가 있어요.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기린 신사이지요. 우리에게는 원수, 그들에게는 명장. 그의 신사는 참 으리으리해요. 조선사람들의 귀무덤과는 참 대조적인 모습이에요. 동네 놀이터 옆에 휑하게 만들어진 몇천 명의 조그만 무덤과 한 사람을 위한 웅장한 신사. 눈 뜨고 코 베인 사람들은 죽어서까지 억울하지 않을까 싶어요.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은 조선 시대에나 있는 줄 알았어요. 역사 속에나 있는 억울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생각했었지요. 교직은 그저 평화롭기만 한 줄 알았거든요. ‘학교에 있으면서 아이들만 제대로 가르치면 되지’하는 생각으로 다른 것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요. 설마,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처음 교직에 들어왔을 때와는 달리 우리는 이미 모르는 사이에 코를 베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요.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고생을 했으니 돌봄 전담사들에게 5일간 특별 휴가를 준다는 공문. 그럼 교사는 아
“안심알리미가 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거죠? 학교에서 수리를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이들의 등하교를 알려주는 안심 알리미 때문에 교무실로 전화가 와요. ‘안심알리미가 안 되는데 왜 이런 것을 고치는 것도 업체를 통해서 해야 하느냐, 학교에서 직접 업체에 연락해서 고쳐와야 하는 것 아니냐?’ 항의하는 전화였지요. 고민이 되었어요. 그냥 들어주면서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할지, 아니면 이치에 맞게 조곤조곤 응대해야 할지 말이지요. 사람들은 가전제품을 사면 직접 AS 센터에 전화해서 해결하고는 해요. 자신이 쓰던 가전제품을 샀던 매장에다 고쳐내라고 요구를 하지는 않지요. 안심 알리미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학교에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업체를 연결해서 서비스를 받도록 안내를 해드릴 뿐 학교에서 만든 제품도, 학교에서 영리를 취하지도 않지요. 그런데도 기기의 수리까지 학교에서 책임지는 것은 상식적인 일은 아닌 듯해요. 당사자가 업체에 전화하면 손쉽게 수리를 받을 수 있는데, 굳이 학교에서 개입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학교에서는 비상식적인 민원에 골치가 아파요. 주말에 다른 학교 아이가 놀이터에 놀러 와서 다쳤는데, 학교의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오게 된
요즘 뉴스를 자주 봐요. 공문보다는 뉴스가 학교에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는 가장 빠른 수단이니까요. 뉴스에서 발표한 내용을 며칠 후에야 공문으로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 안타까운 요즘이에요. 그런데, 뉴스를 검색하다 보면 속상할 때가 종종 있어요. 자꾸 댓글을 안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댓글에도 눈이 가거든요. 좋은 댓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댓글도 많아요. 댓글을 읽으며 요즘처럼 답답한 시기에 각자의 불만을 투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상대는 교사라는 것을 느껴요. ‘수업은 EBS가 하고 교사는 놀면서 돈 버네.’ ‘교사들 꿀 빠네.’ 댓글을 보면서 생각해요. ‘아~ 우리는 꿀을 빨고 있었구나.’ 사소한 댓글 하나에 마음이 상해요. 이참에 꿀물이라도 한 잔 마셔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한가하게 꿀물을 타서 마실 시간이 없어요. 온라인으로라도 수업해야 하니, 아이들에게 전해줄 1주일 치 활동지를 미리 만들어서 배부해야 해요. 쉬운 일 같지만, 하나하나 편집하고 등사하고 다시 묶어서 정리하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에요. 평소 같았으면 그날그날 복사해서 줄 수 있는 활동지일 텐데 말이지요. 아이들이 없는데도 공문은 줄어들지 않아요. 말로
교육부 뉴스 속보가 끝나자 메신저 알림이 와요. 긴급이래요. 요즘은 무슨 회의만 하면 ‘긴급’이 붙어요. 긴급 부장회의, 긴급 동학년 회의. 긴급이 유행인가 봐요. 긴급을 붙여야 할 만큼 빠르게 많이 바뀌어요.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것이 바뀌고 혼란스러우니까요. 학교는 아이들이 없으니까 주인이 바뀌었어요. 학생들이 주인이 되어야 할 학교는 공문이 주인이에요. 업무를 위한 계획도 일정이 틀어지면서 처음부터 다시. 학사일정도 기껏 정리하면 처음부터 다시. 뭐든지 다시 하는 분위기에요. 선생님들도 어수선하지만, 학부모님들도 어수선한 건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학교로 문의 전화가 오기도 해요. "왜 온라인 클래스도 승인을 안 해줘요?" "아니, 뉴스에서 나왔는데, 왜 학교에서는 아무 얘기도 없어요?" 뉴스로만 접하는 정보로는 부족해요. 궁금한 마음에 학교에 문의하시는 학부모님들. 하지만 선생님들도 자세한 지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세한 정보를 알려드리기는 역부족이에요. 이 부분에서 서로 오해가 생겨요. 학부모님들은 ‘선생님은 다 알고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선생님들은 ‘나도 모르는데…’라는 마음을 가지시니까요. 서로 알고 있는 정보에 따라 다른 생각이 들
2월. 인사 발령과 업무분장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요. 새 학기에는 어떤 학년을 맡을지, 어떤 업무를 하게 될지, 어떤 아이와 어떤 학부모를 만나게 될지. 세상은 온통 알 수 없는 ‘어떤’으로 가득채워지니까요. 설레고 기대된다면 좋겠지만 우리들은 알 수 없는 무언가와 누군가에게 두려움의 색깔을 덧씌우기도 해요. 그래서 설레는 마음보다는 걱정되고 두려운 마음이 더 크게 자리잡기도 해요. 얼마 전, 새 학교로 발령을 받으시는 선생님과 답답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아~ 이번에 옮기는 학교에서 3학년 담임을 하라고 해요. 자리가 그것 밖에 없대요.” “3학년 괜찮지 않아요? 그래도 완전 저학년도 아니고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3학년은 괜찮은데, 그 학년에 아주 막무가내인 학부모가 있대요. 작년에 민원이 엄청 많아서 동학년 선생님들이 두 손 두 발 다 들었대요.” “아~ 그래서 3학년이 비어있었나보네요. 참 답답한 일이네요.” 새 학교로 옮길 때, 가장 큰 단점은 안 좋은 학년, 안 좋은 업무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기득권이 없으니까요. 학교를 옮기시는 선생님들도 막막하지만 기존에 근무하던 선생님들도 다크호스(?)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있어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