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정년까지 교직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까? 요즘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하루하루가 다르게 지치는 것이 느껴지거든요. 수업만 해도 힘든 건 왜 그럴까요? 아침에 출근해서 오후에 수업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물아일체가 되기 때문일 거예요. 수업하고, 쉬는 시간에도 생활지도를 하느라 ‘나’라는 존재는 온데간데없으니까요. 한마디로 정신이 없는 거죠. 수업 시간에는 질문을 하는 아이에게 이야기해주고, 딴짓하는 아이도 참여시키느라 애쓰고, 떠들고 장난하는 아이에게 주의도 줘야 해요. 분주하지요. 쉬는 시간은 선생님도 쉬나요? 여기저기서 선생님을 찾는 아이들의 민원(?)도 하나하나 다 응대해줘야 하고요. 수업을 시작해서 아이들이 하교할 때까지는 결국 학생과 학교와 내가 서로 일치되는 ‘물아일체’의 상황. ‘나’는 없고 ‘교사 000’만 존재하는 극한 상황이지요. 자, 수업이라는 전반전 끝나면 잠시나마 망중한을 즐긴 다음, 다시 후반전을 시작해요. 수업 준비, 공문처리, 그리고 이런저런 회의까지. 오후에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전반전과 후반전을 마치면 퇴근 시간. 멘탈이 탈탈 털리고 나서 퇴근을 하지요. 우리가 편안한 마음으로 교직 생활을 이어나가기
“명퇴를 신청해야겠어. 너무 힘드네.”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명예퇴직(이하 명퇴)’ 얘기를 하게 돼요. 아이들을 대하는 게 힘들어서, 학부모 응대하는 게 힘들어서 명퇴를 생각하시는 선생님들. 교직 생활을 이어가다 보면 가끔 역대급으로 마음을 부들부들 떨게 만드는 인물이 꼭 등장해요. 막장 드라마처럼 말이지요. 수업을 방해하고 학교폭력 사안까지 일으키는 학생. 일상적인 일에도 ‘내 아이가 상처받았어요’라면서 교사를 공격하는 학부모. 업무를 진행하면서 쓸데없이 감정 소모를 하게 만드는 동료. 여느 직장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터도 여러 사람이 모인 곳. 저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이해관계가 달라서 갈등이 일어나기도 해요. 감정 소모를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요. 문제는 그런 감정 소모 덕분에(?) 우리는 ‘그만두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도 해요. 우리의 생각은 곧잘 ‘명퇴’에까지 다다르게 되지요. 오죽하면 ‘명퇴당한다’라는 말까지 나오겠어요. 내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이런저런 상황들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니까요. 답답한 마음에 이런 책, 저런 책을 읽으며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고 노력할 때 눈에 들어오는 구절은 한결같이 이런
“선생님! 선생님 때문에 업무가 진행이 안 돼요. 내일까지 수행평가 기준안 수정해주세요.” “네? 지금 퇴근해서 집이고 내일은 토요일인데 월요일에 드리면 안 되나요?” “선생님, 연수 안 받았어요? 어떻게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할 수 있어요? 양식 하나도 못 맞춰요? 내일 오전까지 얼른 정리해서 주세요.” “선생님, 저는 2주 전에 파일 드렸고 그 기간에 충분히 검토하실 수 있었잖아요. 왜 하필 금요일 저녁에 전화해서 주말에 달라고 하시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민우(가명) 선생님과 승열(가명) 선생님. 업무 때문에 옥신각신이에요. 평가 담당인 민우 선생님은 수행평가 기준안을 보고 양식이 안 맞는다며 전화를 했어요. 그것도 금요일 저녁 7시 30분에요. 수화기 너머로 자신은 토요일에 출근해서 업무를 정리할 예정이니 토요일 오전까지 처리해달라고 말하는 거예요. 승열 선생님은 갑자기 ‘뜨아~!’하는 마음이에요. 2주 전에 메신저로 파일을 보냈는데, 갑자기 금요일 저녁에 전화해서는 내일까지 해 놓으라고 명령을 하는 민우 선생님. 덕분에(?) 편하게 쉴 수 있는 주말에 마음 불편하게 업무를 하게 생겼어요. 안타까운 갈등 상황. 누구의 잘
“선생님, 우리 학교는 1년 동안 담임 선생님이 두 번이나 바뀌셨는데, 학교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죠?” “담임 선생님이 아프셨나요?” “병가를 쓰신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담임 선생님이 바뀌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정말 학교가 너무 한 것 같아요.” 학부모 원격 강연이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 어느 학부모님의 말씀에 말문이 콱 막혔어요. 학부모 처지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바뀌는 게 좋지 않지요. 1년 동안 아이를 맡아서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바뀐다면 아이도 적응하기 위해서 힘이 들 테니까요. 종종 강연하다 보면 주제가 학교폭력이든, 아이의 공부법이든, 아니면 아이와의 관계 맺기이든, 질의 응답시간에는 학교와 관련해서 불만 섞인 목소리를 들려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풀리지 않는 답답함을 누군가에게 토로하면 어느 정도 해소되기 때문일 거예요. 질문을 주신 분의 상황을 자세하게 들어보니 담임 선생님이 불쌍하더군요. 담임을 맡으셨고, 학기 중에 수술하셔야 해서 입원을 하시고 병가를 쓰셨는데 민원을 받으면서 마음고생까지 하시게 되었으니 말이지요. 선생님도 학부모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예요. 두 입장 간의 대립. 그래서 두 입장 모두 답답하고 속상할 때, 우리는 어떻게
얀센 백신 예약. 예비군·민방위 대상자들을 위한 백신을 예약했어요. 저학년 담임이 아니라 백신을 맞으려면 한참 기다려야 해서 예약을 시작했을 때 열심히 클릭했지요. 백신 예약의 기쁨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가 나와요. ‘교사 대상 화이자, 모더나 접종!’. 더 기다릴 걸 그랬나요? 항체 생성률이 66%라고 알려진 얀센 백신보다는 90%대의 항체 생성률을 보이는 화이자, 모더나가 더 좋아 보이더군요. 화이자, 모더나가 부럽긴 했지만, 얀센을 예약했다가 취소하면 제일 뒷순위로 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에 동의하지 않은 선생님들은 제일 뒷순위로 밀렸으니까요.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냥 예약한 대로 접종을 했어요. 접종 전, 얀센 백신을 접종한 다음 이상이 생긴 사람들의 뉴스가 올라오더군요. 그때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불안해져요. ‘혹시, 나도 이상이 있으면 어쩌지?’, ‘백신을 맞고 병원에서 꼭 대기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사례 중에 하나. 아주 적은 확률이라도 큰일을 앞두고 불안한 게 사람 마음이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얀센은 엄청 아프다는 소문까지 들리더군요. 어른이 주사를 맞고 울면서 나왔다고
2학기 전면등교. 교직원들은 7~8월 중에 백신 접종을 마친다고 해요. 아직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하지만, 학교 현장도 전면등교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심각해요. 유료로 바뀌는 온라인 플랫폼은 교사들이 학교 예산을 걱정하게 만들어요. 다른 플랫폼으로 바꾸거나 교육부에서 제공하는 플랫폼을 쓰면 되지만, 지금까지 사용했던 플랫폼처럼 제대로 작동할지는 모르겠어요. 물론, 온라인 수업은 플랫폼의 문제만은 아니에요. 아무래도 대면 수업보다 효율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교사를 답답하게 만들어요. 학부모 관점에서도 온라인 수업은 정말 답답한 일이에요.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아이들만 집에 있고 온종일 온라인 수업을 하는 상황은 어깨를 축 처지게 만들어요. 컴퓨터 한 대를 앞에 두고, 부모 없이 온라인 수업을 하는 상황. 아이들은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지요. 코로나19 전까지 자기주도학습을 하는 습관을 잘 만들어 놓은 아이들이라도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을 단속하며 공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에요. 어른들도 온라인으로 화상 회의를 하면 딴짓을 하기 쉬운데 아이들은 오죽하겠어요? 아이들 입장은 어떨까요? 마스크를 쓰는
구글 크롬과 파이어폭스, 인터넷 익스플로러. 모두 웹브라우저에요. 우리가 인터넷 검색을 할 때 사용하는 프로그램이지요. 2013년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어요. 경제학자 마이클 하우스먼Michael Housman이 고객 상담업무를 하는 사람들 3만여 명을 대상으로 근속연수를 조사한 연구 결과였지요. 모두 비슷한 웹브라우저인데 구글 크롬과 파이어폭스를 사용한 사람들이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한 사람들보다 재직기간이 15%나 더 길었다고 해요. 사용자들의 결근 자료를 분석해보았더니 구글 크롬과 파이어폭스 이용자가 인터넷 익스플로러 이용자보다 결근하는 확률이 19%나 낮았고요. 왠지 이런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다음 주 교직원 회의 시간에 “구글 크롬이나 파이어폭스를 쓰세요”라는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의 핵심은 웹브라우저의 효율성이 아니에요. 문제는 ‘웹브라우저를 쓰기 위해서 사용자들이 어떤 일을 했느냐?’이지요.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컴퓨터를 켜면 이미 윈도우에 내장되어 있어요. 맥북을 사용한다면 사파리가 내장되어 있지요. 그런데 구글 크롬이나 파이어폭스는 내장된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따라서 크롬이나 파이어폭스 사용자들은 내재해 있는 것을 암묵
오래전 근무하던 학교에서 학부모 총회가 있었던 날. 교장 선생님의 한 마디에 강당이 조용해졌어요. “학부모님들, 손가락 있으시지요? 손가락 있으시다고 핸드폰 버튼 막 눌러서 담임 선생님에게 함부로 전화하지 마세요.” 민원이 잦은 학교여서 스트레스를 받던 선생님들은 교장 선생님의 한마디는 말 그대로 사이다였어요. 학부모님들은 ‘뭐지?’ 하는 표정으로 교장 선생님을 바라보셨지요. 교장 선생님은 말씀을 이어나가셨어요. ‘선생님들은 아이들 가르치느라 바쁘다. 아이들 가르치랴, 싸움하는 거 말리랴, 거기에 학교 업무까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선생님에게 신경질을 내면서 전화까지 하면 그 스트레스는 다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보시면 좋겠다. 교장 선생님 자신도 선생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면 아이들에게로 스트레스가 갈까 봐 교장실 밖에는 안 나가려고 노력한다. 교장 선생님 얼굴 보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을 테니까. 학교장도 선생님들을 조심스럽게 대하니까 학부모님들도 학기 초에는 선생님들을 믿어 주시면 좋겠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로 민원이 쑥 줄어들더군요. 그리고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왠지 신이 나는 느낌이었어요. 교사들에게는 심
지금쯤이면 많은 학교가 업무분장과 학년을 발표하고 새 학기를 준비할 시기에요. 발표전까지 보안을 유지하려는 교감, 교장 선생님과 어떻게든 알아내 보려는 선생님들의 물밑 추격전.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 끝에 업무분장표를 공개하면 싱숭생숭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새 학기 준비를 위해서 정성을 쏟게 돼요. 새 학기는 어떻게 지내게 될까요? ‘그래도 내년이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2020년의 막연했던 기대와는 달리 올해도 어쩔 수 없이 작년처럼 흘러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확진자 수는 작년 초반보다 눈에 띄게 늘어났고,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했지만, 극적인 반전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지요. 올해 수업도 작년처럼 온라인 수업과 대면 수업이 퐁당퐁당 이어지는 상황이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의 고민은 온라인 수업으로 좁혀져요.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던 작년 초반에는 모두가 우왕좌왕이었어요. 생전 처음 해보는 것이었으니까요. 힘들게 준비하고 수업을 해도 학생이나 학부모로서는 불만족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지요. 처음에는 그런 불만족이 코로나19로 인한 답답한 마음 때문인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학교 근무가 끝나고 종일 온라인 수업을
학교폭력 업무를 맡아서 소송과 씨름한 지도 거의 1년째. 1심에서 승소하고 숨 좀 돌리나 싶었는데, 곧바로 2심. 어찌어찌 소송을 이어왔지요.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변론에 하나하나 반박을 해주고, 3년 전 일이라 있는 공문 없는 공문을 다 찾아가며 증빙을 했지요. 드디어 선고기일. 얼른 결론이 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선고기일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웬걸. 법원에서 통보가 와요. 변론 재개! 선고를 받아야 하는데 다시 시작한다는 통보. 끝나나 싶던 소송 준비는 다시 시작돼요. 나름대로 관리했던 멘탈은 다시 심연으로 빠져들기 시작해요. 다른 업무를 맡은 분들은 방학이라 여유로울 때, 학폭이 터져서 정신력이 소진되고, 그나마 조금 추스르려고 하니 소송은 변론부터 다시 시작. 이럴 때는 아무리 강철 멘탈을 가진 사람이라도 나락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어요. 교직에 있다 보면 꼭 학교폭력 업무를 맡지 않아도 정신력이 바닥을 칠 때가 종종(이라고 쓰고 많이, 라고 읽는 것은 비밀이지만) 있어요. 교실로 걸려 온 말도 안 되는 민원 전화에 짜증이 올라올 때, 보통 2월에 있는 업무분장, 남들은 쉬운 업무도 잘만 받는데 어렵고 무거운 업무를 받아서 마음이 쳐질 때, ‘내
코로나19가 바꿔 놓은 세상. 작년 한 해 동안 그 어느 때보다 학교가 많이 바뀌었어요. 상상도 못 할 만큼 학교의 기능도 마비되었었지요. 덕분에(?) 일 년 내내 그동안 하지 않아도 되었던 일, 평상시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많이 했었어요. 1학기 초에는 교육과정도 몇 번이나 뒤집어엎어야 했고, 초등학교는 긴급 돌봄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지요.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느라 맨땅에 헤딩해야만 했고, 우리의 의지와는 반대로 욕도 많이 먹어야 했어요. 그뿐인가요? 코로나19로 모두 힘든 시기, 감정의 화살은 교사 집단에 쏟아지기도 했었지요. 많은 뉴스와 답글들로 힘들고 상처받던 시간도 있었어요. 참 답답하던 때였지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한 구절을 되놰야만 겨우 버텨낼 것만 같은 때였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오늘 내가 만날 사람들은 내 일에 간섭할 것이고, 고마워할 줄 모를 것이며, 거만하고, 정직하지 않고, 질투심이 많고, 무례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나를 해칠 수 없다.” 비난을 받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꿋꿋이 나아가야 했어요. 힘든 시간이 지나고 이제 새해가 밝았어요. 그동안 교사들을 둘러싼 오해는
“어휴~ 학부모님이랑 전화하다가 진땀 뺐어.” “왜요?” “민우(가명) 목이 긁혀서 화가 많이 나셨더라고. 그래서 ‘죄송하다’ 소리를 몇 번을 했는지 몰라.”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들끼리 쉬는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말로 티격태격하다가 한 아이가 민우의 목에 상처를 낸 것이었어요. 담임 선생님은 화장실에 가는 아이들이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통에 걸어 다니라고 생활지도를 하고 있었지요. 따지고 보면 선생님이 죄송할 일은 아니었어요. 아이들끼리 싸운 거니까요. 아이들끼리의 일 뿐만이 아니라 다른 민원으로 교실에 걸려오는 전화에도 죄송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일이 종종 있어요. “아니, 돌봄교실이 파업하면 저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돌봄교실 파업.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학부모님의 격앙된 말투에 저도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제가 죄송할 일은 아니었어요. 돌봄교실 파업. 교사들이 파업한 게 아니거든요. 파업을 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욕을 먹는 것은 교사여야 할까요? 문제는 돌봄 파업도 그렇고, 급식 파업도 그렇고 파업은 다른 분들이 하는데 교사들 욕을 하시는 학부모님들도 종종(?) 있다는 것. 그런 일로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시기. 일선 학교에서는 매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요. 상황에 따라 바뀌는 등교 수업 일정. 온라인 수업을 보완하기 위해서 물밑에서는 여러 시도를 하고, 학력 격차를 줄이기 위해 어떻게 피드백을 주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지요. 때에 따라서는 뒤처지는 아이들을 교실로 불러 따로 가르치기도 하고, 벌어지는 학력 격차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방법을 찾고 실행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매번 방역 단계에 따라서 등교 일정을 발표하고 앞으로의 교육정책을 뉴스로 들을 때면 허탈하기도 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뉴스를 괜히 기다렸네’하는 마음까지 들지요. ‘탄력적 운용’이라는 다섯 글자로 학교에 책임을 전가하고, ‘촘촘하게’라는 수식어로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요. 하지만 학교에 돌아오는 지원은 체감하기가 어렵더군요. 교육에 관해서는 최상위급 기관인데, 실질적인 방안을 듣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교육 자체보다는 다른 일들에 더 신경을 쓰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10월 중 공포 예정인 ‘교육공무원 임용후보자 선정 경쟁시험 규칙 일부 개정안’ 에 따르면 교육감 재량으로 1차,
“선생님, 책은 언제 쓰세요?” 책 쓰는 일을 궁금해하시는 선생님들이 종종 묻고는 하세요. 학교 일도 바쁜데 책은 어떻게 시간을 따로 내서 쓰는지 궁금해하시거든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생각이 들어요. ‘시간을 짜내는 노하우가 혹시 따로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노하우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다시 생각해 보면 하루는 누구나 24시간인데 그런 노하우가 없을 것 같기도 해요. 알쏭달쏭하죠. 많은 분이 책을 쓰고 싶어 하고, 자신만의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고 싶어 하세요. 누구나 꿈꾸는 삶이에요.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강연하면서 콘텐츠를 재생산해서 새로운 책을 선보이는 선순환. 그런 선순환을 이루어낸다면 우리의 삶도 그렇게 팍팍하지는 않을 거예요. 어떤 것을 경험하든, 그것을 나만의 시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면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는 동기를 가지게 되니까요. 그것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가지는 삶의 무기에요. 다만, 콘텐츠를 만들 힘을 가지게 되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해요. 회식, 정주행하고 싶은 드라마,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시간. 그 밖에도 ‘내 시간’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일들과
“선생님, 학교폭력으로 책을 쓰면 어떠세요?” 처음 책을 냈던 출판사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함께 작업하던 편집자님께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바람에 새로운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책을 쓰고 있거든요. 그래서 원래 책을 내던 출판사에는 ‘제가 책을 쓸 시간이 없어서요'라는 말로 새로운 책의 계약을 에둘러서 거절했었어요. 자꾸 거절하다 보니 이번에는 학교폭력은 업무를 담당하니까 학교 업무도 하면서 책도 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주더군요. 사실, 출판사 입장에서 학교폭력은 별로인 주제에요. 소구점이 없거든요. 힘들기는 한데 굳이 그걸 책으로까지 읽고 싶지는 않은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해주는 바람에 고민이 생겨요. ‘한 번 써볼까?’ 하고요. 어차피 학교폭력 업무를 하고 있으니까 학부모님들께 할 말이 많거든요. ‘학교폭력 사안이 있으면 합리적으로 감정을 표현해주세요.’ ‘학교에 전화해서 선생님에게 소리 지르지 말아 주세요.’ ‘학교폭력 담당 선생님에게 화내지 말아 주세요.’ ‘감정싸움은 학부모님들끼리 해주세요.’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다 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대뜸 전화해서 소리부터 지르시는 학부모님. 사안 때문에 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