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교육행정의 관료적 접근으로 인해 학교현장에서 교육 실천의 불확실성을 초래하는 현상을 분석하고, 학교현장에서 교육 실천에 대한 근본 가정을 공유하는 공동체 접근을 통해 자율적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관련 문헌 분석을 통한 이론적 논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교육행정의 원활한 기능이 전제조건 돼야
교육행정기관은 교육에 대한 책임을 정의하고 제도적·행정적 장치를 부가할 수 있는 권력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행정이 의도하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학교현장에서 실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중앙정부, 교육청, 학교단위에서 교육행정의 목적과 수단이 채택되고, 이것을 교사가 잘 이해하고 현장에 적용함으로써, 교실 수업과 학습자에게 효과를 거둘 때 비로소 교육행정이 원활하게 기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각급 수준의 정부와 학교현장의 관계를 동반자이자 협력 관계로 정의할 수 있다.
대체로 교육행정가는 교육행정의 의도가 실제 학교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실천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교육정책과 교육 규제로 인해 교육행정 기능과 공적 권력은 계속 확대된 반면, 학교현장의 실천을 확보하는 데에 어려움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해 교육행정과 학교현장이 서로 다른 가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둘 사이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것이다. 즉, 교육행정은 교육의 실제를 확실하고 안정적으로 통제함으로써 교육행정의 의도를 실현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교육의 실제는 불확실하고 모호하며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교현장의 자율적인 역량을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인간의 사회적 실천은 불완전성, 모호성, 애매성, 오류가능성, 모순성으로 특징지어진다. 교육행정은 교육 주체들의 사회적 실천에 의해 생성된다. 그러므로 교육행정은 불완전하고 오류와 모순적인 성격을 띠며, 구성과 해체라는 끊임없는 변증의 과정을 거친다. 이 점에서 교육행정의 과정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므로 항상 확실성과 정확성을 의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더욱이 교육행정이 다루는 교육 실제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에 비추어 볼 때, 교육행정이론과 정책이 최종적 처방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탐색으로 이해해야 한다. 교육행정의 불확실성 문제는 규제나 통제가 아니라 탐색의 과정이 필요한데, 그러한 탐색은 학교를 인식하는 관점의 변화가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교육행정과 학교현장의 불일치한 관계를 해소하고 교육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려면, 교육행정 이론이나 원리를 적용한 규범적 처방에 앞서 학교현장에 대한 실제적인 탐구로 시각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교육체제에 내재된 신념, 가정, 의도로부터 교육의 진짜 문제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현장의 복잡성, 불확실성, 모호성, 특수성, 가치 갈등적 속성을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교육행정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교육행정과 학교현장의 밀접한 협력의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교육행정 본래의 교육활동 지원·조성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관료적 교육행정, 현장의 요구 수용 못해
교육행정에서 불확실성이란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원리로서 교육행정 현상에 접근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교육행정이 객관주의적·관료적 접근에 의존할 때 학교현장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킨다. 지금까지 교육행정의 관료적 접근에서는 교육 실제의 모호성과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관점이 지배적이었다. 중앙집권적 관료조직, 교육행정의 표준화, 교육결과의 평가와 책무성은 공통적으로 교육행정의 확실성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관료적 접근은 교육 전반에 걸쳐 획일주의를 초래함으로써, 모호하고 불확실하며 가치 갈등적인 교육 실제에 대응하지 못한다. 관료적 교육행정은 학교현장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육행정의 통제·감독 기능을 확대시킴으로써 학교현장을 더욱 복잡하고 불확실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또한 외부로부터 학교에 부과된 교육 표준에 도달할 것을 요구할 때 교사는 학급의 성취 수준이나 학생의 다양한 능력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학급이나 지역 요소를 평준화시킨다. 또한 주기적으로 교육청 평가, 학교평가, 교사평가를 통해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가를 확인하기 때문에 지역과 학교는 교육 실제의 불확실성을 다루기보다는 측정할 수 있는 교육결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지침, 고부담 시험으로 인해 교사는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없으며 관료적 책무성을 과도하게 강조한다. 관료적 책무성에 의존하는 교사는 주어진 규정·기준을 정확하게 실행하는 책무만 달성하면 되며, 그것이 특정 학생, 특정 사례에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질문할 필요가 없다.
교육행정의 관료적 접근이 불확실성에 대응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학교현장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행정에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관료적 획일화·객관주의가 아닌 학교현장의 현재 역량에 기반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교육행정의 관료적 접근으로 인해 학교현장의 획일화가 초래되는 가운데, 학교단위에서는 자율성, 전문성, 다양성을 추구하는 역량과 조건을 개발하고 있다. 학교단위 책임 경영제의 도입이 그 사례이다.
자율성·전문성 뒷받침돼야 다양성 수용
이 연구에서는 교육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외적으로 주어지기보다는 교사의 반성적 실천 과정으로부터 획득될 수 있을 때 진정성을 지닌다고 분석되었다. 더 나아가 학교단위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발휘하기 위한 현실적 조건으로서 교사의 참여와 권력 공유, 전문적 동료 관계의 교직문화를 수반한다. 또한 학교현장은 교육 평등과 수월성의 조화, 교육 선택 기회의 확대를 통해 다양성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교육 부문에서 다양성의 추구는 학교단위의 자율성·전문성으로 뒷받침되어야만 시장 기제의 비교육적 요소를 극복할 수 있다. 이상의 분석을 통해 교육 실제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을 교사의 개인적인 노력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를 통해 지원해야 하며, 이것이 교육행정의 가장 핵심적인 과업이 되어야 함을 주장할 수 있다.
교육체제를 획일적으로 규제하는 교육행정의 관료적 접근은 학교현장의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지향하는 학교 스스로의 노력을 격려하지 못한다. 학교 공동체 접근에서는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공유된 의미·가치·목적에 관심을 갖는 교육행정 이론과 실천을 만들어내야 한다.
학교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육행정은 학교 내재적 과업이다.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가르치고 배우는 문화적 과정에 참여하면서 교육을 질적으로 우수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이는 학교현장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과업이며, 학교의 외적 요소보다 학교의 내적 요소에 치중한다. 개별 학교 상황에서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 교사 그리고 교육행정가가 협동적으로 교육의 목적과 가능성을 찾아가며 서로를 지원하는 교육행정을 상상해볼 수 있다. ‘우리 학교’라는 공동체 의식은 학교를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강력한 동인이 될 수 있다. 정부의 획일적 규제와 관료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학교 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서 실천에 옮기는 교육행정 접근을 통해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다.
공동체의식은 학교 변화의 강력한 동인
교사들은 자율적 실천을 위해 엄밀한 조직 구조보다는 느슨한 결합을 선호하는 한편, 교육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화와 토론을 통한 상호작용의 필요성도 동시에 인식한다. 학교의 구성원들이 자율적·전문적 규범을 따를 때 전문적 공동체를 지향할 수 있다. 학교단위의 전문적 공동체가 관료제보다 교육의 불확실성을 다루기에 더 적합하다. 불확실성 시대에 미래를 보는 직관적 판단보다는, 전문가들의 협의를 통해 조직 차원의 통찰력에 근거한 행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적 공동체는 전문적으로 실천하는 개인들에게 의존하며 교사 개인의 역할과 요구를 부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육행정가가 학교문화를 조정하거나 통제할 수 없고, 구성원들이 스스로 갈등과 의견 차이를 토론하고 합의함으로써 전문적 자율성·개인적 성장 욕구 그리고 공유된 정체성을 함께 유지해 나간다. 전문적 공동체로서 학교의 근본 가치를 공유하되, 그것을 실천하는 차이와 다양성을 수용하고 자율적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한다. 가치와 목적을 공유하는 구성원들의 자율적 실천은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력을 높인다. 전문적 공동체 안에서 구성원들이 공유된 가치에 근거하여 교육의 불확실성을 적절히 다룸으로써 교사 각자의 자율적인 실천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교육행정이 교육 실제에 내재한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학교문화에 주목함으로써, 관료적 획일성이 아닌 전문적 공동체의 자율성 확보를 통해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다. 전문적 공동체에서 자율성을 실천하는 전문가의 행동 규범은 더 이상 과학적 객관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사회적 실천은 공동체 안에서 합의된 규범과의 일관성(coherence)을 찾는 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학교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때 일관성의 기준이 중요하다. 자율적 실천의 일관성 기준이란 객관성과 주관성, 즉 실증적인 사실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주관적 요소를 포괄하여 행동이나 선택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교육행정에 관련되어 있는 다양한 지평의 융합은 일관성 기준을 적용한 결과로 획득될 수 있다.
전문적 공동체에서 일관성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적용할 수 있다. 첫째, 전문적 규범에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전문적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전문적 규범을 합의하고, 합의된 규범에의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학교현장에 기반한 교육정책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장·단기적 교육정책, 관련되는 교육정책, 교육정책 방향과 구체적 지침 사이의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학교현장의 교육 주체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셋째, 학습공동체로서 학습의 일관성이 필요하다. 전문적 공동체를 통한 자율적 실천은 학교에 변화를 부과하기보다는 지속적인 문제해결을 통해 학습하는 공동체를 추구한다. 학습공동체로서 공동의 학습 경험을 통해 개인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의 공동체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다. 교사의 전문성 개발 경험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장기적·집단적 학습 활동과 학교현장 수업과의 적합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교육행정에서 심화되고 있는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학교현장의 공동체적 노력과 자율성을 확보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공동체의 이상을 책임있는 실천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전문적 공동체성이 학교 정책, 구조, 문화, 과정에 모두 구체화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전문적 공동체를 실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교육행정 지원이 필요하다.
첫째, 교육 실제의 불확실성에 비추어, 정부 수준의 교육정책으로 학교를 규제하기보다는 학교단위와 교사의 자율적인 실천을 지원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관료제에 대한 의존을 탈피하여 학교 단위에 권위와 책임을 부여하는 방법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전문적 공동체 접근은 실력있는 교사들의 헌신에 의존하기 때문에 교사 전문성 개발에 학교현장의 역할을 현재보다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관료적 표준이 아닌 공동체의 전문 규범을 개발하고 합의할 수 있는 교육행정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학교의 근본적 가치를 공유하면서 다원성을 포용하는 전문적 공동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학교 내부에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는 전문적 공동체의 사례로서, 학교 안에서 특성화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하우스 플랜(House Plan)’, 교사들의 다양한 연구모임 등을 적극 활용해볼만 하다.
셋째, 학교 공동체 접근은 아래로부터의 혁신을 공유하는 협력적 교육행정 설계를 필요로 한다. 교육행정기관과 학교현장 사이에 전통적인 규제와 통제 관계보다는 협력과 지원의 관계를 형성하려면, 학교현장의 실제로부터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현장을 연구하는 교육행정가의 역할과 역량을 통해 학교현장 중심의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넷째, 단위학교를 비롯한 교육체제 전반에서 전문적 공동체를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을 일관적으로 갖추어야 한다. 현재의 교사 준비 및 사회화 과정, 교사 직무 기준, 학교 협의 기구, 정부의 교육정책과 기준 등이 전문적 공동체에 적합한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높은 성취를 목표로 하는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학교도 높은 성취 기준을 개발하고, 성취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시험을 치르고 평가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관료적 접근의 대안으로 전문적 공동체를 제안하였지만 새로운 대안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학교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점과 관료적 통제의 강화는 학교현장에서 자율성의 영역을 더욱 줄어들게 만들고 문화적 지도력을 제한한다. 이러한 자율성의 쇠퇴에 대한 대안이 공동체이다. 공동체는 사고의 전환임과 동시에 실천을 수반한다. 지금까지 학교현장에서 구성원들이 진정한 공동체성을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이며 느린 속도로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해 나갈 전망이다.
학생들을 흥미로운 배움의 과정으로 이끌어서 개별 학습자, 교사, 교육행정가 모두에게 학교교육을 의미있는 경험으로 만드는 데에 전문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의의가 있다. 학교 공동체의 이상은 그에 적합한 공동체적 접근으로 실천하여야 한다. 단위 학교에서 다양한 공동체 실천 방안을 찾아낼 수 있도록 자율성을 확보하되, 교육행정 차원에서 학교 안팎의 공동체 문화를 지원·조성하는 핵심 기능을 수행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