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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교단 수기] 선생님! 저 이만큼 컸어요!

 

“선생님 저..진혁(가명)이에요”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나즈막하고 더듬거리는 한 아이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3년전 스승의 날이었던가? 늘 가슴 언저리에 낡은 가구처럼 자리잡고 있었던 녀석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을때 였던 것 같다.
 

“어. 진혁(가명)이구나”,“ 선생님..저..잘 지내시죠?”더듬거리는 말투는 하나도 변함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는 장애라는 장애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등이 굽은 아이! 곱추! 말더듬이! 그래서 키가 잘 자라지 않는 아이...
 

그 녀석을 따라다녔던 수식어들이다.
 20년전 합천의 작은 시골 마을! 합천에서 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했지만 그 마을은 생소했고 그래서인지 뭔지 모를 두려움과 작은 설레임을 동시에 안고 교정 정문을 들어섰던 기억이 생생하다. 100년은 족히 넘을 듯한 큰 플라타너스 나무의 큰 그늘 아래로 아이들이 체육 수업을 하고, 검게 그을린 얼굴들 사이로 커다란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운명처럼 배정받은 6학년! 18명! 남학생과 여학생 비율이 9:9로 황금비율이었고,그것도 하나같이 눈망울들이 컸던 아이들. 이것도 교정에 처음 들어섰을때의 좋았던 기분만큼 앞으로의 첫 교직 생활에서의 출발이 좋을거란 내 마음속의 반전 신호였을까?
 

사람이 살면서 언제나 좋은 예감이 꼭 다 맞는 법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가 일주일도 안가서 “휴~”자조섞인 한숨으로 나오게 되었다.
 

9:9의 황금 비율은 9:8내지는 10:8의 불균형적인 모습으로 우리반을 갈라놓고 있었다. 걸음이 느리고 말이 어눌했던 친구들 사이에서 늘 아픈 손가락! 특수반 수업을 위해 갈때면 17명으로! 게임을 위해 편을 가를 때면 늘 한쪽팀으로 핸디캡을 안고 가야 했던 아이! 그래서 원망도 많고 울음이 많았던 편이었다.
 

생각한대로 되지 않을때가 많았고, 한창 친구들과 뛰어 놀아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심정은 누가 알까?
 햇살이 비추던 4월의 여느 봄날, 평소와 같이 수업을 하고 있는데 그 녀석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교실을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내..지우개야! 내..지우개”하며 울부짖으며 소리지르는데 한 섞인 민요도 이 보다 더 진할수 있을까?
 “야~ 최진혁(가명)~~ 너 뭐하는 짓이야?”목청 한껏 올려 샤우팅을 퍼부어 봤지만 소용없고 되돌아 오는건 메아리 뿐이었다.
 

당체 진정이 되지 않는 아이를 나는 그저 한동안 바라만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얗게 된 머릿속을 겨우 진정시키면서 아이를 꼭 껴안는 수 밖에는 별 도리가...
그렇게 삼십여분이 지나서야 울음은 그쳐지고 난동은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언제나 그래왔다는 듯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각자 자기의 일들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진혁(가명)이는 화가 나면 원래 저래요!”,“쟤 그냥 가만히 내버려두면 되거든요”등등의 대처 요령과 훈수들이 내 고막을 수시로 때렸다.
 ‘하! 이런 것이었나?’임용전 모 선배의 말이 문득 떠 올랐다. 발령 받고 나면 생각만큼은 쉽진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3월부터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그 조언이 왜 그렇게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는지. 생각했던 달콤한 교사 생활은 안되겠구나 어렵겠구나! 스스로에게 격려를 하면서 진혁(가명)이 어머니와의 상담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선생님요, 진짜로 힘들지에? 우리 진혁(가명)이 좀 잘 봐주이소. 이놈이 태어날 때부터 이상해가지고...형편도 어려워서 등에 혹 난것도 수술도 못해주고..”
 

그때부터 어머니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전화가 끝나는 내내 이어졌고 아이의 사정들을 그때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부모의 온전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자라서 몸의 불편함과 함께 정신적인 고통까지 당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에서 연민의 정이 솟구쳐 올라왔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몸이 불편해지고 등굽은 곱추로 살고 있었던 것이다. 불편한 몸과 함께 정신까지 피폐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진심어린 사랑이 필요했던 아이, 친구들에게 관심 받고 싶었던 아이!
그 시절 장애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관심 밖의 일들이었고 가까이 하기에는 왠지 눈치가 보이고, 주변 아이들 조차 편견아닌 편견! 막연한 관심밖의 이야기꺼리였던 것 같다.
하느님이 계시다면 나에게 그런 사명 같은 것을 주실려고 한 건 아닐까? 한창 젊은 혈기와 열정에 학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찾다가 상담 공부를 시작하던 때와 겹치게 되는 고마운 일들이 순순히 전개되었다.
 

상담 공부를 하면서 모대학 교수님으로부터 수많은 상담 사례들을 접할 수 있었고, 비슷한 생각과 사례를 가진 동료 교사들의 체험담 등은 나에게 커다란 희망과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북돋어 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때 만났던 한 선생님의 일화는 나에게 울림을 주었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결국에는 서로 따뜻한 교감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동안 교감의 의미를 되씹고 되새기다가 아이들의 편견과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들을 찾아 같이하는 기쁨을 알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였다.
 

그해 여름! 야영수련 활동은 그 노력의 댓가를 받기에 충분한 사건이 생기게 된다. 수련활동의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래프팅 종목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가장 기대하고 기다리던 것 중의 하나였다. 그 당시 물살은 세지 않았지만 래프팅의 특성상 어쩔수 없이 배가 흔들리게 되었는데 그만 진혁(가명)이가 물에 풍덩 빠지게 된 것이었다. 교관이 손을 쓰기도 전에 일은 일어나 버렸고,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그 순간 정말 믿지 못할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한 아이가 물에 뛰어들어 진혁(가명)이를 붙잡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누구랄 것없이 노를 두 아이쪽으로 잡으라고 쭉 뻗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결국 교관이 빠른 조치를 취해서 안전하게 다시 배로 끌어 올릴 수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장면이다.
 

전부 구명 조끼를 입고 있었고, 아이들이 가만히 있었어도 결국 교관이나 선생님의 도움으로 진혁(가명)이는 건져 올려 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진혁(가명)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수도 있었겠지만, 그 10초도 안되는 찰나에 일어난 일은 진혁(가명)이의 가슴속에 깊이 박혔던 것 같다.
 

야영의 하이라이트인 캠파이어 시간으로 모든 활동을 종료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의 촛불의식! 한마디씩 정리하는 자리에서 진혁(가명)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더듬거리는 말투로) “오늘 동규(가명)가 ..나를..살려주었어요. 친구들이 좋아요”
 

소처럼 커다란 눈망울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카타르시스 같은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울고 있는 동료들과 숙연해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모두들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까?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아이들의 마음속에서도 온정이라는 따뜻한 씨앗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싹트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은 흘러 겨울이 되었고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된 것인데 그해 12월은 꼭 첫눈같이 설레고 달콤한 기억이 가슴언저리에 항상 자리하고 있다.
결혼식날! 축가를 부르기 위해 우리반 18명이 모두 함께하여 합창을 하는게 아닌가? 나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고 알아보니 옆반 선생님께서 고맙게도 몰래 아이들을 데리고 평소에 조금씩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깜짝 선물도 이런게 있을까요?
다들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유독 눈에 띄는 한 아이! 언울한 자세에 등이 굽어 있고 작지만 눈이 큰 아이!
그것도 맨 앞줄 정중앙에 자리하여 나를 보고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수근 거림이 내 귀에 들려올때쯤‘사랑으로’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들의 맑은 목소리가 식장에 울려 퍼질 때 사람들의 웅성임은 이내 감탄으로 변하였고 박수로서 화답하고 있었다.
 

아내가 나의 눈을 닦아 줄 때 그제서야 내가 울고 있구나 느꼈고, 오늘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너무 기뻤다.
그렇게 이 아이들과의 지지고 볶음을 뒤로하고 졸업을 시키는데 그 감회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진혁(가명)이 어머니의 가르침이 그해 나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다. 졸업식 중간에 어머니께서 나에게 작은 감사패를 주셨는데 그 속에는‘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으로 제 아이가 잘 컸고 이렇게 졸업을 하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행복한 결혼생활 되세요’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 그저 또 눈물만 하염없이 흘릴뿐이었다.
 

뜨거운 눈물의 졸업식이 언제 끝이 났을까! 아련한 기억속에서 잠겼다가 시간은 어느새 15년이 훌쩍 지나 그때 그 아이의 전화를 받고 있는게 아니겠어요!

 “선생님 저..진혁(가명)이에요”,“ 선생님.. 저.. 이만큼 컸어요”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문자로 보내주는데 굽은 등은 펴져 있고 혹은 제거술을 받아서 예전의 모습이 아닌 바른 자세에 가까웠다. 자랑이라고 하듯 자신의 커 있는 모습을 당당하게 보내주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게 바로 보람이라는 것이구나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스승의 날만 되면 전화하고 만나는 친한 친구가 되었죠.
지역 노인복지센터에서 작지만 힘을 보태고 살아가는게 행복이라고 말 할만큼 훌쩍 성장해버린 녀석! 키만 큰게 아니라 마음까지 훌륭하게 컸구나!
 “선생님, 저 이만큼 컸어요”한 아이가 나에게 가르쳐 준 작지만 큰 울림!
 

교직 생활 20년을 힘 잃지 않고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었고, 그때부터 나를 채찍질 했던 동기였으며 그래서 가르침의 참맛을 깨닫고 여기까지 오게 해준 고맙고도 벅찬 행운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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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교단수기 공모 - 동상 수상 소감

제자의 작은 외침으로 시작된

친구 같은 스승과 제자

 

서울에서 특별히 전화가 올 일이 없는데, 광고성 전화인 줄 알고 끊으려다가 받은 입상 소식은 새해 깜짝 선물이 되었습니다. 제자로 인해 나 자신이 더 성장하고 발전한 것이 당연한데 오히려 그런 제자 덕에 상을 받게 된다니 괜스레 민망하기도 하고 한없이 고맙게만 느껴집니다.
 

평소에 존경하고 따르던 은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현인(賢人)이 되기도 하고, 폐인(廢人)이 되기도 하니,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스승다운 스승을 단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행운이자 큰 복이 되니 자네가 그런 스승이 되어 보면 어떻겠나”
 

스승의 의미를 말씀하신 은사님의 깊은 뜻이 가슴으로 저며 옵니다. 만약 그 시절 제자의 작은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면 지금의 친구 같은 스승과 제자가 만들어졌을까요
 

교사로서 가르치는 일에만 급급할 때마다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제자가 한 명쯤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쁘고 소중한 일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상을 계기로 참된 스승의 의미를 다시 한번 아로새기고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채찍으로 여기겠습니다. 부족한 글 선택하여 주신 한국교육신문사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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