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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즐거움 ② ‘몸’과 ‘마음’과 ‘머리’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몸과 마음과 머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사람들은 몸과 마음과 머리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나를 나답게 만들어가는 일을 좀 더 잘할 수 있다. 우리말에서 몸과 마음과 머리가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말에서 ‘몸’은 ‘모, 모두, 모이다, 모으다’에 바탕을 둔 말이다. ‘몸’은 낱낱의 ‘모’이면서, 하나인 ‘모두인 것’이고, 하나로 ‘모인 것’이고,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는 낱낱인 하나하나의 것을 가리키고, ‘모두’는 여럿이 모여서 하나의 ‘모’가 된 것을 가리키고, ‘모이다’는 갖가지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모’를 이루는 것을 가리키고, ‘모으다’는 임자가 갖가지 것들을 모아서 하나의 ‘모’가 되도록 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나’를 ‘이 몸’으로 일컬어왔다. 예컨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라고 말할 때, ‘이 몸’은 ‘나’를 일컫는다. 이두(吏讀)에서는 ‘이 몸’을 ‘의신(矣身)’이라고 쓰고, ‘이 몸’으로 읽었다. ‘이 몸’은 ‘나의 몸’으로서, 내가 ‘나’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이 몸’은 아버지 쪽의 몸과 어머니 쪽의 몸이 하나로 모여서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은 다시 할아버지 쪽의 몸과 할머니 쪽의 몸이 하나로 모여서 생겨난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나의 몸은 모든 할아버지 쪽과 모든 할머니 쪽의 몸이 하나로 모여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몸’에는 팔·다리·배·가슴·목·머리·마음과 같은 것들이 모여 있다. 이런 것은 다시 손·발·창자·위·허파·눈·코·귀·입·혀·이빨·느낌·알음·기억과 같은 것들이 모여 있다. ‘나’는 이러한 ‘몸’으로써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내가 나고, 살고, 죽는 일은 나의 몸에 달려 있다. 나는 몸으로 숨을 쉼으로써 살아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몸으로 쉬고, 먹고, 놀고, 자는 일을 해야 한다. 

 

마음
우리말에서 마음의 옛말은 ‘’이다. ‘’이 ‘’으로 바뀌고, ‘’이 다시 ‘마음’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이 ‘’을 거쳐서 ‘마음’으로 바뀌어온 과정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어떠한 바탕을 갖고 있는 말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마음의 옛말인 ‘’은 ‘’와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다. ‘’는 사람이 어떤 것을 잘게 부수어서, 낱낱의 알갱이로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는 ‘다’와 같은 뜻으로 쓰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는 쓰이지 않게 되었고, ‘다’는 ‘부수다’로 바뀌어서 오늘날에도 쓰이고 있다.  


한국 사람이 ‘마음’을 ‘잘게 부수어서 낱낱의 알갱이로 만드는 것’으로 여기게 된 것은 눈, 코, 귀, 혀, 살과 같은 것을 가진 임자가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에서 그러한 까닭을 찾아볼 수 있다. 


세상에 널려 있는 모든 것은 함께 어울려서, 온통 하나를 이루고 있다.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큰 것은 큰 것대로 모두가 함께 어울려 있다. 그런데 눈·코·귀·혀·살과 같은 것을 가진 임자는 온통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을 낱낱으로 잘게 부수어서 느끼고 아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임자가 느껴서 알게 된 온갖 것을 낱낱의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곳을 ‘마음’이라고 불러왔다.  


임자가 느껴서 알게 된 온갖 것을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마음은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마음은 임자가 저마다 나름으로 만들어가는 ‘알음알이’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을 바탕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생겨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어떤 것을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된다.  


한국 사람은 ‘마음을 쓴다’ ‘마음을 준다’ ‘마음이 움직인다’ ‘마음이 넓다’ ‘마음이 따뜻하다’ ‘마음이 좋다’ ‘마음에 든다’ 따위로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음이 끌리는 대로 하는 것을 ‘마음대로’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마음을 잘 쓰고, 마음을 잘 주고, 마음을 잘 움직이고, 마음이 넓고, 마음이 따뜻하고, 마음이 좋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머리
우리말에서 머리의 옛말은 ‘마리’와 ‘머리’이다. ‘마리’와 ‘머리’가 함께 쓰다가, 때가 흐르면서 ‘머리’만 쓰게 되었다. ‘머리’의 뜻을 알아보려면, ‘마리’와 ‘머리’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마리’와 ‘머리’에서 ‘마리’는 오늘날 한 마리, 두 마리, 실마리와 같은 말에서 볼 수 있는 ‘마리’이다. 옛사람들은 ‘마리’를 ‘마리 두(頭)’, ‘마리 수(首)’로 새겼다. 이러한 ‘마리’는 ‘말다’와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다. ‘말다’는 내가 마주하고 있는 무엇이 하나의 어떤 것으로서 자리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너는 밥을 먹지 말아라” “너는 밥을 먹고 말았다”에서 ‘말다’는 내가 마주하고 있는 네가 ‘밥을 먹지 않은 것’이나 ‘밥을 먹은 것’으로서 자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삼아서 “너는 밥을 먹지 말아라” “너는 밥을 먹고 말았다”와 같은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마리’와 ‘머리’에서 ‘머리’는 ‘멀다’와 뿌리를 같이 하는 말이다. ‘멀다’는 어떤 것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임자는 머리에 있는 눈·귀·코·입과 같은 것을 가지고서, 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무엇을 하나의 어떠한 것으로서 느끼고 아는 일을 한다. 임자는 이렇게 함으로써 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갖가지 것을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머리’는 멀리 있는 것을 어떤 것으로서 느껴서 알아보도록 한다. 예컨대 ‘머리’에 있는 눈은 빛을 안으로 들여서 멀리 있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고, 귀는 소리를 안으로 들여서 멀리 있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고, 코는 냄새를 안으로 들여서 멀리 있는 것을 알아보도록 하고, 입은 소리를 밖으로 내어서 멀리 있는 것이 알아보도록 한다.  


한국 사람은 “머리가 돌아간다” “머리를 굴린다” “머리를 쓴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머리가 잘 돌아가고, 머리를 잘 굴리고,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을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 되어서, 살아가는 일에 필요한 온갖 것을 잘 느끼고, 잘 알고, 잘 바라고, 잘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한국 사람은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람다움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이런 열망을 바탕으로 나를 나답게 만들어보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서 사람들은 몸을 튼튼하게, 마음을 어질게, 머리를 똑똑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나를 나답게 만드는데 필요한 갖가지 일을 야무지게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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