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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도전 그것이 가능성이다!"

 

“○톡! ○톡!”
계절의 여왕이자 교사로서 조금은 낯 뜨거운 5월의 어느 날, 책상 위 핸드폰은 연신 울어댔다. 통신 쓰레기가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그리 대수롭지 않게 넘기곤 수업을 들어가고 업무를 처리하다가 그토록 나를 부르던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올라간 나의 입꼬리들.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그런 흐뭇함이 본능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렇게도 속을 썩였건만 지금은 내 교직 생활의 자부심으로 남은 녀석에게서 스승의 날이라고 선물이 도착하였다.


‘그래, 이 녀석이 있었지? 그땐 꿈이었는데 이젠 현실이 되었네.’
십수 년의 교직 생활을 하였지만, 그 흔한 수학여행 한번을 제대로 다녀오지 못하고 그저 점수와 합격-불합격의 이분법만이 존재하는 입시를 담당하는 고3을 10여 년을 하고 있었다. 마치 대단한 사명을 받들고 세상의 누구보다 고귀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리화하며 그렇게 지내고 있다가 지금의 여자고등학교로 전출을 왔다.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맹수와 같이 지냈기에 전출을 오면서 스스로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었음을 느꼈고 조금 천천히 하자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만난 새로운 녀석들을 역시나 가혹함이 존재하는 고3의 교실에서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간의 전투력을 상실한 채 그냥 익숙한 일을 하는 담임 교사로 학생들과 만나고 있었다. 전출 온 학교는 전문계와 일반계가 섞여 있는 학교로 이미 스스로의 가치를 정해놓은 듯 선을 그어서 나 스스로 발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믿었고 현실도 그러하였다. 이런 무기력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러고 싶었지만 동인이 부족하였다.

 

그러다 지금 그 녀석의 가능성을 보았다.
소위 스스로 내공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에 그 녀석의 가능성은 차츰 확신으로 다가왔고 다소 지루하게 흘러가고 있는 나의 삶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바로 ‘도전’.

 

항상 교사라는 사명을 수행하며 마음속에 0순위였던 그 말을 꺼내기로 다짐하고 0순위의 친구 1순위 ‘진심’을 다기로 하였다. 이 학교가 개교한 이래 최초로 ○○대학교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고 가능성을 체크하기 시작하였다. 섣부르게 학생에게 이야기를 하였다가 괜한 환상만 심을까 걱정도 많이 하였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간의 경험을 총동원하기로 하였다. 또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모아 스스로 입시를 하나의 학문처럼 공부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확신이 서면 과감하게 나의 도전의 배에 함께 하자고 하기로 하였다. 2달여간 학생의 성향, 학생의 태도, 학업 능력 등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파악하였다. 그리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학생을 불러 솔직하고 담백하게 말을 꺼냈다.

 

 

“○○아! 우리 ○○대학교 도전하자!”
순간 정적이 흘렀고 잠시 서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러나 이내 학생은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쌤~~!”
“농담도 과하시네요. 그러지 말고 절 부른 이유를 정확하게 말씀하여 주세요. 맨날 장난만 하시고.”
“아닌데. 나 지금 진지해. 내 얼굴을 봐라. ‘진지’라고 쓰여있구먼. 내 말을 잘 들어봐. 이러 이러한 이유로 가능성이 있어. 혹시 네가 불편하면 없던 일로 할게. 나랑 한번 도전할래?”

 

그렇다.
나의 소중한 제자의 인생 전체는 아닐지라도 인생이라는 항해의 방향은 결정될 수 있는 대학 입시에서 ‘장난’이라는 것을 적용한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또한 제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기에 원치 않는 길을 함께 걷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쌤! 그럼 한번 해 볼까요? 도와주실 거죠?”

 

시작이 반이랬다. 그렇게 우리의 고3 교실에서의 하루는 전설의 시작이 되었다. ‘사제동행’
교직 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던 선배 선생님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것. 가장 중요한 가치로 마음에 품었고 이번에도 함께 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거창한 무엇인가를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매일 함께 남아서 공부하면 10시까지 학교에 같이 있어 주었고 학생이 오롯이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각 대학별 정보를 정리하였고 학생의 강점을 같이 분석하여서 추천서를 작성하였다.

 

또 면접장을 만들어서 함께 연습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있게 했었다. 그냥 학급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것 같다. 그리고 과감하게 지원하였다. 그런데 전설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근 7개월을 매일 남는 게 그리 쉽지는 않았고 중간중간 녀석과 마찰도 발생했다. 그리고 지원하고 면접을 보내고 했다.

 

“가서 잘하고 와. ‘자신감’ 알지?”
매번 같은 얘기를 했다. 하지만 실상 녀석이 대학별 고사를 보러 가면 항상 떨렸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더 많은 긴장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최종 발표일이 되어서는 다른 지역으로 가고 싶었고 정말 갔다. 회피 기제가 발동하였기 때문이다. 조금은 잊고 싶어서 남원으로 떠났다. 낯선 곳에서 이리저리 다니고 있다가 핸드폰을 보았다.

 

정말 많은 전화가 와 있었다. 그런데 메시지는 없었다. 정말 불길하였다. ‘아, 떨어졌구나. 흠.’ 그리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데 또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서 들리는 우는 소리.
“여보세요. 야! 괜찮아. 힘내라. 다른 대학도 많잖아. 오늘은 실컷 울고 내일은 파이팅!”
“쌤~~! 붙었어요. 저 두 대학 모두 붙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와! 무슨 소리야? 정말이지?”
“네. 정말 믿기질 않아요.”


내 평생에 이 장면은 잊히질 않을 것이다. 남원이라는 낯선 공간에 가서 이런 기가 막힌 상황을 접할 줄이야. 녀석과 전화를 일단 끊고 바로 수많은 축하 전화가 왔다. 그만큼 대단한 사건이었다. 학교 개교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고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공자, 맹자 같은 스승은 아닐지라도 기억에 남는 ‘선생’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나만의 가치를 원칙으로 삼고 강요도 하고 다그치기도 하였다. 그것이 제자들에게 부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멋지게 살기를 바랐고 또 그렇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돈이 없어서 자신의 꿈을 꺾는 모습은 정말 보고 싶지 않아서 각 대학에 장학금도 요청도 많이 했다. 그러면서 남들이 싫어하는 고3을 강산이 변할 만큼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고 대학에도 진학을 시켰다. 그래 그것이 자부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나의 제자들의 기억 속에 내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고 매우 훌륭하진 않아도 그들과 함께 고민했던 교사로 남았다는 것이다. 나의 교직 생활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전반전이 끝나가고 있다. 또 많은 제자들과 인연을 맺을 것이다. 후반전에도 멋진 교사는 아닐지라도 함께 도전하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남들이 YES라고 할 때, NO를 외칠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와 제자들의 슛은 골망을 흔들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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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교단수기 공모 - 동상 수상 소감

멋진 스승이 아니라

친구 같은 사람

 

이렇게 수상 소감을 쓰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저 힘겨웠지만 보람되었던 그 기억을 더듬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의 나무에 수많은 잎이 매달려 있고 이들의 모양이 모두 다르듯 교직을 수행하는 모습도 다양할 것입니다. 다들 저마다의 소명을 실천할 것입니다.

 

10여 년 고3 업무를 담당하며 치열한 경쟁의 현장 한가운데 서 있는 저로서는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각자 표현하지 않았던 다양한 사연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고 진학시키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며 합격해서 울고 불합격해서 슬퍼하고 학생의 사연이 너무 딱해서 가슴 아프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고 그들이 성장하여 지금은 가끔 술 한 잔 기울이며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멋진 스승이 아니라 친구 같은 사람, 그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되 그들이 도전하는 것을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비록 작은 도전과 성공의 기억이었지만 열정이 있다면 그리고 함께 힘을 모은다면 못 할 것도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던 그 기억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저의 교육자로서의 삶에 강인하게 각인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이 글을 작성하는 저는 지금도 입시라는 현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입니다. 실패가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가슴 펴고 담담하게 나아갈 것입니다. 이제 막 청춘을 맛볼 기회를 얻은 나의 제자들을 위하여 저의 젊은 날을 기꺼이 태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훗날 교직이라는 길의 끝에서 그들과 또 다른 자리에서 삶과 생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달리는 경주마 같은 저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주신 교총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더불어 지금도 제자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계실 모든 선생님께 ‘존경합니다’라고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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