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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내가 들은 6.25 전쟁 이야기

6.25 참전용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

6.25 참전용사 만나기는 어렵다.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 6.25참전유공자회 등 관련단체에 연락하여 인터뷰 대상자를 찾으려 하니 난관에 부딪친다. 그도 그럴 것이 6.25 당시 18세이면 70주년인 올해 88세이다. 참전용사 중 생존해 있는 분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참전용사 가족을 찾아 보았다. 지난 24일, 서둔동에 살고 있는 유상준(74세) 씨를 경기상상캠퍼스에서 만났다. 14살 나이 차이가 나는 큰형(유상구 작고)이 참전용사다. 참전용사 동생을 통해 6.25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고향인 충남 청양 장평면에서 남침 소식을 들었다. 이때 동생 4살, 형은 18살. 형은 국가로부터 소집 통지서를 받고 제주도에서 한 달간 기초훈련 후 중부전선에 투입되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전쟁 중 완전무장을 하고 휴가온 형의 모습과 자식을 맞이하려고 맨발로 달려나간 어머니 모습.

형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중부전선에 투입되었는데 작전에 참가, 전투가 벌어지면 4할 정도가 사망하고 6할 정도가 생존. 생존자들로 다시 부대를 편성, 작전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휴전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고지탈환 전투. 피비린내 나는 야간 육박전에서 피아식별은 머리. 머리가 길면 아군, 짧으면 적군.

아버지는 칠갑산 인근에 떨어진 적의 포탄을 보고 “피란 가도 죽고 여기 있어도 죽는 건 마찬가지”라며 피란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는 군대간 자식을 위해 장독대에 매일 정안수를 떠 놓고 정성을 드리던 모습. 당시 네 살 먹은 유상준 씨도 폭격기 소리만 들어도 마루밑으로 기어들어갔다고 한다.

농림부 농업공무원교육원에서 은퇴한 유상준 씨는 월남전 파병용사다. 그는 6.25가 북침이라는 등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일부세력이 있어 안타깝다고 한다.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역사적 사실을 변형시키면 아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공산주의는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이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이다.

이등중사로 제대한 형님은 슬하에 3남2녀를 두었다. 수원에서 건축업을 하면서 수원비행장, 서둔동 성당, 서둔교회 건축에 참여하였다. 57세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막내딸은 경기 언론계에 종사하는데 참전용사인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형은 사후 참전유공자로 인정을 받아 청양 선영에서 여주 호국원 납골당에 형수님과 함께 모셔져 있다고 한다.

6.25의 교훈은 무엇일까? 6.25 참전용사가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 역사의 교훈은 전쟁을 대비하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것. ‘상기하자, 6.25’ 표어, 우리는 많이 들어보았다. 6.25를 잊지 말자는 것이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