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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김민수의 세상 읽기 ⑯] 숫자와 대중문화

숫자는 숫자다. 다른 것이 아니다. 인간이 편리를 위해 사용한다. 사물을 추상 단위로 세는 데 용이하기에 인간이 지성의 능력으로 만든 기호이다. 양, 크기, 순서를 표시하는 데 이롭다. 1, 2, 3, 4, 5, 6, 7, 8, 9, 10. 앞의 수보다 뒤의 수가 많고, 크다. 혹은 앞의 것이 뒤의 것보다 먼저이고 우선한다. 손가락 개수와 같아서 10진을 사용한다. 10진수의 표기 방법은 바빌로니아, 이집트 등 상고 시대 고대 문명부터 있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중국의 표기법도 있지만, 아라비아인들이 쓰던 기호를 오늘날 널리 사용한다.

 

그런데, 숫자는 힘이 있다. 숫자가 특정 의미를 지니면 힘으로 작용한다. 오래전부터 숫자는 문명의 힘으로 작용했다. 예컨대, 숫자 10은 최초의 네 정수의 합(1+2+3+4=10)이다. 이 관계를 기하학적으로 나타내면 정삼각형이 그려진다. 서양의 문화에서 숫자로 세계의 질서를 파악하고자 했던 피타고라스학파가 이런 방식으로 숫자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를테면 ‘10은 만물을 포괄하며 만물의 경계를 이루는 어머니이다’. 유대교의 전통에서도 숫자 10은 언제나 중심적인 의미를 지녔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신으로부터 받은 계명은 10개였다. 이처럼 숫자는 인류 문명을 지배한 상징적 기호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2-4-8-16-32-64. 이렇게 배열하면 동아시아 문명에서 중화문명의 중심질서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주역의 64 괘(卦)가 나온 원리이다.

 

조선 건국 후 정도전이 한양에 수도를 설계할 때에는 5의 숫자에 의미를 부여했다. 인의예지(仁義禮智)로 4대문을 만들고, 가운데 보신각(普信閣)으로 신(信)의 의미를 부여했다. 숫자가 정치․종교․사상과 결합되면 세계를 동일성으로 질서지우는 강력한 힘으로 발휘한다.

 

숫자에 어떤 특정 의미를 결합시키면 마법적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오늘날 시민사회의 문화현상에 대해 생각해보자. ‘11, 11’로 배열된 숫자에 날짜 개념을 부여하고 특정 이미지를 결합시킨다. 그러면, 오늘날 유통되고 있는 특정 종류의 ‘막대 과자’의 매출을 급속히 상승시킨다. 그러면서 시민사회의 대중 소비문화현상 중 하나를 만들어낸다. ‘3, 3’으로 배열된 날짜에 특정 이미지를 동일한 방식으로 결합하면 마찬가지의 효과가 생겨난다.

 

숫자와 결합한 대중문화가 오늘날에는 경제적․정치적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대중(mass)’은 서양의 근대 시민사회의 등장과 함께 생겨난 개념어이다. 불특정한 다수의 무리를 뜻하는 말이다. 특정하여 숫자로 셀 수 없기에 하나의 묶음 단위로 추상화하여 표기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다. 다양하나 하나로 묶여 있어서 여러 개로 분류가 안 된다. 많지만 하나인 ‘덩어리’라 할 수 있다.

 

지성으로 세기에 많은 수는 근대 이전 문명에서는 큰 의미 부여가 없었다. 고대의 문명에서는 1, 2, 3, 4, 5 등 작은 수가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런데, 시민사회가 등장한 이후 경제적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산업사회가 되면서 문명의 역사는 숫자에 대한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불특정한 다수의 ‘무리’가 생산과 소비에서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소비하는 것이 곧 대량의 생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경제적 생산주체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대량으로 소비하는 소비주체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러면서 큰 숫자가 사회적 힘을 지니게 된다. 이러한 다수의 사회적 힘은 정치영역에서도 그대로 작용된다. 도심의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의 정치적 의견은 그 속의 특정 개인의 표현 내용과 그 의미의 중요성보다는 집단적 숫자로 표현된다. 그래서 많은 숫자가 중요하다. 그리고 많은 숫자는 불특정하지만 하나의 ‘이미지’ 형태로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미지화된 숫자는 디지털 매체와 결합하면서 정치적 의미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숫자의 신비스러운 마법이 생겨난다. 그래서 숫자세기의 방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산출된 숫자에 대해 어떤 의미를 결합시킬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그런데, 한 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오늘날 우리의 대중문화가 ‘숫자의 우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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