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8 (화)

  • 맑음동두천 18.4℃
  • 맑음강릉 21.4℃
  • 맑음서울 19.3℃
  • 맑음대전 21.4℃
  • 구름많음대구 22.9℃
  • 맑음울산 22.5℃
  • 구름조금광주 22.0℃
  • 구름조금부산 23.3℃
  • 구름조금고창 20.1℃
  • 구름많음제주 23.1℃
  • 맑음강화 18.8℃
  • 맑음보은 21.2℃
  • 구름조금금산 20.2℃
  • 맑음강진군 21.8℃
  • 구름조금경주시 22.8℃
  • 맑음거제 23.8℃
기상청 제공

제언·칼럼

[김민수의 세상 읽기 ⑪] 좋은 사람 vs 좋은 시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은 이렇게 시작한다. 수없이 많은 별들, 그중에서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헤면서 시인은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 그리고 어머니를 부른다. 그리고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을 이름과 낯선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등의 이름을 부른다.


이 이름들은 모두 시인에게 오래되고 멀리 있어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사람들의 이름들이다. 


시인이 기억하고자 하는 좋은 사람들의 이름은 멀리 있어 별빛으로 투영시켜 기억할 수밖에 없다. 그 별빛이 내리는 언덕 위에서 시인은 자신의 이름을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린다. 이름은 별빛에 잠시 반사되고 곧 사라진다. 시인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좋은 사람을 기억하고자 했던 시인은 당대 식민 제국에서 좋은 시민이 될 수 없었다. ‘부끄러운 이름’에는 두 가지 의미의 복선이 있다. ‘부끄러운 이름’으로는 밤하늘의 수많은 아름다운 별빛을 반사할 수 없다. 그러나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이름’은 삭막한 겨울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무성하게 태어난다. 좋은 사람의 이름은 이렇게 해서 다음 해 봄에도 그다음에도 오래도록 기억된다. 


좋은 사람의 이름이 동시대 시민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불리지 않을 때가 역사적으로 종종 있어 왔다. 어느 시대이든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가들은 좋은 사람이 곧 좋은 시민이기를 희망한다. 또한 좋은 시민이 곧 좋은 사람으로 되기를 기대다. 


훌륭한 정치가는 전자를 위해서 한 사람의 말이라도 좋은 말을 경청하고, 또 그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덕을 아낌없이 베푼다. 후자를 위해서는 다수의 시민들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또 최선의 방법과 제도로 좋은 시민을 공정하게 대우한다. 이러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곧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말했듯이, 좋은 사람과 좋은 시민이 일치하는 경우가 실제적으로는 드물기 때문이다. 


아울러 단 한 사람의 좋은 사람이라도 그가 스스로 당대의 좋은 시민이 되기를 거부하면, 그 국가는 좋은 상태를 오래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좋지 않은 사람이 좋은 시민의 표상이 되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불행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시민의 관계에 대해 아주 분명하고 단호한 입장을 가졌던 사람을 오늘 우리 시대의 초가을 밤에 소환해보자. 19세기 초 미국의 메사추세츠 주 인근 작은 도시인 콩코드에서 ‘월든’이라는 호수를 사랑하고 숲속의 작은 생명들과 벗하며 사색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를 불러보자. 


홀로 ‘월든’의 호숫가에서 집을 짓고 살던 1846년(29세) 어느 날 그는 구두를 고치러 마을에 갔다가 붙들려 감옥에 수감된 일을 계기로 《시민의 불복종》을 쓰게 된다. 단호한 그의 문장들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는 노예 제도를 반대하고, 맥시코 전쟁에 반대하는 실천 행위로 당시 정부가 시민에게 강요하였던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였다. 이 일로 감옥에 수감된 것이었다. 그의 납세 거부는 단지 돈이 아까워서가 납세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다. 마땅히 존경해야 할 정부가 정의롭지 않다면, 그 정부를 전 생애를 바쳐 존경할 권리를 스스로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불의를 가진 정부가 좋은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도 불의를 행하는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좋은 사람은 그것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비록 다수의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불의의 하수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좋은 사람 한 사람은 백 사람, 천 사람보다 강하다. 그 이유는 그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존경심은 법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아는 자기 행위의 도덕성에서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