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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불교의 나라 미얀마에서 경험한 무소유

수험생 시절 나는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항상 MP3 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녔다. 야간자율학습이 진행되던 고요한 교실에서 이어폰을 꽂으면 다른 세계로 넘어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때 즐겨듣던 노래가 로비 윌리엄스(Robbie Williams)의 ‘The road to Mandalay’였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미얀마에 가서 만달레이로 향하는 버스에서 이 노래를 꼭 들어보리라 다짐했었다.

 

결혼 후 아내와 떠난 첫 여행지는 미얀마였다. 아내의 조건은 단 한 가지. ‘여행 마지막 즈음에는 휴양지에서 편히 쉬다 돌아오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행 전반부에는 만달레이를 포함해서 미얀마 불교유적을 돌아본 뒤, 후반부에는 미얀마의 나폴리라고 불리던 응아팔리(nagapali)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다가 돌아오기로 했다.

 

 

#1 양곤, 강제 무소유의 시작

불교의 나라 미얀마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강제로 무소유를 경험하게 되었다. 양곤 국제공항에서 우리 부부는 배낭을 찾지 못했다. 어느덧 수하물 컨베이어벨트 앞에는 우리 부부만 남게 되었고, 공항 직원은 ‘내 배낭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있는 것 같다’고 확인해 줬다. 절망적이었다. 수하물 분실 신고서를 작성하고 우울·당황·분노의 마음이 중첩된 상태로 국제공항을 나와 숙소로 향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여권·지갑·카메라 세 가지는 수하물로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지’라고 애써 마음을 토닥였다. 여행에 꼭 필요한 짐은 다 있으니, 어쩌면 짐을 다 가지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며 위로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법정 스님의 말씀을 실천해보기로 했다.

 

#2 인레호수, 고즈넉한 여행의 시작

인레호수는 가늘고 긴 보트를 타고 인레호수 곳곳을 여행하는 ‘한나절 보트투어’가 유명하다. 보트투어를 시작하면 외발로 노를 저어 물고기를 잡는 어부를 처음 만난다. ‘인레호수’로 인터넷 검색을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사진이 바로 이 어부들의 모습이다. 좁은 보트에서 한 발로 중심을 잡고 한 발로 노를 저으며 손으로는 어망을 이리저리 다루는 모습이 묘기에 가까웠다. 어부를 뒤로하고 수상가옥 마을, 토마토 농장 등을 들러 인데인 파고다에 도착했다.

 

 

인데인 파고다는 추가 요금을 내야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충분한 ‘가치’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인데인에 도착하면 보트에서 잠시 내려 마을을 통과한다. 인데인까지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지나는데, 양옆으로 엄청난 스투파들이 있다. 스투파는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불탑이다. 초입에 있는 스투파들에선 시간의 흔적이 느껴졌다. 곳곳이 무너져 내린 상태로 색까지 바랜 스투파가 끝없이 펼쳐졌다. 오르막길 마지막에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쉐데인 파고다가 있다. 이곳에서 만나는 ‘황금색 화려한 스투파들’은 입구에서 만났던 ‘색 바랜 스투파들’과 대비되면서, 스투파들과 함께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다시 배를 타고 숙소로 돌아갈 즈음, 해가 지기 시작했다. 일몰 포인트에서 인레호수 위로 떨어지는 해를 감상하고 싶다면, 보트 기사에게 ‘노을을 보고 싶다’고 사전에 이야기해야 한다.

 

다음 날에는 자전거를 빌려 인레호수 주변을 돌아다녔다.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근처 마을을 돌아다니니 인레호수에 의지해 살아가는 미얀마 사람들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호수 주변에는 쉬어가며 즐길 수 있는 와이너리와 온천도 있다. 두 곳을 목적지로 잡고 자전거 여행을 계획하길 추천한다. 셋째 날에는 고상 가옥 형태로 지어진 쉐얀파이 파고다로 향했다. 쉐얀파이 파고다에서는 동자승들이 모여 앉아 공부하고 있었다. 여행객들은 파고다 구석에 자리 잡고, 동자승들과 함께 부처님과 하나 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두 시간 정도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고즈넉한 여유를 즐기며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잃어버린 짐이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짐을 잃어버렸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완전한 무소유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무소유를 경험하고 있는 게 아니었을까.

 

#3 만달레이, 조심스러운 여행의 시작

인레호수에서 야간버스를 타고 양곤으로 향했다. 수험생 시절 듣던 노래 ‘The road to Mandalay’를 들으며 잠시 추억에 잠겼다. 하룻밤을 꼬박 달려 만달레이에 도착했다. 만달레이는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경복궁 느낌이 나는 커다란 만달레이궁이 있다. 만달레이 궁은 2차 세계대전 때 전부 불타 없어졌고, 지금 보이는 궁궐은 전부 복원해 새로 지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궁궐 모습을 갖춘 겉모습과는 다르게, 내부는 실제 이용하는 데 필요한 시설이 거의 없었다. 멀리서 보아야 예쁜 만달레이 궁이었다.

 

마하무니 파고다는 매일 새벽 진행되는 부처님 세안식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도 새벽에 일어나 세안식을 직접 보고 싶었지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황금불상을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미얀마의 커다란 사찰에 가면 금박지를 파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미얀마인들은 금박지를 사서 불상에 바르며 기도를 올린다. 아주 얇은 금박이지만 수많은 사람이 오랜 세월을 공양한 결과 금박이 아니라 금으로 된 패딩을 입은 모습의 부처님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금박의 무게가 10t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정말 엄청난 불심이 느껴졌다.

 

마하간다용 짜웅은 오전 10시 즈음이면 점심 공양인 탁발을 볼 수 있는 파고다이다. 승려들의 탁발을 보기 위해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든다. 하지만 마하간다용은 수많은 인파 속에서 승려들이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 같았다. 몇몇 관광객들은 식당 안으로 진입해 밥을 먹고 있는 승려들을 촬영하기까지 했다. 탁발은 조금만 부지런하다면 미얀마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이른 아침이면 골목골목 공양을 위해 발우를 들고 줄지어 걷는 승려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마하간다용 짜웅의 탁발은 그 규모가 거대할 뿐이다.

 

탁발 행렬로 살짝 불편해진 마음은 ‘앞으로 이런 곳은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 이곳이 누군가에겐 신성한 장소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불교신자가 아니기에 옛 파고다의 아름다움만 찾아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나의 마음가짐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버려진 옛 수도 잉와의 신미 파고다에서 만난 어느 불교신자를 보며 그 마음은 더욱 강해졌다. 미얀마에서 파고다를 다니다 보면, 콘크리트로 급하게 복원해놓은 듯한 불상과 건축물 쉽게 볼 수 있다.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을 보고 느꼈던 그런 감정이다. ‘조금 더 성의 있게 복원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과 함께 파고다를 둘러보고 있을 때, 어떤 불교신자가 콘크리트 불상 앞에서 정성을 다해 경건한 모습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순간, 겉모습이 아닌 그것을 대하는 마음이 중요함을 다시금 깨달으며, 혹시 그들에게 나는 무례한 관광객으로 보이진 않을지, 행동을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만달레이 여행에선 우베인 다리를 빼놓을 수 없다. 우베인 다리는 여행자들에게 일몰 포인트로 유명한 곳이다. 호수에 비친 다리 반영 뒤로 넘어가는 해는 환상적인 경관을 선사한다. 1851년에 완성된 후 15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타웅타만 호수를 건너는 교통로 역할을 하는 우베인 다리는 수도를 잉와에서 마하간다용 짜웅이 있는 아마라푸로로 이전하면서 해체한 잉와궁전 목재를 사용해 만들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가 호수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을 버텼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물속에서 잘 썩지 않는 내수성 뛰어난 티크나무를 사용한 덕분이라고 한다.

 

 

#4 바간, 미얀마 여행의 하이라이트

만달레이에서 바간으로 가는 길은 배편을 선택했다. 우리의 한강과 같은 이라와디강을 따라 온종일 남쪽으로 향하면 ‘미얀마 여행의 하이라이트’ 바간에 도착한다. 바간을 먼저 보고 다른 곳에 들르면 미얀마 여행이 시시해진다고 할 정도로 도시 전체에 아름다운 파고다가 집적되어 있다.

 

바간에 온 여행자들은 아름다운 일출·일몰 포인트를 찾기 위해 바쁘다. 파고다가 워낙 많아서 어디서 해를 봐야 아름다운 경관이 나올지 수많은 여행기를 봐도 감이 잡히질 않는다. 바간에서는 많은 여행자가 전기 오토바이를 빌려서 이동한다. 전기 오토바이를 하루 빌리면 바간 전체를 충분히 돌아다니고도 배터리가 남는다. 파고다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오토바이가 많이 세워져 있는 파고다를 발견하면 그곳은 어느 정도 훌륭한 일출과 일몰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파고다일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찾은 파고다 몇 곳을 소개한다.

 

바간 파고다군 외곽에 위치한 칫사와디(Thitsarwadi) 파고다는 수풀 사이로 솟아오른 파고다 너머로 지는 해를 감상하기에 최고의 장소이다. 외곽에 있어 관광객들로 붐비지 않아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페뎃지(Pyathetgyi) 파고다는 일출 포인트로 추천한다. 머리 위로 떠다니는 수많은 열기구를 보며 환상적인 경관을 경험할 수 있다. 파고다 정상부에는 넓은 평지가 있어 다른 파고다들보다 안전하게 일출을 즐길 수 있다. 쉐산도(Shwesandaw) 파고다는 바간을 대표하는 파고다이다. 유명세만큼이나 많은 인파로 붐비며, 경사가 가팔라서 다소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가 분명 있다.

 

#5 응아팔리, 이제는 함께 하는 여행이기에

응아팔리는 미얀마의 나폴리로 불린다. 영국 식민지배 시절 유럽인들에게 휴양지로 인기가 많았던 곳이다. 결혼 후 첫 해외여행이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기에 ‘아내를 위한 휴양지’도 코스에 필요했다. 응아팔리에서는 밥 먹고 수영하고, 밥 먹고 낮잠 자고를 계속 반복했다. 응아팔리 해변에는 간이 칵테일바가 여럿 있었다. 가격은 저렴했지만, 맛은 절대 저렴하지 않았다. 매 끼니 칵테일을 마신 것 같다. 모든 음식 메뉴에는 해산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저렴하고 싱싱한 해산물로 배를 채우고 칵테일로 기분까지 내니 이런 휴양도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6 양곤, 다시 소유하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양곤으로 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양곤 국제공항에서 입국하던 날 작성했던 분실물 신고 서류를 보여주니, 10분도 되지 않아 배낭이 나타났다. 허탈한 마음을 애써 접으며, 처음으로 한국에서 준비해온 옷을 입고 말끔한 모습으로 미얀마를 대표하는 쉐다곤(shwedagon) 파고다에 들렀다. 귀국 비행기에 오르기 전, 미얀마에서의 마지막 밤에 방문한 쉐다곤 파고다는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커다란 파고다였다. 그곳에서 기도를 드리는 수많은 신자를 보며 다시 한 번 무소유를 생각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욕심내는 많은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되찾은 배낭 속에서 꺼낸 한국 라면을 끓여 먹으며 만약에 여권·지갑·카메라마저 분실했다면 어떤 여행길을 보냈을지 상상을 해보았다. 그리고 환상적인 라면 맛에 ‘역시 무소유보다는 적당히 소유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나름의 깨달음을 얻고 미얀마를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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