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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극일 원한다면 현실 가르쳐야

“우리는 지지 않습니다”, “독립운동은 못했어도 불매운동은 하겠습니다” 등의 구호들이 여전히 요즘 범람하고 있다. 일본의 통상보복 조치 이후로 급격히 확산되는 반일 운동이 단순 일본 비판을 넘어 2019년판 독립운동의 느낌으로 번져가고 있다.

 

자발적 차원의 불매운동, 반일운동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자유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의 자유로운 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 갈등이 무역 갈등으로 확전되고, 그것이 민족주의적 자존심 대결로까지 치닫는 이 과정에서 사실을 사실 그대로 가르치지 않는 우리 역사 교육이 낳은 폐해가 감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민족적 자부심을 지나치게 주입한 결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낭만에 젖은 채 국제 사회를 바라보게 되는 우(愚)를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배는 분명 반인륜적이고도 범죄적인 주권 강탈의 역사이자, 반드시 일본 정권이 반성하고 참회해야 할 부끄러운 과거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우리가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결과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리 독립투사들의 항쟁이 주권독립국가 건설에 있어 정당성을 제공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것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해방은 ‘주어진’ 것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 역사 교육은 해방의 본질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를 극복했던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경향이 다분하다. 냉혹한 국제질서의 힘의 논리 앞에 무력했던 조선의 운명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해서도 마치 매우 굴욕적인 일방적 양보로만 점철된 협정이었던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실제 한일청구권 협정을 통해 우리가 이뤄낸 경제 발전과 기술 확보의 쾌거는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점이 한일청구권 협정 준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우려 역시 쉽게 비켜나가기 어렵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의 정당성을 논의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한일청구권 협정의 효력 역시 균형 있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교육은 그러한 균형성을 제대로 허용하지 못하고 있다.

 

패배주의적 역사관도 위험하지만, 낭만적인 역사관으로 사실마저 왜곡해 기억하는 것은 더 위험할 수 있다. 천명도 채 안되는 광복군이 수백만 일본 제국주의 군대 앞에서 어느 정도의 항력을 가졌을지 객관적으로 사유한다면, 독립운동의 그 처절하고도 비참했던 실상을 불매운동의 구호로 가볍게 끌어다 쓸 수 있었을까. 낭만과 환상 속에 머무르는 역사 교육은 자칫 우리 역사에 대한 가벼운 접근을 낳을 수 있다.

 

‘극일’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민족적 자긍심으로 가능한 것 역시 아니다. 극일은 극일을 위한 조건이 모두 성립돼야 비로소 현실이 된다. 그 조건은 일본보다 우리가 강해지는 것이다. 일본보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당장의 일본발 타격을 최소화하고, 시간을 벌어서 우리가 산업적으로 독립을 이뤄야 한다.

 

지금 나오는 반일 투쟁의 목소리들 속에 이런 ‘진짜 극일’이 설 자리는 없다. 잘못된 역사교육이 만든 허약한 의식의 토대 위에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는 가짜 극일의 불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