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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없을 때 잘해!

01

모임이 있었습니다. 몇몇 가정이 모인 자리입니다. 아버지의 절친들로 이루어진 모임입니다. 아내들과 아이들도 함께 자리한 모임입니다. 웃으며 담소하고 덕담들을 서로 챙깁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음식을 함께 하며, 공동 관심거리를 대화로 나누고, 서로의 살아가는 형편들을 이야기합니다. 형편에 따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번지는 쪽도 있지만, 남의 자랑에 공연히 위축되는 쪽도 물론 있습니다.

 

모임에 데리고 온 자녀들은 저희끼리 친구가 되어서 잘 어울립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부모들은 자녀들 이야기를 합니다. 자녀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서로의 공통 관심사입니다. 걱정인 듯 자랑이 섞이고, 자랑에 숨어 있는 걱정들이 불쑥불쑥 얼굴을 내밉니다.

 

교양과 체면이 격조 있게 살아 있습니다. 모임의 분위기는 친목과 화평입니다. 그 누구를 민망하게 하는 말들은 발붙일 데가 없습니다. 모임이 무르익고 친교의 분위기를 북돋우는 말들도 나옵니다. 얼마나 좋은지요.

 

모임이 끝났습니다. 서로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은 오늘 알게 된, 다른 집 아이들에 대한 친근감이 너무 자연스럽습니다. 우호적 감정이 생겨서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날이 자주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친밀과 화목이 주는 따뜻함을 가슴으로 느낍니다. 뒷날 그것이 덕성의 일종임을 깨닫겠지요. 그 덕성의 매력을 오늘 몸으로 배우는 것입니다. 좋은 모임이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제 ‘그들’은 없습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있었던 ‘그들’은 없습니다. ‘그들’은 없고, 이제 우리만 있습니다. 우리끼리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끼리만 있으니까 갑자기 편안해지는 느낌입니다. 긴장감 같은 데서 벗어난 듯합니다. 교양과 예절로 무장했던 데서 해방이 되는 느낌입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오늘 모임에서 불편했던 일 하나를 불쑥 이야기합니다. 오늘 왔던 사람 중 A 씨의 부인이 은근히 잘난 척을 해서 그걸 참느라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아빠는 그 사람보다도 B 씨의 부인이 문제였다고 지적합니다. 사는 형편이 다들 비슷한데 자기네만 유독 더 힘들다는 듯 너무 엄살을 피우는 것 같아서 솔직히 밉상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제 그들이 없는 우리끼리만 있으니까 뭐 달리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엄마는 아빠 친구들의 옷차림 평가를 합니다. 점수가 후하지 않습니다. 아무개는 감각이 촌스럽다는 평도 하고, 아무개는 비싼 옷을 입어도 태가 나지 않는다고 지적도 합니다. 그러다 불똥이 아빠에게로 튑니다.

 

“당신도 패션 감각이 없기는 마찬가지야. 그러니 끼리끼리 모이지.”

 

없는 사람들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다 보니,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쾌감의 근원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악령입니다. 그런데 무언가 싸한 느낌이 듭니다. 그 싸한 분위기와 함께 뒷자리의 어린 딸 아이가 엄마에게 묻습니다.

 

“엄마, 그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야? 난 오늘 만난 언니 너무 좋던데.”

 

엄마와 아빠는 아차! 하고서 놀라지만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아침마다 아이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며, 곱디고운 가르침으로 아이를 바르게 기르는데, 오늘 모임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아이에게 무얼 가르쳤나 하는 당혹감이 밀려옵니다. 엄마의 이중적인 모습이 아이에게 어떻게 자리 잡을지, 아이가 어떤 혼돈을 겪을지, 얼른 분간이 서지 않습니다.

 

02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다른 집들은 돌아가는 차 안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하는 것입니다. 그들도 아마 대동소이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가 아까 ‘끼리끼리 모인다’고 했던 말도 다시 생각납니다.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다 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인권이라도 되는 양 여기는 세태입니다. 남의 인권 무시하는 것이 첨단 인권처럼 여겨지는 세상입니다. 하기야 없을 때는 임금님 욕도 한다는데, 그깟 친구들 험담 좀 했기로서니 그게 무슨 대죄라도 되는 거냐고, 있는 데서 한 것도 아니고 없는 데서 한 걸 가지고 뭘 그래! 엄마는 신속하게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그리고는 엄마에 대해서 혼돈이 생긴 딸 아이를 홀깃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좋은 모임을 아주 멋있게 가졌으면, 그걸 그대로 끝까지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덕의 완성’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돌아오는 자리에서 우리는 자칫하면 좋은 모임을 망가트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오늘 모임에 숨어 있던 온갖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나쁜 장면들이 어쩌면 내 눈에는 그리도 잘 보이는지. 그걸 말하고 싶습니다. 이른바 ‘뒷담화’의 향연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이 모임은 실패한 모임입니다. 망가진 모임입니다. 친근과 신뢰가 그윽한 경지에 가 있는, 그런 모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좋은 모임은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물론이고, ‘그들’이 없을 때도 친근과 신뢰가 이어지는 모임입니다. 그런 모임이 현실에서 실제로 있기가 쉽지 않겠지요. 인정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려는 노력이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무심결에 험담을 내놓았다가도 이내 각성하여 반드시 덕담으로 마무리해 주는 정도의 노력이면 충분합니다.

 

어쨌든 오늘 엄마와 아빠는 엄청나게 큰 것을 잃었습니다. 먼저, 어린 딸에게 신뢰를 잃었습니다. 없을 때는 비방하고 험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도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몸으로 배운 것의 교육 효과는 오래 갑니다. 엄마 아빠가 깨닫지 못하는 더 큰 상실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사람됨(인격)을 아름답게 고양할 수 있었는데, 그걸 그만 놓쳐버린 것입니다.

 

아까 엄마가 한 말이 자꾸 상기됩니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했던가요. 그래요 다른 집이라고 우리와 뭐 다르겠습니까. 그들도 차 안에서 우리 부부를 험담하겠지요. 아차, 여기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 험담의 고약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있을 때 아무리 친하면 무엇합니까. 없을 때 이렇게 질투와 시기의 ‘뒷담화’가 만발하는데 말입니다.

 

예언컨대 이 모임은 오래가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이 모임은 큰 복 받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이 모임은 더 친해지면 사소한 것 가지고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있을 때만 잘하는 척하는 관계로는 친해지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없을 때 잘해야 진짜 잘하는 것입니다. 아니 없을 때 잘해야 복이 오는 것입니다.

 

03

칭찬에도 세 등급이 있다고 합니다. 3등급의 칭찬부터 소개합니다. 여럿이 있는 데서, 막연히 칭찬하는 경우랍니다. 물론 칭찬받는 당사자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막연히 칭찬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칭찬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립 서비스(lip service)일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에게 둘만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전략적 목적으로 칭찬을 이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등급 칭찬은 아무도 없는 데서, 당사자만 있는 데서, 그를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입니다. 신뢰와 친밀의 정도를 서로 확인하게 하지요. 조직 내에서 이런 칭찬이 많아지면 ‘편애’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향하는 칭찬 방식이 이러하다면 그것은 아부에 해당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끝으로 1등급 칭찬입니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 그를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입니다. 아무개가 나를 칭찬했다는 말을 제3 자에게서 듣는 기분, 그거 참 괜찮습니다. 나를 칭찬해 준 분이 윗사람일 때는 존경이 더해지고, 칭찬해 준 분이 아랫사람이면 그분의 신실함을 더욱 인정하게 됩니다. 아부처럼 여겨지지 않습니다. 유익한 바가 또 있습니다. 나 없는 자리에서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었던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조용하지만 강력한 미더움이 생기더랍니다.

 

널리 알려진 대중가요에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이렇게 나오는 노래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유효한 것이 없을 때 잘하는 것입니다. 없을 때 잘하면 정말 잘하는 것입니다. 그에게도 잘하는 것이지만, 나에게도 잘하는 것입니다. 관계의 지혜를 발휘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드높이게 됩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일이겠지요. 없을 때 잘한다는 것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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