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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바람의 풍경, 제주의 속살

강마을의 하늘이 희뿌옇습니다. 미세먼지가 안개처럼 앞산의 모습과 강가의 은사시나무를 감추었습니다. 좀 과장하면 도화지에 연필로 점을 찍은 것 같고 흑백 인화지에 뽑은 풍경을 연상시킨다고 할까요. 올해 수학여행지로 많은 학생들이 제주를 원하여 계획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몇 년 전 벗들과 다녀온 제주의 기억을 소환하였습니다.

 

용이 누운 듯 길쭉하게 난 길을 따라 걸었던 용눈이오름과 억새가 숲을 이루었던 아끈다랑쉬오름, 웅장한 분화구의 모양을 볼 수 있었던 아부오름이 손에 잡힐 듯 떠오릅니다. 제주에 글을 쓰는 벗이 그네들이 자주 가는 작은 식당과 재래시장 횟집으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제주의 밤을 아름다웠고 우리들은 시와 오름과 제주의 바람에 취하였고 산모롱이 언덕 아래 수줍게 핀 수선화에 매료당하였습니다. 한라산이 눈으로 입산통제해 뽀도록 소리가 나도록 눈길을 걷고 거친 눈싸움을 하였습니다.

 

달이 뜬 날 다랑쉬오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압권이라는 벗의 말을 들으며 보름달이 뜨면 다시 오르리라 마음속으로 맹세하였지만 아직도 저는 월랑봉의 달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다랑쉬오름 근처에 잠시 차를 세운 벗은 제주의 깊은 상처를 들려주었습니다. 제주 4.3사건 중 군경토벌대에 의해 마을이 초토화되었다고 합니다. 그 참혹한 학살은 44년 지난 1992년에 시신 11구가 그대로 남아있는 다랑쉬굴이 발견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고 설명하는 벗의 목소리는 잦아들었습니다. 마을 자취만 남은 늙은 팽나무 앞에서 묵념을 하였습니다.

제주 여행 전 한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문학평론가이자 여행가인 허상문 교수의 책입니다. 제주대학에 교환교수로 지내는 동안 제주에 반해버린 저자가 제주의 구석구석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자의 진지한 사색이 제주의 바람과 속살을 만나 더 풍성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는 관광 제주보다는 연인과 눈을 맞추듯 제주를 바라보고 벗들과 손을 잡고 걷고 싶어지는 풍경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제주가 가진 사연과 본연의 풍광을 따라가고 싶어 하는 여행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랑쉬오름의 지명 ‘다랑쉬’는 고구려어인 ‘달수리(달-높다, 수리-봉峰)에서 변화된 것으로 높은 봉우리라는 뜻이며, 또 다른 의미로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하여 다랑쉬라고도 한다. 한자식 표현으로는 ’월랑봉 月郞峰‘이라고 표현한다. 송당리 주민들은 “저 둥그런 굼부리에서 쟁반같은 보름달이 솟아오른 달맞이는 송당리에서가 아니면 맛볼 수 없다”고 자랑한다. 높이는 384.4m 밖에 되지 않지만 분화구의 깊이는 115m에 이르며, 분화구를 따라서 도는 길은 1500m정도이다. 멀리서 보면 다소곳한 여인의 치마폭처럼 근사한 자태를 뽐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흐트러짐 없는 균형미는 다른 오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며, 분화구를 두고 떠오르는 달을 맞이하는 것이 다랑쉬오름에서 보는 최고의 절경 중 하나이다. 그래서 ’제주오름 여왕‘이라 칭한다. /pp. 220~221

 

오후가 되어도 미세먼지로 인한 흐릿한 풍경은 그대로입니다. 제주의 바람과 그 바람에 날리던 억새의 흐트러진 머릿결과 후두둑 지던 붉은 동백숲들이 쨍한 추위와 함께 그립습니다. 벗들의 웃음소리가 깃발이 되어 펄럭이던 그 날을 생각합니다. 보이차 한 잔을 마셔야겠습니다. 미세먼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마스크 착용하고 외출하십시오.^^

 

『바람의 풍경, 제주의 속살』, 허상문 지음, 열린 시선,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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