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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⑬ 아이들이 가르쳐준 놀이의 재미

아이들과 뒤섞여 같이 지내다보면,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처럼 갑자기 어려져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기분이 된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뒤 빈 교실에서 네버랜드의 시간이 끝나고 다시 일하는 어른의 몸으로 돌아온다. 분명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고 공부한 건데 어느새 나는 마치 못다 한 숙제를 뒤늦게 하려는 초등학생이나 다름없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수업보다 학교 가면 뭐하고 놀지, 무슨 장난을 치지 생각할 때가 더 많다. 이런 것들을 가르쳐줘야지, 수업 혁신을 해야지, 아이들을 때 묻은 세상으로부터 구할 교육 개혁을 해야지 이런 생각들을 가득 싸안고 살았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는 칠판에 그림이나 그리며 교과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선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는 남들과 잘 어울려 노는 아이는 아니었다. 혼자서 책을 읽거나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고, 대인관계에 부담을 많이 느끼는 부끄럼쟁이였다. 무언가를 탐구하거나 어려운 책을 읽고 뽐내는 것을 좋아했지만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를 하거나 두루 친해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것도 대인적인 경험에 가치를 느끼기보다 평생 공부하며 학생들과 나눌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인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과 놀기 시작하면서 놀이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는 민속놀이 혁신학교다. 놀이교육을 통해서 미래 사회에 필요한 역량을 기르는 것이 교육 철학인 학교다. 경쟁적으로 사교육을 하는 지역이 아니라 아이들의 학력이 정량화된 수치로 높이 나타나는 곳은 아니다. 그보다는 너무 경쟁적인 환경에서 지쳤거나 대규모 학급생활에서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포근한 자연과 선생님의 깊은 애정, 같이 놀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를 주는 학교다.
 

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하며 노는지, 어떻게 노는지부터 배워야했다. 같이 놀려면 친구를 자세히 보고 관찰해야 한다. 친구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잘 알아야 한다. 나는 거의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깊이 보고 공감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나보다 민속놀이 규칙에 대해서도, 초등학생답게 노는 방법도 더 잘 알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과 어떻게 어울리고 놀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 역할은 여기에 교육적 가치를 집어넣는 것일 뿐이었다.
 

작은 학교라 나 빼고 모두 업무가 많지만, 업무가 하기 싫어 뛰쳐나올 때면 아이들 틈으로 들어간다. 밤나무 숲으로 들어가 밤을 줍기도 하고, 운동장을 뛰기도 하고, 칠판에서 놀리는 낙서를 하거나 끝말잇기 같은 것을 하기도 한다. 요즘은 그림판으로 그림을 그려 바탕화면에 저장한 다음 아이들을 웃기는 데 재미를 들였다.
 

노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었나. 아이들이 아이다움을 잃고 핸드폰에 갇혀 눈앞의 친구들과 어울릴 줄 모르고 성숙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라지 못하여 이기적인 응석쟁이로 퇴행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어른들은 그러한 아이들과 얼마나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가. 어른들이 만약 다음 세대를 형성할 아이들에게 바라고, 시간이 지나도 결코 사라져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내가 마산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배운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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