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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스캔들이 된 사랑, 에두아르 마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영화 대사처럼, 한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 하는 사람도 있다. 모더니즘의 창시자이며 인상주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는 ‘사랑의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화가이다.


마네의 작품세계가 열린 것과 동시에 등장한 여인이 빅토린 뫼랑(Victorine Meurent)이다. 마네가 처음 직업 모델인 빅토린을 만난 것은 초상화가인 토마 쿠튀르(Thomas Couture)의 아틀리에였다. 토마 쿠튀르의 문하생으로 그림을 배우고 있던 마네는 빅토린을 보자마자 매료되었고,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포즈를 취하게 했다. 빅토린은 직업 모델로 활동하면서 그림을 배워 미술에 대한 안목이 높았으며, 관습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마네의 애인이 되면서 안주인 역할과 동시에 마네의 그림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마네는 그녀의 비평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빅토린은 최상의 애인이자 모델 그리고 비평가였던 것이다. 마네는 빅토린을 사랑해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비롯해 1862년부터 1874년까지 많은 작품을 남긴다.

 

인상파 출현을 예고한 작품, <풀밭 위의 점심 식사>
마네가 빅토린을 모델로 한 작품 중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이 <풀밭 위의 점심 식사>이다. 이 작품은 ‘낙선작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것으로 마네가 살롱전에서 화가로 성공을 꿈꾸었던 의도와는 상관없이 스캔들이 일어났다.

 

1853년 살롱전 심사위원들은 5,000여 점의 출품작 가운데 3분의 2정도의 작품을 낙선시켰다. 낙선작 대부분은 젊은 화가들의 작품이었다. 낙선한 젊은 화가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고, 심사위원회에 항의가 빗발쳤다. 언론에까지 보도가 되자, 살롱전은 사회 이슈가 되었다. 이 사태를 수습하고자 나폴레옹 3세는 700여 점의 낙선작들만 모아 전시를 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낙선작 전시회’다. 대중들은 이 전시회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본 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낙선작 전시를 명령했던 나폴레옹 3세도 점잖지 못한 작품으로 평했다. 이 작품은 낙선작 전시회는 물론 살롱전에 입상한 다른 어떤 작품보다 유명해졌다.

 


마네가 처음 <목욕>이라고 제목을 붙였던 이 작품은 빛의 효과에 대해 연구했던 인상파의 출현을 예고한다. 티치아노의 <전원의 음악회>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티치아노의 작품과 다르게 파리 근교의 숲에서 당시 유행하던 최고급 양복을 입은 남자들 사이에서 나체의 여성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표정으로 한쪽 다리를 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당시 여성의 누드는 신화나 역사 속의 인물로 표현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전통적인 누드화에서 볼 수 있는 상징물 없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뿐이다. 비평가는 물론 대중들에게 비난을 받았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유행하는 옷차림을 한 부르주아 남자들이 벌거벗은 여인과 대낮에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비도덕적인 현실 세계를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외설 시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작품에서 남자들은 마네의 두 형제이며, 화면 정면에 앉아 있는 벌거벗은 여인이 빅토린이다. 빅토린은 관람객을 향해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게 앉아있고, 화면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들과 뒤로 보이는 여자의 시선은 관람객들을 외면하고 있다. 풀밭 위에는 여자의 옷가지가 흩어져 있는데 이 배경은 선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푸른 소파에 앉아 있는 마네 부인>
마네가 빅토린에게 빠져든 것은 아내 쉬잔느와는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마네는 동생과 함께 피아노를 배우면서 쉬잔느와 만나게 된다. 마네의 아버지는 인색했지만 피아노 레슨만큼은 풍족하게 해주었다. 마네는 쉬잔느에게 피아노를 열심히 배우면서 파리에서 홀로 살고 있는 그녀를 유혹해 동거에 들어간다. 모델료를 지급할 수 없었던 마네는 동거 중인 쉬잔느를 모델로 작품을 제작한다.
 


마네는 쉬잔느가 아들을 낳았지만, 경제력을 아버지에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다. 마네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1년 후, 아들이 태어난 지 10년 만에 애정보다는 아들을 낳은 쉬잔느와 의무감으로 결혼을 한다. 쉬잔느는 마네의 끊임없는 바람기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쉬잔느를 모델로 한 작품이 <푸른 소파에 앉아 있는 마네 부인>이다. 흰색 드레스를 입은 쉬잔느가 푸른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마네는 쉬잔느가 소파에 누워 있는 모습과 몸통과 팔, 손의 모양까지 <올랭피아>에서 따왔다. 빅토린과 정반대의 몸매를 가진 쉬잔느에게 관심이 없었던 마네는 그녀를 뭉뚱그려 표현하는 데 전념했다. 파스텔을 생동감 있게 사용함으로써 인상주의 느낌이 더 두드러진 이 작품은 유화에서는 볼 수 없는 화사함이 특징이다.

 


빅토린을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 <기찻길>
빅토린을 마지막으로 그린 작품이 <기찻길>다. 마네와 빅토린의 관계는 새로운 여자의 등장으로 깨진다. 마네와 헤어진 후 빅토린은 미국으로 건너가지만, 미국에서 1870년 초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프랑스로 돌아온 빅토린을 위해 마네는 <기찻길>을 제작한다. 빅토린은 무릎에 책을 펼쳐 놓고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고, 그 옆에 소녀는 증기기관차를 바라보고 있다. 생자르역을 배경을 한 이 작품에서 마네는 새로운 시대와 구시대를 인물로 나눴다. 느긋하게 책을 펼쳐 놓고 있는 여인은 구시대를, 소녀가 바라보고 있는 증기기관차는 기술을 상징하는 진보 세계를 나타낸다. 에두아르 마네는 한 여자만 사랑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사랑은 항상 스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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