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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강마을에서 책읽기 -자신의 문을 열고 나간 아버지

박범신의 '소금'

“후두둑 후두둑 후두두두” 비는 섰다가 다시 내리고 쏟아졌다 멈추기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올해 여름장마 없이 지나가 탓일까요? 가을 초입에 비가 잦습니다. 처서에도 비가 내렸습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어른들은 ‘천 석을 감한다.’라고 하셨습니다. 한창 벼가 여물고 과일에 단맛이 깃드는 시기에 날씨가 고르지 못합니다. 빗소리를 들으며 글을 써 보려했지만 실마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옛 수첩에 적어놓은 글을 읽었습니다. “신은 언제나 공평하다고 했다. 한 쪽 문을 닫을 때는 반드시 다른 쪽의 문을 열어 주신다고 한다. 다만 우리들이 닫힌 문만을 바라보기에 다른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모를 뿐이라고.” 어디선지 베껴 쓴 글이었습니다. 참 좋은 말입니다. 오랫동안 자신 속에 닫아두었던 문을 열고 나간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작가는 소설 『소금』을 통해 유랑인이 된 아버지들을 통해 인생이 짠맛, 신맛, 단맛, 쓴 맛, 매운 맛을 모두 지닌 소금과 같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선명우는 아버지가 염전에서 번 돈으로 성장하지만 아내와 딸의 지키는 충직한 몸종이요 청지기 같은 존재로 살아가던 선명우는 암선고를 받고 가장 사랑하는 막내딸 시우의 스무 번째 생일날 가출합니다. 그리고 시우는 그를 찾아 헤매다 강경의 그의 모교의 배롱나무 붉은 꽃그늘에서 시인과 만납니다. 소금짐을 진 아버지들, 그 소금짐의 굴레 속에서 우리 아버지들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소금땀을 흘리며 살아가도, 자식에게는 작업복이 아닌 양복을 입은 직장에서 멋지게 사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자신 속에 있는 문을 꼭꼭 닫아 두고 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소비를 위한 과실을 야수적인 노동력으로 따 온 ‘아버지’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부랑하고 있는가 묻고 싶었다. 소비의 ‘단맛’을 허겁지겁 쫓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늙어가는 아버지들의 돌아누운 굽은 등을 한번이라도 웅숭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슬픈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돌아가신 제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저 역시 주인공처럼 아버지에게 빚을 가지고 있으며 그 분의 등에 빨대를 꽂았던 사람입니다. 대학등록금은 비쌌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등골이 빠지도록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밤잠을 자지 않고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래서 자식 셋 모두 대학공부를 시키고 큰소리 쳤습니다. 선명우의 아버지처럼 핏발 선 눈으로 살의를 느끼며 아들을 내모는 것은 아니었고 자신의 손으로 공부시켰으니 당당하고 또 당당하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조실부모하여 무일푼으로 시작하여 내 노력으로 집사고 너희 공부시키고 다 했다. 그래서 나는 당당히 너희에게 요구할 수 있다. 너희의 대학등록금은 내 땀이고 내 잠이다.” 이렇게 당당하신 아버지는 자식의 공부를 모두 시키시고 자신을 위한 새로운 문을 여시지 못하였습니다.

 

다시 비가 내립니다. 비는 집 앞 배롱나무 붉은 꽃송이를 적시고 그 아래 핀 분홍상사화 줄기를 휘게 합니다. 올 가을엔 자신을 들여다보며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비와 함께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소금』, 박범신 지음, 한겨레출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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