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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포인트] 공론 없는 교육정책 공론화

앳된 얼굴의 중학생,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대학에서 온 입학사정관…. 전국 각지에서 모인 100여 명의 시민정책참여단 얼굴에는 기대와 혼란이 교차했다.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 자리에 선택되었다는 기쁨과 동시에 중요한 정책 결정에 관여한다는 부담이 함께하고 있었다. 경기도 모처에서 지난 6월 23일, 1박 2일 일정으로 ‘학생부 개 선을 위한 정책숙려제 1차 숙의’가 진행됐다. 처음 시행되는 제도인 만큼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최근 교육정책 공론화 과정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를 두고서는 긍정적 해석과 부정적 비판이 교차하고 있다. 첨예하게 대립될 수 있는 교육정책 문제를 일방적 결정이 아닌 사회 공론화 과정을 통해 결정해 간다는 긍정적 해석과 책임 회피를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는 부정적 비판이다. 이 글에서는 국민참여 정책숙 려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본다.

 

국민참여 정책숙려제의 개념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는 ‘정부정책의 성공적 추진과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하여 정책 추진에 따른 사회적 갈등을 예견, 예방하여 국민의 정책 수용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로 정의된다. 국민참여 정책숙려제 대상은 통상 국민의 관심이 높거나, 정책 발표 후 심각한 갈등이 예상되는 정책으로 다음의 4단계로 진행된다.
 

1) 안건 선정: 교육부 자체 발굴, 국민의견 동향 발굴(청와대 국민청원, 대국민 온라인 소통 인터넷 사이트 ‘ 온-교육 ’ 활용)

2) 소통계획 수립: 정책 관련 주요 쟁점 안내, 주요 적용 기법 및 향후 운영 계획 안내

3) 국민의견 수렴: 국민의견 분석(여론조사, 공론조사), 권고안 도출(시민정책참여단)

4) 최종 정책 결정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개선 방안···국민참여 정책숙려제 1호 적용

교육부는 2018년 3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개선방안’을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로 풀어가겠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기본운영계획을 수립했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학교생활기록부는 상급학교 진학과 법적 근거 기반의 행정문서다. 따라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의 신뢰도를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과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업무를 경감시켜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왔다. 앞서 2011년, 2013년, 2016년 세 차례에 걸쳐 개선 방안이 발표된 바 있으며, 이번 단계에까지 이르게 됐다.

 

교육부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시민정책참여단을 운영해 신뢰할 수 있는 권고안 을 도출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학교생활기록부의 직·간접 주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 대학, 일반국민 100명을 시민정책참여단으로 구성했다. 시민정책참여단은 온라인 사전학습을 바탕으로 정책에 필요한 내용을 이해하고 두 차례 숙의 과정을 통해 의견을 공유, 교육부에 최종안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교육정책 수립 기대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는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문제를 공론화하여 여러 생각을 모으고 논의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 직접 참여를 제도화하여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교육정책을 수립한다는 교육부의 취지는 분명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우리 교육 현실 속에서 교육 문제는, 다양한 관점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민감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한 공론화 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갈등 조정 과정을 통해 다양한 관점을 이해하고, 합리적 대안을 함께 찾아가며, 교육의 본질적 가치인 우리 아이들의 성장과 행복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기대효과에도 불구하고 실제 실행 과정에 직접 참여해 보니 우려되는 부분이 많이 발견되었다. 공론화 과정이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냉정하게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한다.

 

100명의 정책참여단이 결정권을 갖는다?

다섯 주체 대표가 각 20명씩 모여 사전 학습과 두 차례 숙의 과정을 거쳐 교육부 에 최종 의견을 제출한다. 갈등 발생 우려가 있는 정책을 공론화하여 의견을 교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과연 무작위로 선발된 정책참여단의 결론을 얼마나 큰 비중으로 반영할 것인지는 고민해 봐야 할 부분이다.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도 학교생활기록부를 이해하기 위해서 사전 교육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실제 각 부분이 갖고 있는 의미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문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피상적인 정책 결정이 이루어질 우려가 크다.

 

이해 관계 집단들이 정책 홍보의 장(場)으로 활용해

공론화 과정에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교육 관련 이해 집단이 각각의 파트를 맡아 설명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정책을 주장하기 위한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걱정된다. 모 단체의 경우 단순한 수치로만 대조할 수 없는 해외 사례를 우리의 경우로 들여와 감정적으로 설명했다. 이에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대학 관계자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집단 규모나 법률적 근거를 배제한 채 언론전에만 열을 올리는 상당수 단체가 참석, 일부 사례와 자신들만의 통계로 감정에 호소하는 모습을 보며 본래 의도가 왜곡된 그들만의 정책 결정 자리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는 걱정이 들었다.

 

정책참여단에게 책임 떠넘길 가능성 커

많은 언론에서 교육부가 정책 공론화를 통해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앞으로의 공론화 정책 추진 과정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비교적 갈등 요소가 적었던 학교생활기록부 기록 문제에서도 쉬운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그런데 향후 추진 예정인 입시 방안, 학교폭력 처리, 유치원 영어교육 문제 등은 합의 과정 에서 첨예하게 갈등이 부각될 것이고 책임을 정책참여단에게 전가하는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숙의 과정에서 만난 한 시민정책참여단이 강의를 마친 필자에 게 남긴 말은 이러한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여기 교육부 사람들이 와 있다면, 그동안 잘못됐던 부분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 맞는 게 아닌가요? 왜 그들이 잘못한 일을 우리에게 고민하라고 하는지…. 덤터기를 씌우는 기분이에요.”

 

앞서 살핀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뿐만 아니라 각종 교육정책 관련 기구와 토론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새로 취임한 시·도교육감들도 유행처럼 정책 공론화를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단순히 보여주기식이거나 책임 회피 수 단이 아닌, 정책 공론화가 본래 목적에 맞게 갈등을 조정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더욱 세심하게 계획과 운영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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