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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교육 칼럼] 인터뷰 폭력과 미디어의 역할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하러 오겠다고 하면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한번도 방송 인터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살짝 흥분할 것이다. 아! 내가 방송에 나오다니! 그리고는 인터뷰를 잘 하기 위해서 촘촘히 준비할 것이다. PD 에게 미리 질문사항을 확인해 보기도 하고, 말할 내용을 정리해 놓기도 한다. 말을 더듬거리지 않으려고, 거울 앞에서 연습해 보기도 한다. 방송에 나가는 것이니까 얼굴이나 머리를 다듬고 용모를 단정히 할 것이다.

 

마침내 방송사 사람들이 온다. PD는 인터뷰 내용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정말 내가 잘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것저것 주문한다. 어떤 경우는 말할 내용을 은근히 유도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럴 거라면 당신 혼자 다하지 나한테는 뭐 하려고 왔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프로그램 기획의도라는 것이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엔지니어들은 오디오 상태를 시험하고, 조명을 여러 번 조정한다. 방송 인터뷰를 처음 하는 쪽에서는 이런 분위 기만으로도 슬며시 긴장된다.

 

막상 인터뷰 촬영에 들어가면, 준비했던 말이 술술 나오지 않는다. 말의 앞뒤가 바뀌기도 하고, 막상 중요한 것을 빠트리기도 한다. 잘못된 부분은 PD가 다시 하자고 한다. 어떤 부분은 내 쪽에서 미안하여 다시 하자고 한다. 5분 정도 분량이라 고 했는데 금방 20, 30분을 넘긴다. 그러나 처음치고는 최선을 다한 것 같아서 내심 뿌듯하다.

 

인터뷰가 방송에 나오는 날, 만사를 제치고 텔레비전 앞에 앉는다. 친지들에게 방송에 나온다고 광고해 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프로그램 중간에 그저 5초 정도나 될까. 짧게 스쳐가듯 번 개처럼 지나간다. 인터뷰 때 NG를 제외 하고도 제대로 말한 분량만 족히 10분이 넘는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인터뷰를 하기는 한 건가. 화면으로 보여준 내용도 엉뚱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과는 거리가 멀다. 내 주장의 전제 조건 쯤에 해당하는 것만 잘라내어서 화면에 내어보냈다.

 

일부 방송 인터뷰 과정이 얼마나 방송사 사람들 마음대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겪어 본 사람은 방송 인터뷰의 황당함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인터뷰 당사자 (interviewee)를 자기들 입맛대로 다루면서, 상대에 대한 존중감이 없다. 일반인이 아닌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도 이런 일은 종종 있는 듯하다. 인터뷰는 어떤 절차로 이루어지며, 어떻게 편집하여 최종 방송에서 내보내는지를 왜 사전에 설명해 주지 못하는가. 나쁜 인터뷰임에 틀림없다. 나는 이를 ‘인터뷰 폭력’이라고 부르고 싶다.

 

방송사의 오만함은 또 있다. 그들이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오면, 인터뷰 당사자에게 아무것도 사례하지 않는다. 거금의 출연료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인터뷰 당사자가 자신의 경험, 식견, 지식 을 일차적으로 방송사에 제공하는 것 아닌가. 콘텐츠를 얻어 가면서 그것을 존중해 주는 배려가 없다는 말이다.

 

이 문제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미디어와 일반 시민 사이의 왜곡된 관계가 금방 보인다. 먼저 미디어의 권력 행사가 있다. 방송 출연 또는 방송 인터뷰 참여 등을 요청받았을 때, 사람들은 대 개 감사하게 생각한다. 좀체 오는 기회도 아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라는 동요는 단순히 동심의 기대만을 담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것은 어른들에게도 본능처럼 작동 하는 욕구다. 미디어가 명예로 통하는 통로, 미디어가 세상의 인기로 통하는 통로, 미디어가 권력으로 통하는 통로, 미디어가 부(富)를 찾아가는 통로로 인식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범해 보이 는 일(사람)도 텔레비전에 몇 번 나오면 특별한 일(사람)이 된다.

 

그러니까 미디어는 권력인 셈이다. 신문에 나고 텔레비전에 한 번 얼굴을 등장 시켜 주는 것만으로도 대개 감지덕지(感之德之)하는 것을 미디어에서도 안다. 신문에 나게 해 달라고, 텔레비전에 등장시 켜 달라고 간청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 듯이 미디어는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시도하고, 인터뷰 내용을 폭력적으로 처리해도 출연 당사자에게 별반 미안해하지 않는다. 미디어로서는 일종의 시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출연시 켜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뭐 이런 집단 무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디어에 얼굴과 이름을 내고 싶은 욕구가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그 욕구는 허영과 명예욕의 함정으로 빠지기 쉽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일부 미디어가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러하니 시민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미디어의 유혹에 이끌려서 미디어에 굽신거리고, 미디어의 위력 앞에서 맥을 못 추는 사람들이 많아서 생기는 일이다. 그런 풍조가 공공연해서야 어찌 품격 높은 미디어 문화를 기대할 수 있을 건가. 미디어를 냉정하게 지켜보려는 시민 의식 의 성숙이 필요하다. 교육의 책무가 여기에도 있다.

 

나는 한때 방송사에 근무했다. 그때 여러번 미디어의 인터뷰에 당사자로서 응한 적도 있고, 이슈가 된 어떤 인물을 찾아가서 질문자(interviewer)가 된 경험도 있다. 두 역할 모두 쉽지는 않았다. 그 중에도 어느 역할이 더 어려웠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질문자라고 말하겠다. 좋은 질문자는 내공이 있어야 한다. 단순한 언어 기술을 넘어서는 깊은 통찰력과 두텁고 든든한 배경 지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빈약하면 아무리 좋은 인터뷰 대 상자를 만나도 좋은 콘텐츠를 이끌어 내 지를 못한다. 그렇게 요령 없는 인터뷰를 해 놓고는, 그걸 어설픈 편집으로 수습하는 데서 인터뷰의 왜곡이 생겨나는 것이다.


미디어가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세상은 인터뷰 천지다. 인터뷰 없는 미디어는 존재할 수 없다. 특히 방송 미디어 간 경쟁의 승부는 인터뷰에서 결정된다. 방송 뉴스 프로그램의 경우, 인터뷰 없는 취재는 안이한 취재다. 아니 불량 취재다. 국민들이 만나보고 싶은 사람을 대신 만나서, 알아보고 싶은 내용을 대신 묻는 일이 온통 인터뷰에 위임되어 있다. 이것을 느낀다면 인터뷰 담당 기자의 등 골에는 땀이 흘러내리지 않을 수 없다.

 

기자들의 취재 능력은 곧 인터뷰 능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뷰 대상을 만나는 데까지만 가도 ‘절반의 성공’이다. 내가 간절히 찾는 대상이라면 다른 경쟁 방송사의 기자들도 죽기 살기로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절반의 성공’은 이후 실제 인터뷰 과정에서 얻고자 하는 내용을 제대로 채굴해 내지 못하면, ‘한판의 실패’로 종결된다. 실패한 인터뷰로 만든 화면은 방송사의 실패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의 실패로 돌아간다.

 

인터뷰(interview)는 영어에서 온 말이다. ‘면접’이나 ‘면담’ 등으로 풀이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어, 내포하는 문화적 뉘앙스(nuance)를 온전히 전달 하지 못한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view(견해)와 view(견해) 사이의 inter(서로 주고받음) 작용을 보여 주는것이 인터뷰다. 수평적인 인터뷰도 있고 일방적인 인터뷰도 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그야말로 보여주기 위한 인터뷰를 할 때도 있다. 미디어가 이를 부추길 때도 있다.

 

어쨌든 인터뷰가 만연하는 세상이다. 바른 인터뷰는 자유민주사회를 떠받치는 소통 방식이다. 학생들도 누군가를 만나서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적어서 내는 숙제를 한다. 과목마다 학습활동으로 인터뷰를 하도록 교육과정에 명시돼 있다. 일상생활과 학습에서 인터뷰가 중요한 역량으로 간주된다. 그만큼 현대인의 소통 생태가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특히 미디어로 소통하고 미디어와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에서는 인터뷰를 학습·수용하고, 인터뷰에 참여하고, 인터뷰를 생산하는 역량이 필 요하다. 미디어도 우리 사회가 인터뷰를 바르게 경험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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