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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창가에서] 느림과 여유로움을 배우다

필자는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의 해외 파견교사로 지난해부터 오세아니아 피지의 고등학교에서 현지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개발도상국인 피지의 학교 풍경은 한국과 매우 대비된다. 
 
새 학기 개강 2주 만에 갑자기 재발령으로 떠난 교사가 있는가 하면, 한 달이 넘게 아직 발령이 안 된 빈자리도 있다. 그래서 학기 초 한 달 정도는 지도 교사와 담임까지 수시로 바뀐다. 우리나라 같으면 아주 큰 문제지만 여기서는 임시담임이 있으면 되고 새 교사가 올 때 까지 다른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보강을 맡으면 되는 별 일 아닌 일이다. 

학기 초 우리와 대비되는 풍경
 
그리고 업무용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아 재촉하는 일들에 치이지 않는다. 아침회의 시간을 자주 갖고 다함께 이야기 나누며 하루를 연다. 정리와 전달이 잘 안되고 뭐 하나에도 무척 느리다. 그래도 신기하게 학교는 잘 돌아간다. 당일 일정이 수시로 바뀌어 “이번 수업은 도대체 몇 시에 끝나느냐”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종 치면 끝나는 거죠”라는 답변을 듣고 혼자 웃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은 조회가 있어 모두 강당으로 등교한다. 이 때 학생들은 학년, 반에 관계  없이 그저 오는 순서대로 채워서 강당에 앉는다. 이렇게 전교생이 오는 순서로 섞여 앉아도 이곳에서는 학생 지도와 교육에 별 문제가 없다. 오히려 큰소리 없이 신속하게 정리 되고 지각하는 학생들로 인한 시선 분산과 방해도 없다. 
 
학생들에게는 개인 교과서가 제공되지 않고 학교 도서관에서 매 년 빌려 사용하게 되어있다. 이런 학생들이 너무 안쓰러웠는데, 그들에게는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이고 전혀 불편함이 없다. 노트에 교과서를 베끼다시피 하는 것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익숙한 일이고 다들 이렇게 쓰는 것을 좋아한다. 
 
학생들에게 한국에는 개인 교과서를 매년 종류별로 제공해 주고 마음껏 체크하며 공부한다고 말하자, 책에 어떻게 낙서를 할 수가 있느냐고 한다. 또 책들의 무게는 어떻게 감당하며, 일 년 후에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오히려 걱정과 위로를 받았다. 서로 다른 환경과 그에 맞춰 다양하게 자리 잡은 문화, 각자 본인의 위치가 불편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생각하는 점은 정말 배울 만하다. 

다름과 틀림을 생각하는 계기
 
처음에는 컴퓨터 없는 교무실, 한 개 뿐인 복사기 등 낙후된 환경에서 어쩌면 이렇게도 불편하게 지낼까 여겼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빠른 교내 네트워크 덕분에 일처리가 신속 정확하고 빠르긴 했지만, 정신없이 날아오는 메신저에 각종 업무 재촉이 너무 많아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학기 초 학생들 특성을 파악해야 하고 새로운 업무도 빠르게 대응하며 옆에 계신 선생님과 이야기 나눌 틈도 없이 긴장의 시기인 우리나라와 대비된다. 물론 두 나라의 상황을 직접 비교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이곳의 상황을 접하면서 교육적인 시야와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빠르고 완벽하게 쌓지 않더라도, 듬성듬성 느리지만 올바르게만 쌓아도 다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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