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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대중의 무관심이 너무 아쉬운 '1급기밀'

홍기선⋅박철수⋅곽지균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젊은이들에겐 좀 어려운 문제인 듯하니 직방 정답을 말하는게 좋을 성싶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한국영화사에 나름 큰 족적을 남겼지만, 지금은 고인이 된 영화감독이란 사실이다. 모두 자연사가 아니라는 공통점도 있는데, 2010년 곽지균, 2013년 박철수, 2016년 홍기선 감독이 각각 이승을 떠났다.

특히 1986년 ‘겨울나그네’로 데뷔, ‘젊은 날의 초상’ 등 멜로영화에 일가견을 보여온 곽지균 감독은 56세때 자살로 생을 마감해 충격과 함께 슬픔을 안겨주었다. 필자의 첫 영화평론집 ‘우리영화 좀 봅시다’(1992년, 실록출판사)에 따르면 “『겨울나그네』이후 섬세한 여성 심리를 감성적 영상미로 추구해온 곽지균 감독”이기에 더욱 그랬다.

65세때인 2013년 2월 19일 교통사고로 숨진 박철수 감독의 비보도 충격적이었다.그 못지않게 안타까움을 더한 건 2016년 12월 15일 59세에 심장마비로 우리 곁을 갑자기 떠난 홍기선 감독이다. 영화 촬영을 막 마친 후였다. 졸지에 유작이 된 ‘1급기밀’이 그것이다. 다행히 명필름 대표인 이은 감독이 1년여 후반 작업을 거쳐 지난 1월 24일 개봉할 수 있었다.

‘1급기밀’은 그런 사연말고도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다. 2009년 MBC 시사고발프로 ‘PD수첩-한 해군장교의 양심선언’을 보고 바로 기획했지만, 한국영화 최초의 방산비리라는 소재 때문 투자받기가 쉽지 않았다. 기획부터 극장 상영까지 8년이나 걸린 영화인데, 정작 감독이 떠나고 없는 유작으로 남게 됐으니 얼마나 쓸쓸한가.

홍감독은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다. 우선 보기 드물게 서울대학교 출신의 감독이다. 홍감독은 1986년 농민영화 ‘파랑새’로 구속된 바 있다. 이후 영화사 장산곶매를 설립, 1989년 광주민중항쟁을 최초로 다룬 ‘오! 꿈의 나라’를 제작(이은 감독 등 3인 공동연출)했다. 상영금지 조치 등 당국의 탄압으로 곤욕을 치른 운동권 감독이 바로 홍기선이다.

홍감독의 장편 상업영화 데뷔작은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1992년)다. 한국 최초의 해양영화라는 수식이 붙은 이 영화는 노예선이나 다름없는 일명 멍텅구리 배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현실을 담고 있다. 영화진흥공사 사전지원 작품으로 선정되었다가 그의 전력을 문제삼아 취소되는 등 요즘 말로 하면 블랙리스트에 오른 감독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역할은 우선 현실을 알리고 기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영화를 안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거나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지는 않다”(동아일보, 2018.1.15.)는 감독 소신대로 이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비전향 장기수의 삶을 그린 ‘선택’(2003년), 실제로 장기미제사건의 재수사를 이끌어낸 ‘이태원살인사건’(2009년)도 그 연장선에 있는 영화들이다.

‘1급기밀’은 ‘선택’⋅‘이태원살인사건’과 함께 ‘사회고발 3부작’으로 불리우는 영화다. 적폐청산이 화두가 된 세상이어서 어느 때보다도 관심을 모았지만,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고작 21만 8191명뿐이다. 흥행을 좌우하는 메이저 배급사가 아닌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견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회고발 영화들이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바 있어서다.

앞에서 잠깐 말했듯 ‘1급기밀’은 1997년 군무원의 전투기 납품비리, 2002년 차세대 전투기 선정 외압, 해군 납품비리 폭로 등 용감한 군 내부고발자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줄줄이 사탕으로 엮여 있는 군수 비리의 조직적 은폐나 내부고발자에 대한 핍박 및 피해가 ‘내부자들’ 못지 않다. 박대익 중령(김상경)과 방송사 김기자(김옥빈)가 그 중심에 있다.

딱히 흠잡을 것 없는 사회고발 영화라는 점에서 ‘1급기밀’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이 너무 아쉽게 느껴진다. 장애인 성폭행 문제를 다룬 ‘도가니’라든가 더러운 세상에 대한 통쾌한 응징을 담아낸 ‘베테랑’이나 ‘내부자들’ 못지 않게 공분(公憤)의 울림이 있는 ‘1급기밀’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자칫 후배 감독들이 사회고발에 침묵하지나 않을지 그것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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