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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내내 시큰하고 뭉클한 영화 '1987'

지난 연말대목 빅3 영화중 가장 늦게 개봉(12월 27일)한 ‘1987’(감독 장준환)이 1월 28일 기준 관객 수 702만 5832명을 기록했다. 같은 날 1394만 8199명을 기록한 ‘신과 함께– 죄와 벌’의 절반쯤밖에 안 되는 관객이지만, 총제작비 145억 원에 손익분기점이 410만 명쯤이니 ‘1987’은 그것만으로도 대박영화가 됐다.

‘1987’ 흥행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신과 함께– 죄와 벌’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영화여서다. 6⋅10 민중항쟁의 도화선이 된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라는 이 땅의 아픈 현대사가 그것이다. 이를테면 많은 사람들이 촛불시위에 참여하듯 영화를 관람한 셈이라 할까. 일단 ‘1987’은 세상이 바뀌었음을 진하게 실감케 해주는 영화이다.

먼저 희한한 일부터 살펴보자. 박상기 법무부 장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이철성 경찰청장이 한 극장에 나란히 앉아 ‘1987’을 관람했다. 지난 달 28일 오후 6시의 일이다. 박장관이 김장관에게 동반 관람을 제안했고, 의기투합한 두 장관이 각각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에게 연락해 4인 동반 관람이 이루어졌다.

법과 밀접한 4개 부처 수장의 영화 관람은 종종 있어왔던 대통령이나 여야 지도부의 그런 소식과 달리 아마 사상 처음이지 싶다. 물론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지도부 단체관람 소식도 전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7일 ‘1987’을 관람했다. 국군기무사령부 전체 부대원과 서울대학생 및 동문 200여 명도 단체로 ‘1987’을 관람한 소식이 전해졌다.

심지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력기관 개편안 브리핑에서 ‘1987’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가령 “31년 전 오늘, 22세 청년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당시 검찰⋅경찰⋅안기부(현 국가정보원)는 합심하여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며 영화 내용을 설명했다. 또 “영화 ‘1987’에서 보다시피 경찰의 (과거) 대공수사도 오⋅남용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화 주인공인 박종철 관련 소식도 잇달아 전해지고 있다. 우선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이 민간에 의해 인권기념관으로 운영될 전망이다. 서울시 관악구 유종필 구청장은 신림동에 ‘박종철 기념관’을 건립한다고 밝혔다. 신림동은 서울대생 박종철의 하숙집이 있던 동네다. 현재 ‘박종철 거리’, ‘박종철 공원’, ‘박종철 동판’ 등이 조성되어 있단다.

한편 북미에서의 뜨거운 흥행몰이 소식도 전해졌다. 19일(현지시간) 북미 배급사 CJ E&M에 따르면 지난 12일 미국 뉴욕과 시카고⋅시애틀⋅워싱턴DC, 캐나다 밴쿠버⋅토론토 등 북미 주요 16개 도시에서 개봉한 ‘1987’은 개봉 주말 1일 스크린당 평균 매출 7천 700달러(822만 원)를 기록해 할리우드 흥행작 ‘쥬만지: 새로운 세계’,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를 제쳤다.

‘1987’은 6⋅10 민중항쟁의 도화선이 된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그린 영화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으면 과연 제대로 촬영과 상영이 이루어졌을지 의구심을 안겨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만큼 30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피의 잔혹사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슬프고 가슴 아프다. 내내 시큰하고 뭉클한, 상당히 오랫동안 그런 것들이 떠나지 않는 영화이다.

경찰서 앞으로 행진하며 ‘전두환 물러나라’ 외치던 79학번이었을망정 시골 고교 교사이던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지금이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지 저절로 실감나게 해줘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시위 대학생들을 사정없이 패대기치는 공권력, 독재 타도 외치며 새까많게 운집한 사람 물결 등 지금껏 시큰하고 뭉클하고 울먹하며 본 영화가 있는지….

무엇보다도 감독의 공이 크지 싶다.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죽는 데서 시작하고 끝부분에 물고문 장면 배치 등 튼실한 구성이 밀도감과 함께 몰입도를 높여준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냐”고, “그 날 같은 것은 안와요” 하던 안티 시위대학생 연희(김태리)가 외삼촌 한병용(유해진)의 심부름에 이어 6⋅10 민중항쟁에 동참하는 과정이 갖는 상징성 역시 깊은 울림을 준다.

박처장(김윤석) 같은 외곬수 반공주의자가 엄존하는 현실이 슬프지만, 영화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민주주의의 반동인물로 뭔가 묵직하고 장중한 분위기와 느낌이 그로부터 비롯된다해도 무방하니까. 이한열(강동원)이 주도한 만화동아리가 상영한 5⋅18광주민중항쟁 영상을 복선처럼 활용한 것도 좋아 보인다.

첩보전을 방불케하는 교도관 한병용의 진실 전달 과정도 긴장감과 함께 재미에 한몫했다. ‘TV가이드’라든가 ‘선데이서울’ 등 당시를 재현한 소품들도 눈에 띈다. 특히 ‘TV가이드’는 1983년 내가 평론가로 처음 등단한 매체여서 개인적으로 더 반갑게 다가온다. 그 외 독재 반대편에 섰던 배우 문성근⋅우현의 안기부장과 치안본부장 악역 특별출연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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