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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동화로 돌아보는 교단 50년] 쫓겨난 무덤들 2

과수원 작업 중에서 나온 흙항아리 하나 때문에 박물관을 운영하는 욕심많은 재벌은 온갖 수단을 다해 과수원까지 망쳐 놓는데.....

한편으로 이 기사가 신문에 나가자 여러 곳에서 김교수에게 문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었습니다. 특히 고고학을 연구하는 교수들은 자세한 기록을 알고자 하는 사람, 직접 그 그릇들을 볼 수 없느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 유독 관심을 가진 사람이 바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한솔그룹의 회장이고, 익운박물관의 설립자인 한창달씨였습니다. 그는 곧장 비서실장을 불러서
“이 실장, 이 기사 읽어보았오.지금 이 기사를 읽어보니 그곳에 가야의 유물이 더 있을 것도 같은데, 한번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김교수를 만나서 그 유물을 우리 박물관에 둘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해보시오. 돈은 얼마든지 낸다고 하시오.“
하고, 명령을 했습니다.
“네, 염려 마십시오. 우리 박물관의 고문이신 강교수님과 함께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실장은 곧장 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김교수와 만날 수 있게 주선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이 실장과 함께 자리를 갖자는 것입니다.
“이실장, 나 강교수요. 지금 김교수와 전화 연락을 했는데, 오늘 저녁을 함께 하자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저녁 7시 고려호텔 커피숍으로 나오십시오.”
하고 금방 연락이 왔습니다.
“이 실장 오늘 저녁엔 잘 좀 이야기를 해서 꼭 일을 만들어 보시오.”
하는, 회장의 말씀을 듣고 이 실장은 무거운 책임을 느꼈습니다.
“김교수님 우리 고문님을 통해서 들으셨겠지만, 저는 한솔그룹의 한 회장 밑에서 일하는 비서실장 이충수입니다. 우리 회장님께서 김박사님의 기사를 읽으시고 많은 관심을 기울이시면서 한번 뵙고 인사를 드리라고 하여서 이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네에, 강교수를 통해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한 회장님께서 우리 역사학계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또 익운박물관으로 해서 잊혀져 가는 귀중한 문화재를 잘 보관하고 수집을 해주신다는 점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실장은 이렇게 우리를 잘 이해해 주는 것을 보니까 오늘 일은 쉽게 잘 되겠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비교적 부드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김교수님 사실은 바로 그렇게 우리 한 회장을 잘 이해하여 주시기 때문에 이렇게 뵙자고 한것입니다. 한 회장님께서 그 기사에 나온 그릇들을 직접 보고 싶어 하시면서, 김교수님께서 힘을 써 주신다면 그걸 익운관에 진열 할 수 있도록 하여 달라는 부탁이십니다.”
하고, 쉽게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김교수는
“익운 박물관에 보관하는 것도 좋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이미 중앙박물관에 신고가 되어 있는 물건이 되어서 도저히 그렇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딱 잘라서 한마디로 거절을 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따로 부탁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까 ?”
“이 실장님,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닐 뿐아니라, 이미 국가에 등록이 되어 있는 물건이 아니라도 이런 골동품은 그냥 거래를 할 수가 없는 물건이 아닙니까 ?”
“저희가 이렇게 많은 물건을 수집하는 동안에 그런 기본도 모르고 어떻게 수집을 하였겠습니까 ?”
이 실장과 김교수는 끈질기게 줄다리기를 하였습니다. 곁에서 강교수가
“김 선배님, 우리가 어디 이런 유물을 한두 번 다루어 보았습니까 ? 그거 발표가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선배님이 잘 처리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까 ?”
하고, 거들고 나섰습니다. 김교수는 벌컥 화를 내며
“강 교수, 정말 못 쓰겠구만. 내가 이 분야를 40여 년이나 연구 해왔지만 자네 같은 친구는 오늘 처음 일쎄. 그래, 내가 나의 양심을 팔아야 옳다는 말인가 ?”
“김 선배님, 너무 하십니다. 제가 어디 양심을 팔라고 하였습니까 ? 제가 고문으로 있고, 또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유물을 수집하여 보관하는 곳이니 이왕이면 이곳에 보관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입니까 ?”
“그만두 게, 나는 이런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 소화가 안되어서 반드시 탈이 나고 만다네. 그만 가보겠네.”
한마디를 남기고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 이 실장과 강 교수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어서 멍하니 창 밖만 쳐다봅니다.
이튿날 이 보고를 받은 한 회장은 몹시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이 실장, 어떻게든지 이 일을 만들어 보시오.”
한마디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 실장은 한 회장이 이렇게 화를 내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이 실장은 마지막 수단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김 교수와 가까운 사람을 찾아서 김 교수에게 어떤 사람을 시키면 움직일 수 있는지, 아니면 김교수에게 어떤 결정적인 어려움이나 잘못 같은 것이라도 찾을 수는 없는지를 샅샅이 조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드디어 이 실장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김 교수가 앞으로 20여일 후에 딸을 시집 보내게 되었는데 결혼 자금이 없어서 집안에서 여간 걱정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실장은 곧장 이런 사실을 이용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결혼비용이 될 만큼의 돈을 집어주고 일을 마무리지을 속셈 이었습나다.
 
 
한 회장의 돈을 받은 김 교수는 그걸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지를 몹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과연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탑을 이렇게 허물어뜨려야 할 것인가 ? 그러나 안에 들어서면 돈 걱정 때문에 한숨 소리만 들리니 과연 나의 자존심만을 끝까지 지키는 게 옳을까 ?’
이런 생각에 김 교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룻밤을 꼬박 세운 김 교수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는 곧장 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강 교수, 지난번에는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아주 우습더구만 아예 나를 무시하고 돈으로 나를 사려고 덤비더구만. 나는 불쾌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 몇 푼을 맡아 있는데 당신이 소개한 사람들이니 좀 전해 주시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돈을 돌려주고 난 김 교수는 허탈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 준 것 같아서 속이 후련하였습니다.
돈을 되돌려 받은 한 회장은 자신이 하는 일이 이렇게 까다롭고, 거절을 당하였다는데 몹시 마음이 편치 못하였습니다.
한 회장은 며칠을 끙긍대며, 속을 끓이다가 드디어 한가지 새로운 방법을 쓸 것을 계획하였습니다.
한 회장은 곧장 이 실장을 토기가 발견된 곳으로 내려보내서, 그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조사하게 하고, 그 땅을 사도록 하였습니다. 이 실장이 현지에 내려가서 조사를 하여 본 결과 그 땅은 개인의 땅이 아니고, 국유지여서 개인이 개간을 하였다 하더라도 그 땅을 불하받으면 그만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실장, 며칠이 걸리더라도 그 땅을 불하 받을수 있도록 조치를 해두고 올라오라고,알겠나 ?”
한 회장의 명령은 군대에서 상관의 그것보다도 훨씬 무서운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이 실장은 자신의 목을 걸고 이 일을 이루어야만 하였습니다.
군청에서는
“그 깐 땅을 대그룹의 회장님이 무엇을 하려고 사려고 하느냐 ?”
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실장은 담당 계원과 과장을 불러 저녁을 함께 나누며
“우리 회장님이 이 고장에 관심을 가지고 이곳에 투자를 하실 의향을 가지신 것 같은데, 잘 좀 도와주십시오.”
하고, 은근히 한 회장의 막대한 재산을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야 뭐, 그깐 쓸데없는 땅을 누가 가지고 있던지, 그것보다는 이 고장에 큰 공장이나 하나 지어서 고장 사람들에게 일터라도 주었으면 감사 하겠습니다.”
하고, 도리어 어서 사도록 하라는 듯이 말을 하였습니다. 이 실장은 식사가 끝난 다음에 그들에게 한달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을 용돈이나 하라고 내밀었습니다. 이 돈의 효력은 금방 나타나서 이튿날 국유지 불하 신청서는 아무런 말썽이 없이 쉽게 접수가 되었고, 빠른 시간 안에 연락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내었습니다.
불하 신청서를 접수 시킨 뒤 약 2 주일 뒤에 이 실장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이 실장이십니까 ? 여기 군청인데요, 실장님이 신청하신 불하 신청이 받아들여져 허가가 날 것 같습니다.”
하는 과장의 전화가 온 것입니다. 이 과장은 곧장 한 회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 드렸습니다. 한 회장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이 실장 수고 많았어.”
한마디로 격려를 표시하였습니다.
한 달쯤이 지나서 이 땅의 불하가 결정되었다는 통지서가 한 회장에게 전달이 되었고, 이 땅에서 과수원을 가꾼 이형국 씨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이형국 씨귀하. 귀하가 점유하여 개간을 한 땅은 국유지로서 그 동안 귀하가 개간 관리하고 있었으나, 이번에 정식으로 불하 신청을 한 한창달 씨에게 정식절차를 밟아 불하를 결정하였으니,1985년 12월 31일까지 현재의 땅을 인도 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서류가 전달이 되었습니다.
이형국씨는 서류를 들고 면사무소로 군청으로 다니면서 호소를 하였으나, 누구 한 사람도 어떻게 도와 주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형국씨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자 도청으로 찾아가서 사정을 호소하였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조처입니다.곧 조사를 하여 알려드릴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약 일주일이면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약속을 받고서 집으로 돌아와서 일주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약속했던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다시 도청을 찾아간 이형국씨는 그만 기가 막혀서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청에 연락을 해봤더니, 그 땅은 허가도 없이 당신이 마음대로 개간을 하여서 몇 년 씩이나 그냥 농사를 지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당신에게 아무런 권한이 없어요. 반드시 신고를 하고서 세금을 내었어야 인정을 받을 수 있는데......”
하며, 자기로서는 어떻게 도와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온 집안이 쑥밭이 되어버린 것을 보고 있던 은화가 마지막으로 해보겠노라고, 서울에 있는 김 교수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김교수님. 우리집을 좀 도와주십시오. 이제 겨우 이 땅에 과일 나무를 심어서 열매를 따게 되었는데, 이렇게 억울하게 땅을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혹시 한창달 씨라는 분을 아시면 우리 식구가 이곳에서 살수 있도록 좀 부탁 해주세요.
김 교수는 편지를 받자 무서운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창달, 이런 못된 사람이 결국은 그곳을 사서 나의 연구를 방해하려고 하는구나. 어디 두고 보자.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너희에게 기어이 본때를 보여 주겠다.”
김 교수는 이를 부드득 갈며, 다짐을 하였습니다.
김 교수는 신문사에 전화로 이런 사실을 알리고, 그 곳이 역사적 유물이 있는 곳이므로 유적지로 지정을 하여 개발을 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신청을 하였습니다.
김 교수의 이런 신청은 국가에서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 권위가 있는 학자의 주장이었으므로, 곧바로 허가가 났습니다. 김 교수는 곧장 한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 회장님, 대단히 죄송합니다. 토기가 발굴된 땅을 불하받아서 발굴 하시려고 하셨다는데, 그만 그곳이 유적지로 지정을 받아서 함부로 손 댈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동안 그 땅을 불하받기 위해서 군청이며, 도청에까지 수많은 돈을 뿌리신 모양인데 만약 더 이상 그 땅에 대해서 어떤 짓이라도 한다면 지금까지 당신이 한 일들을 모두 세상에 알리고 말겠소. 이제 더 이상 그 사람들을 괴롭히지 마시오.”
하고, 자신의 말만을 마친 채 전화를 뚝 끊어 버렸습니다.
김 교수가 그동안에 한솔그룹의 한 회장이 골동품을 수집하기 위해서 벌인 각종의 부정한 짓들과 이번에 은화네 땅을 사기 위해서 군청, 도청에다가 뿌린 부정한 돈과 도지사에게까지 골동품을 선사하는 야비한 짓을 했다는 사실을 일일이 조사를 하여 다 알고 있다는 것은 강 교수를 통해서 훤히 알고 있는 한 회장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 이상 김 교수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쯤을 모를 한 회장은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권위가 있어서 그가 유적지로 지적을 하면 국가에서 하는 건설공사도 중단을 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며칠 후에 은화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은화양에게. 이제 안심을 해도 괜찮을 것이다. 내가 그곳을 유적이 있는 곳이니까 함부로 땅을 파거나 사고 팔아서는 안 되는 곳으로 지정을 하였으니, 땅을 산 사람들이 이제 그 땅이 필요가 없어졌단다. 부모님께도 안부 전하여라.
은화는 편지를 읽으며 환한 미소를 띄웁니다. 온 가족은 은화의 얼굴을 보며 궁금해 하지만 은화는 그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며,
“아버지, 우리 이제 괜찮대요. 김교수님이 이 땅을 지켜 주셨어요.”
하고는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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