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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함께 하는 사랑,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

명화 속에 숨은 사랑 이야기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 사랑의 감정은 퇴색되고 익숙함만 남아 서로에게 관심이 없어진다. 그저 사랑이라는 이름만 곁에 있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운 것에 더 시선이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래된 사랑은 사랑이 주는 설렘은 사라지지만 서로에 대한 익숙함으로 편안해진다. 편안하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다. 편안함도 익숙함도 사랑이다. 사랑의 감정에는 정답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Peter Paul Rubens)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했는데 그는 불꽃같이 타오르는 사랑보다 함께 있는 행복을 나타냈다. 그에게 사랑은 생활이었던 것이다. 루벤스는 23살이 되던 해에 예술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난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고전학, 고대 조각 연구에 열중하면서 한편으로는 이탈리아 미술의 색채에 매료된다. 이탈리아에서 보여 준 예술가로서의 역량과 명성은 곧 조국에까지 전해졌다. 명성을 얻은 루벤스는 어머니 임종을 지키기 위해 고향 플랑드르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궁정화가로 활동하면서 1609년 인문주의자이자 변호사였던 안트웨르펜시의 서기의 딸인 이사벨라 브란트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루벤스는 친구에게 ‘그녀는 선량하고 정숙한 여성’이라고 편지를 썼을 정도로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다. 루벤스가 아내 이사벨라 브란트와 함께 있는 행복을 그린 작품이 <루벤스와 이사벨라 브란트>이다. 루벤스와 이사벨라는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있다. 루벤스는 왼손에 칼을 들고 있고, 모자를 쓴 이사벨라는 화려한 레이스로 장식한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팔과 손에는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한 장신구를 하고 있다. 루벤스가 들고 있는 칼과 신고 있는 신발은 그가 귀족이거나 부르주아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사벨라의 목을 장식하고 있는 레이스는 고급 옷에서만 사용되는 소재로 귀족 가문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녀의 손을 치장하고 있는 화려한 보석 반지와 팔찌는 변하지 않은 영원성을 상징한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은 행복한 부부라는 것을 나타낸다.

루벤스가 결혼 1년을 기념해서 제작한 이 작품은 그가 로마에서 활동하고 돌아온 직후의 당당함과 오만함이 엿보이고 있다. 평화롭고 다정한 신혼부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루벤스와 이사벨라 브란트, 1609~1610년, 캔버스에 유채, 174x143,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소장


루벤스의 작품들은 세속화, 종교화, 신화, 초상화 등 장르를 불문하고 화려하고 장식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 귀족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선호했다고 한다. 더구나 루벤스는 6개 국어에 능통해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와 로마 교황, 스페인 펠리페 4세 등으로부터 많은 양의 초상화를 의뢰받으면서 그들 내부 사정에 정통하게 된다. 왕족들은 전 유럽의 황실의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루벤스에게 예술가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외교적 역할까지 요구하기에 이른다.


루벤스는 외교관으로서 영국과 스페인의 관계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1629년 스페인 펠리페 4세로부터, 1630년에는 영국의 찰스 1세로부터 각각 작위를 받음으로써 신분 상승을 이룬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이 시기에 루벤스의 첫 번째 아내 이사벨라가 병으로 죽고 만다. 친구에게 “그녀의 죽음에 대해 망각이 자신을 덮어주기를 바라지만 자신이 살아 있는 한 결코 그 상실감을 해소할 길이 없을 것 같다”라고 했을 정도로 큰 상심에 빠진다.


▲이사벨라 브란트의 초상                                                ▲ 웨딩드레스를 입은 헬레나 푸르망

1625년, 캔버스에 유채, 62x86, 우피치 미술관 소장             1630~1631년, 목판에 유채, 163x136,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소장


이사벨라를 잃고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루벤스에게 큰 아들과 비슷한 연령의 젊은 여성 헬레나 푸르망이 나타난다. 루벤스가 헬레나 푸르망의 언니 초상화를 그리면서 두 사람은 만났다. 50대의 루벤스는 사랑에 빠져 결혼을 결심한다. 독신으로 지내면서 금욕생활을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내게 궁정 여인들과 결혼을 권하지만 나는 괜찮은 가문의 젊은 여성을 선택했다. 귀족 출신 여성들의 허영심이 싫었다”라고 헬레나 푸르망을 선택한 이유를 친구에게 밝혔다.


루벤스가 헬레나 푸르망과의 결혼을 기념해 그린 작품이 <사랑의 정원>이다. 그림 왼쪽에 모자를 쓰고 있는 남자가 루벤스다. 그는 아내 헬레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춤을 추고 있다. 큐피드가 그녀의 뒤에 서 있다. 큐피드는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화면 중앙에는 아름다운 귀부인들과 신사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하늘에는 천사들이 꽃을 들고 날아다닌다. 화면 왼쪽 상단, 돌고래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의 조각상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온다. 이 조각상은 다산과 사랑을 상징한다.


▲ 사랑의 정원, 1633년, 캔버스에 유채, 198x283,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루벤스는 새로 얻은 행복을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통해 표현했다. 젊고 활기에 찬 헬레나 푸르망과의 행복한 결혼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네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그는 가족을 위해 1635년 일체의 정치적 활동을 그만두고 헬레나 푸르망과 함께 엘레웨이트에 있는 스텐성에 머문다. 루벤스는 헬레나 푸르망과 시골에 살면서 그곳 풍경에 매력을 느낀다. 루벤스가 느끼는 행복감은 말년의 작품들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인물들은 밝고 빛나는 목가적인 풍경 위에 펼쳐져 있다. 이런 것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면서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루벤스가 그림에 온 힘을 쏟을 수 있었던 데 있다.


바로크 미술의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초기작들은 종교적인 장면과 세속적인 장면, 신화적인 장면 그리고 초상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면 부담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난 말년은 목가적인 풍경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