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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순자(2) - 천생 교육자인 문학가

사상가, 학자 이전에 스승, 교육자였던 사람들의 이야기


한나라 때 사상계를 보면 재밌는 게 있습니다. 보통 유학하면 공맹(孔孟)이란 말을 많이 합니다. 공맹지도(孔孟之道)라고 하지요. 공자와 맹자의 학문이고 사상이 라는 것이죠. 공자 그리고 맹자로 적통이 이어지고 나중에 주희가 그 적통을 계승 한다. 보통 이런 인식이 많은데 한나라 때를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외려 순자(荀子)야말로 공자 사상의 적자라는 인식이 강했고, 한때 사상계에서 활약했던 내로라하는 학자들을 보면 순자의 색채가 강하죠. 그런 경향은 후한 말(末)까지도 계속됩니다.


후한 말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삼국지가 떠오르실 텐데요.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글줄 꽤나 읽었다는 학자들도 보면 순자 냄새가 나는데 특히 제갈량이 그러하지요. 순욱과 순유, 공융이라는 대학자도 순자적 색채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인데, 어쨌거나 한은 망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순자적 유학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고 수당(隋唐)시대가 되고 북송시대 사대부들의 시대가 오면서 맹자의 유학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공자 사상의 적통이 순자가 아니라 맹자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지요. 맹자가 대세가 되면서 순자에 대한 공격, 특히 학자라면 해서는 안 되는 저열한 인신공격까지 틈틈이 볼 수 있는데, 실로 순자로선 억울한 일이었을 겁니다. 논어 첫 시작이 학이(學而)편이고 끝이 요왈(堯曰)편인데 순자 텍스트 첫 편이 권학(勸學)이고 맨 마지막이 요문(堯問)이죠. 학이는 권학과 요왈은 요문과 매치되는데 제자들이 다 공자를 염두에 두고 스승의 텍스트를 편집했기에 그런 것입니다. 이후 송나라 시대가 되면서 맹자와 순자는 사상계에서 위상이 완전히 역전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순자를 높이 평가했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 자신부터가 사상적 이단아였던 중국 명나라 때 사상가인 이탁오(李卓吾)입니다. 그는 맹자에 대해서는 “고정된 사견에 사로잡혀 죽은 말 (死語)로 사람을 살리려 했다”며 현실적이지 못함을 들어 맹자를 비판한 것이지요.
 
반면 순자를 평할 때에는 유연한 모습과 현실성을 극찬하면서 “그 재능은 아름다웠고 그 문장은 웅거하였도다”라고 말했 습니다. ‘문장이 웅거했다.’ 여기에 주목해 주십시오. 순자의 글, 순자의 문장이 빼어 났다고 평한 것인데 사실 순자를 저평가 하는 사람들도 순자 문장의 뛰어남과 수려함에 대해서는 다들 인정했고, 암묵적 이나마 대문장가라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 다. 그는 대문장가이며 문학가였지요.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순자 텍스트를 차근차근 읽다 보면 사상적 엄밀성과 설득력 이전에 문장의 아름다움과 미학적 재능에 감탄하게 됩니다. 문장의 차분함과 담백함, 잘 정제되어 있는 글의 리듬, 보석과 같은 압운과 기가 막힌 비유.


사실 <순자(荀子)>에 보이는 문장의 힘과 아름다움은 실로 대단하지요. 순자 텍스트는 문학서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 시절 선진(先秦) 시대 모든 문헌이 역사서 다, 문학서다, 철학서다, 딱히 구분해놓고볼 필요는 없지만 순자의 텍스트를 보면 문학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문장이 수려하고 개성과 힘이 있습 니다. 철학자고 사상가 이전에 문장가, 문학가이고 예술가, 미학자라고 해도 될 정도죠.


글과 문장을 떠나 예술에서 중요한 것을 뭐라고 합니까? 힘을 빼는 것이지요.

그래야 정제된 맛이 보이고 감상하는 이들이 공감의 세계에 진입하게 되는데 순자 문장을 보면 감정의 과잉 없이 힘을 빼고 쓴 문장과 말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장점 이외에도 미학적인 순자만의 장점과 장치들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대칭성입니다. 짝을 이루고 대칭이 되고 그런 문장들이 많아요. 그래서인지 시처럼 보이는 문장들이 참 많습니다. 시처럼 써야겠다고 의식하지 않았지만 시처럼 보이고 읽히는 문장들이 많은 것은 대칭성이 빼어났기 때문입니다.
 
대칭성의 순자 


 1  

不登高山(부등고산), 不知天之高也(부지천지고야)

不臨深谿(불림심계), 不知地之厚也(부지지지후야)

높은 산에 올라가 보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줄 모르고

깊은 계곡에 가지 않으면 땅이 두터운 것을 모릅니다. 
 
 2  

積土成山(적토성산), 風雨興焉(풍우흥언)

積水成淵(적수성연), 蛟龍生焉(교룡생언)

흙이 쌓여 산이 이룩되면 바람과 비가 일고

물이 모여 못이 이룩되면 교룡과 용이 일지요. 
 
 3  

不積?步(불적규보), 無以致千里(무이치천리)

不積小流(불적소류), 無以成江海(무이성강해)

반걸음이 쌓이지 않으면 천리를 갈 수 없고

개울물이 쌓이지 않으면 강과 바다를 이룰수 없습니다.
 
                                                       이상 <권학>편
 

 
 4  

古之學者爲己(고지학자위기) 今之學者爲人(금지학자위인)

옛날의 학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공부하고

지금의 학자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 공부한다. 
 
 5  

君子之學也(군자지학야), 以美其身(이미 기신)

小人之學也(소인지학야), 以爲 禽犢(이위 금독)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고

소인이 학문을 하는 것은 남에게 내놓기 위해서이다.
 
                                                       이상 <수신>편
 


순자의 문장들을 보면 이렇게 대구를 이루는 문장들이 많습니다. 대칭을 이루는 문장과 논리 전개가 돋보이는데 사실 저는 단순히 문학적, 미학적 재능과 열정이 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순자의 유려한 문장들을 보면 그가 가진 교육자로서의 자의식, 정체성과 연관된다는 것이죠. 위에 수신 편에서 든 문장들이 좋은 예입니다. 
 

옛날의 학자( 古)와 지금의 학자( 今) 즉,  古 vs 今

옛날의 학자는 나를 위해 공부했다( 爲己)와 지금의 학자는 남을 위해 공부한다 ( 爲人) 즉, 爲己와 爲人 또는 爲己 vs 爲人 이렇게 정리가 되지요. 


또 수신 편에서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고, 소인이 학문을 하는 것은 남에게 내놓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군자의 학문과 소인의 학문, 군자지학 대 소인지학 이렇게 정리가 됩니다. 또한 미신(美身)과 금독(禽犢) 즉, ‘자신을 아름답게 하기’ 대 ‘남에게 내어놓기’ 이렇게 정리가 되는데 순자의 주장과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참편합니다. 이 분이 스승으로서 정말 듣는 사람들을 배려하는구나, 어떻게든 수업 성취도를 높이고 학습능률을 올리기 위해 고민을 했고 노력을 했구나, 그래서 그의 문장들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사상과 철학 이전에 교육자로서의 모습이 강하게 들어오게 됩니다. 정말 순자는 천생 교육 자라는 인상이 남게 되지요.
 


天行有常(천행유상)

不爲堯存 不爲桀亡(불위요존 불위걸망) 
應之以治則吉 應之以亂則凶(응지이치즉길 응지이난즉흉)
 
彊本而節用 則天不能貧(강본이절용 즉천불능빈)

養備而動時 則天不能病(양비이동시 즉천불능병)

修道而不貳 則天不能禍(수도이불이 즉천불능화)
 
하늘엔 항상 된 도가 있습니다. 아무런 의지 없이 일정한 원리를 따라 움직일 따름입니다.

그것은 요임금 때문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걸 임금 때문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랍니다.

거기에 다스림으로 응하면 길하고 어지 러움으로 응하면 흉할 뿐입니다.

농사에 힘쓰고 쓰는 것을 절약하면 하늘은 인간을 가난하게 할 수 없습니다.

잘 보양하고 제때 몸을 쓰면 하늘은 인간을 병들게 할 수 없고 올바른 도를 닦아

그 도에 어긋나지 않으면 하늘은 인간에게 재난을 내릴 수 없습니다.
 
                                                                                                          <천론>편
 


순자 사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천론(天論)>편에 나온 말입니다.

하늘에는 어떤 항상 된 즉, 늘 언제나 지켜지는 법칙이라는 게 있다는데 2행을 보면 요(堯)와 걸(桀), 존(存)과 망(亡)으로 요약이 되고 3행을 보면 치(治)와 난(亂), 길 (吉)과 흉(凶)으로 압축이 됩니다. 5·6·7행을 보면 행마다 강본(彊本)과 절용(節 用), 양비(養備)와 동시(動時) , 수도(修道) 와 불이(不貳)라는 2개의 과제가 제기되며 끝에 불능-빈(貧), 불능-병(病), 불능-화(禍), 이렇게 끝이 나는데 절로 정리가 되고 또 쉽게 암송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져 있지요. 기억과 암기가 쉽게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문학가로서의 재능 이전에 성실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준비와 노력이라고 생각하고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 가진 성실함과 노력, 순자는 그런 사람입니다.
 
노래와 시의 창작자 
문장뿐만이 아니라 글의 전개 방식과 전체 사상적 구도와 개념도 대칭을 이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통제, 보장/ 결핍, 채움/ 인지, 입지/ 스승, 제자/ 개인, 사회/ 자극, 반응/ 이상, 현실/ 패도, 왕도/ 선왕, 후왕/ 교화, 형벌/ 독려, 격려/ 군자, 소인 등이죠. 이런 대칭성은 공부하는 사람이 순자 사상을 쉽고 빠르고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돕지요. 대칭성, 이것만으로도 순자는 극찬을 받아 마땅하다고 보여지는데 그만큼 정말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노력한 순자, 그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부지런히 발휘해서 많은 시와 노래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성상(成相)과 부(賦)라고 해서 만들어냈는데 <성상(成相)>편과 <부(賦)>편이 순자 텍스트 32편 중에 따로 있습니다. 그 성상과 부는 단순히 노래가 아니라 유가적 사상들을 운율에 맞게 평이하게 담아낸 노래들입니 다. 사람들이 노래를 재밌게 따라 부르고 단체로 흥겹게 부르면서 쉽게 유가 사상을 이해했으면 하는 그의 바람을 담아낸 것들이죠. 하지만 역시나 전 교육자로서 자의식과 열정, 노력이 더 컸다고 보는데 노래만큼 좋은 교육, 학습 수단이 없지 않습니까. 그의 문학적 재능과 열정 이전에 교육자로서의 성실함과 배려를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순자는 역시 교육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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