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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 빈번한 사회, 우울한 아이들

함께하는 생활지도

“고교 1학년 담임입니다. 학기초 상담 시간에 형이 중학생 때 자살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저로서는 위로 말고는 뭘 더 어찌해 줘야 하는지를 모르겠더군요.”

“중3 담임인데요, 우리 반 아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란에 ‘살기 싫다. 내가 살면 짐이 되는 거 같다’ 이런 식으로 써 놓았네요. 담임이 어찌 대처해야 할까요?”

저경력 담임교사들이 털어놓는 학급 운영의 어려움 중 일부이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8.7명으로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애석하게도 2003년부터 현재까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청소년 자살률도 높다. 통계청 자료로는 청소년 10만 명당 자살률은 13명으로 집계된다.

청소년들의 자살에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이 작용한다. 청소년기는 신체·인지·정서적인 면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면서 많은 혼란을 경험하는 시기다. 여기에 경제적 부와 사회적 명예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학생 각자의 재능과 적성을 무시하고 이른바 명문대와 대기업을 향한 줄서기를 시키는 풍토가 우리 청소년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더군다나 출산율 저하는 가족 구성원 수의 감소를 초래해, 가족 내에서의 사회적 관계 경험이나 실생활에서의 배려·공감·위로의 과정이 과거와 비교하면 현저히 줄었다.

우울증 대처법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일반적으로 청소년의 자살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요소로 우울증을 들기도 한다. 우울증의 가장 심각한 증상은 자살 시도로, 우울증 환자의 3분의 2가 자살을 생각하고 10~15%는 실제로 시도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울증의 핵심 증상은, 우울감과 삶에 대한 흥미와 관심의 상실이다. 외국의 경우 우울증의 증상이 대개 의욕 저하와 우울감으로 나타나는 것에 반해, 우리나라 환자들은 주로 두통, 소화불량, 불면증, 불안감, 어깨 결림, 근육통 등으로 나타나서 우울증을 의심하거나 진단하기 어려운 상태를 띠는 경우가 많다. 즉,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우울증 증세를 철저히 숨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유달리 우리나라 환자들은 자신이 우울증인 것을 알지 못하고 심각한 다른 질환이 상당 부분 진행된 이후에야 자신의 기분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에 우울증을 진단해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청소년기의 우울증은 더 그렇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청소년의 우울증이 대부분 ‘가면우울증’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한다. 청소년의 우울증은 그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고 몸 안에 내재된 채로 병증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치료를 요할 정도의 우울증은 아동기보다는 청소년기에 많이 나타나는데, 유병률이 5% 정도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우울증에 걸려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자신의 우울을 가면 뒤에 꼭꼭 숨기고, 가정·학교에서 친구·교사·가족에게 비수와 같은 말을 꽂으면서 자신의 우울과 화를 표출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학교폭력이나 게임·약물 등 중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거나, 끝내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행동의 메커니즘을 한마디로 정리해, ‘자신이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자신을 향하면 우울증이 되고, 외부로 향하면 학교폭력이 된다’고 한다. 필자가 오랫동안 청소년들과 부대끼고 생활하며 관찰한 결과 이 가설은 상당히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 교사들에게 유용한 자살·우울증 대처법은 학생들의 마음 상처를 찾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전문의의 진료, 전문가의 상담과 더불어 가족·교사의 따뜻한 시선에서 출발하는 ‘상처 찾아주기’는 문제의 절반 이상을 해결해 주는 소중한 열쇠로 작용할 것이다.

또 연구에 의하면, 신체적 활동과 운동이 우울증 증상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걷기, 달리기, 농구, 축구 등 학생이 즐기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소비할 만한 신체적 운동도 적극적으로 권장된다.

학교폭력 피해자 대응

최근 들어 우리의 이목을 끄는 청소년 자살 요인은 학교폭력이다. 갈수록 학교폭력이 흉포화, 저연령화, 음습화하면서 아이들의 정신력만으로는 감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필자가 상담한 사례를 예로 들면, 고교 2학년 여학생이 학급 아이들로부터 따돌림과 사이버 괴롭힘을 받아 서너 번의 하혈 증세를 겪었고 쇼크로 인해 갑자기 쓰러져서 구급차로 여러 번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이 상황을 잘 모르는 전입생이 이 여학생과 친하게 지내려 하자 이마저도 교류를 끊도록 종용해 크나큰 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이 여학생 역시 수차례 자살을 염두에 뒀다고 한다.

어른들은 이해가 잘 안 가지만, 아이들은 자기 친구들이 자기를 버리면 온 우주가 자기를 버리는 것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그래서 친구들이 자기를 괴롭히고 따돌려도 부모나 교사에게 말하지 못하고 계속 그 상태가 계속되면서 자그마한 학교폭력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최악의 경우에는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둬야 할 사항이 있다. 자살을 시도하거나 선택하려는 사람에게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자살을 선택하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그 역할은 가족이 일차적으로 해야 하지만, 그것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교사가 그 역할을 해주거나, 학급 친구들이 유사한 역할을 하도록 훈련하고 분위기를 조성해 줄 필요가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그 학생을 비난하고 외면하더라도, 단 한 사람만이라도 남아서 ‘너는 좋은 친구야!’, ‘너의 행동은 옳았어’ ‘널 사랑해’라고 엄지를 치켜세워 주고 토닥여 준다면, 그 학생은 희망을 잃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것이다.

청소년 자살의 특징, 구조신호

또한 자살을 시도하려는 청소년의 사전 행동에 대해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살 전에 자신의 의도를 직·간접적으로 친구나 가족 등에게 알리는 경우가 많다. 우연히 이런 행동을 발견했을 때, 이를 소홀히 여기면 안 된다. 어른들의 자살이 삶의 포기라면, 청소년들의 자살에서는 자신을 가족·친구가 구조해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이때 이들의 구조신호를 알아차리고 손을 잡아준다면 자살의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자살과 관련해 전설 같이 내려오는 실화가 있다. 미국에서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은 초임 경찰관이 강물에 뛰어든 자살사고 신고를 받고 출동하였다. 자살 시도자는 강물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경찰관들은 구명동의를 던져주고 그것을 잡으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자살 시도자는 ‘나는 죽으려는 사람이니 안 잡겠다’고 버텼다. 경찰 근무 첫날 당황한 경관은 사고자의 반항을 접하고 나서, 허리춤의 권총을 꺼내 그를 겨누고선, ‘구명동의를 잡아라. 안 잡으면 쏜다’고 외치고 말았다. 이미 죽으려는 사람에게 또 죽이겠다니, 이 무슨 아이러니이며 황당한 망발인가? 경찰관의 경고를 들은 자살 시도자의 반응은 더욱 가관이다. ‘자신은 죽어야 한다’면서 안 잡고 버티던 구명동의를 결국 잡고야 말았다.

이 사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자살 시도자는 죽으려 하는 의지도 있지만, 마음속의 다른 편 한구석에는 살고자 하는 의지도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죽고자 하는 마음이 살고자 하는 의지를 넘어섰기 때문에 자살을 감행한 것이다. 그래서 자살하려는 사람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살고자 하는 의지를 주목해야 한다. 그것을 북돋아 주고 용기를 심어주고 그의 어깨를 쓰다듬고 보듬어 준다면 그의 마음속에 있는 삶의 의지가 자살 의지를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활용해야 하는 내·외부 네트워크

맨 앞의 사례처럼 담당 학급 학생이 직·간접적으로 자살을 언급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상담내용은 모두 비밀로 해야 한다. 그러나 자살과 관련된 경우는 예외다. 이런 경우 담임교사는 그 말이 90% 이상 농담이나 과장이 섞였더라도 절대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또 절대로 혼자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학교 상담교사나 상담사에게 통보한 후 상담을 거쳐 교감·교장에게 보고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보호자와의 상담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담교사-보건교사-생활지도부 교사-교감 등 내부 네트워크와 Wee센터-청소년상담복지센터-정신건강증진센터-병·의원 등 외부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아이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지 살펴줘야 한다.

필자는 이 경우에 Wee센터 담당자와 통화해 학생의 상황을 설명하고 긴급 상담을 의뢰하고 2~3일 안에 상담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학생은 주저했지만, 부모님과 협의해 반드시 Wee센터 상담에 참가하도록 했다. 추후 이 학생은 자신을 귀찮게 한 상대방 학생이 겁을 먹게 하려고 홧김에 내뱉은 말이었음을 알게 됐지만, 교사는 이럴 때 조금 불편할지언정 반드시 이와 같은 복잡한 과정을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일부 지자체에서는 아동·청소년 자살 및 정신건강에 관한 지원 서비스를 하고 있으니 가정과 학교에서 요긴하게 활용할 만하다. 서울의 경우 서울시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학생 정신건강을 위한 교사 상담전화’ 스쿨라인(1577-7018)을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자살사고 이후의 사후중재프로그램 ‘희망의 토닥임’도 운영하고 있으므로 자살 사안 발생 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다른 지역도 각 시·도의 광역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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